고린도 방문 취소의 이유 (고전 1:12-2:4)

오늘 본문은 개역 성경으로 읽으면 좀 어렵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성경으로 읽어 보았는데, 한글 성경으로는 공동 번역이 도움이 되었고, 영어 성경은 NLT가 선명하게 잘 풀어서 설명해 주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오늘 설교 제목과 같이, 바울이 고린도 교회 방문을 취소한 이유에 대한 변증입니다. 오늘 본문으로부터 역으로 추정해 보면, 당시에 고린도 교회에는 사도 바울의 대적들이 있었습니다. 소위 거짓 교사들 (false teachers) 라고 불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바울에게 흠집을 내서, 고린도 교인들과 바울의 사이를 이간시키고, 긍극적으로 바울의 사도권을 부정하고자 하였습니다.

그것은 마귀의 사역이었습니다. 마귀를 헬라어로 디아불로스라고 하는데, 문자적으로는 이간하는 자라는 뜻이고, 중상 모략하는 참소자라는 뜻입니다. 마귀의 하는 일이 참소입니다. 요한계시록 12 10절에 보면, 마귀가 하나님 앞에서 형제들을 밤낮 참소하다가 쫓겨났다고 하였습니다. 마귀가 밤낮 쉬지 않고 하는 일이 참소라고 하였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이웃을 참소하는 것은 마귀 짓입니다.

십계명은 이웃의 생명을 죽이는 살인을 금합니다. 이웃의 가정을 파괴하는 간음을 금합니다. 이웃의 재물을 도적질하는 것을 금합니다. 그리고 이웃의 명예를 훼손하는 참소를 금합니다. 참소는 일차적으로 비방을 당하는 사람에게 큰 상처를 줍니다. 뿐만 아니라, 참소를 듣는 사람의 귀와 마음도 더럽힙니다. 나아가서 참소하는 자 자신에게는 심판이 임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2 36절에서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하나님 앞에서 그 말에 대해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편 101 5절에 보면, “그 이웃을 그윽히 허는 자는 내가 멸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참소는 심판 받을 죄라는 것을 꼭 기억하여야 합니다.

고린도 교회의 거짓 교사들은 바울을 참소할 수 있는 건수를 하나 잡았습니다. 곧 바울이 고린도 교회 방문 계획을 취소하였다는 것입니다. 그것 보라, 바울은 앞에서는 yes 하고, 뒤에서는 no 하는 사람이다. 혹은 말로는 yes 하고, 행동으로는 no 하는 사람이다, 라고 비방하였습니다. 실제로 15절로 16절에 보면, 바울은 마게도냐로 가는 길과 오는 길에 두 번 고린도를 방문해서, 고린도 교회에 두 번 은혜를 베풀기로 계획했었습니다. 그런데 계획을 변경하였고, 왜 계획을 변경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먼저 바울은 12절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사역한 것을 양심이 증거한다고 밝힙니다. 그리고 13절과 14절은 보면, 바울의 서신에 저의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편지는 straightforward 하며, 행간에 숨은 뜻이 없다고 말씀합니다. 14절에 대강 안다는 것은 부분적으로 안다는 뜻입니다. 지금은 너희가 진실을 다 알 수 없겠지만, 예수님 재림하실 때에는 모든 것이 밝혀져서, 서로를 자랑스럽게 여길 날이 올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17절에 보면, 바울은 자신이 경솔한 사람이기 때문에 방문 계획을 변경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고린도 교회에서 그렇게 비방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반증입니다. 혹은 육체를 쫓아, 곧 자신의 유익을 따라서, 말을 바꾸는 것도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미쁘시고 신실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사도 역시 yes 라고 했다가 no 라고 말을 바꾸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9절에서는 예수님도 yes, no를 왔다 갔다 하는 이중적인 분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하나님도 예수님도 바울도 변덕쟁이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20절에 보면,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그것은 구원의 약속, 곧 복음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들은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어서 21절로 22절은 성령의 증거를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성령의 기름을 부으셔셔, “바울을 당신의 사람으로 확인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공동번역). 곧 바울이 신실한 하나님의 종이라는 사실을 고린도 교인들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증거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23절에서 하나님을 witness로 모시고 선언합니다: 내가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 너희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근심을 주는 자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고 21절에서 말씀합니다. 여기 다시근심으로 나아가지 않기로 결단하였다는 것은 바울의 가슴 아픈 방문’ (painful visit)을 전제합니다.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 사이에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만남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또 다시 그런 방문을 되풀이 하지 않는 것이 교회를 위하여 좋겠다고 판단하고, 방문 취소를 결단하였던 것입니다.  

나아가서 바울은 24절에서, 자신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기쁨을 주는 자가 되기를 원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당시 고린도 교회의 상황은 좋지가 않았습니다. 바울이 이미 보낸 서신과 방문에도 불구하고, 고린도 교인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바울이 고린도를 방문한다면, 바울은 그들을 기쁘게 하는 자가 아니라, 근심하게 하는 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가까이는 가족과 교우들에게, 그리고 이웃에게 기쁨을 주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보스톤, 더 정확히는 케임브리지에 ‘켄모어 스퀘어’가 있습니다. MIT 공대 근처에 있지요. 그 지역 이름을 켄모어라고 부르게 된 것은 그곳에 Kenmore 라는 브랜드의 재봉틀 공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재봉틀을 만들어 팔던 이 회사가 지금은 켄모어라는 브랜드로 냉장고나 세탁기 등 다양한 전자제품을 판매하는 유명한 회사가 되었습니다

그 켄모어 회사에서 재봉틀을 만들어 팔 때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재봉틀을 팔던 외판원들 가운데 유독 판매성적이 좋은 한 사원이 있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보다 보통 두세 배 많이 팔았다고 합니다. 회사에서는 매년 한 번씩 판매 성적이 좋은 사원에게 공로를 치하하고 보너스도 주었는데, 그 판매사원이 3년간 연속 1등을 차지했습니다.

그러자 사장이 어떻게 3년이나 연속해서 그렇게 좋은 판매성적을 올릴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그를 불러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어떤 특별한 비법이라도 있느냐?’고 말입니다. 그러자 그 판매사원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사장님, 별다른 비결이 있는 것은 아니고요, 저는 상품을 팔기 위해 남의 집 문 앞에 서서 제가 결혼했을 때 그 행복했던 순간을 다시 생각해 보며 기쁜 얼굴로 그 집 초인종을 누릅니다. 

기쁜 얼굴, 행복한 얼굴로 사람을 만나다 보니 그 물건을 사는 사람도 즐겁고 행복해지는 것을 느끼게 되어 많이 팔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쁨은 전이됩니다. 내가 기쁘면 내 얼굴에 드러난 그 기쁨이 누군가에게 전달이 됩니다. 그래서 기쁨을 공유하게 됩니다. 반대로 불평하고 인상을 쓰는 사람은 기쁨을 감소시킵니다. 그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 괜히 나도 불평하게 되고, 마음이 편치 못합니다.  

어떤 사람이 작곡자 하이든에게 물었습니다. 어째서 당신의 음악은 그처럼 기쁨의 선율을 담고 있습니까? 하이든은 이렇게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나는 내 마음의 상태를 음악으로 옮깁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내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 찬 나머지, 음표가 춤을 추며 펜으로부터 뛰어오릅니다.” 하이든은 마음에 샘솟는 기쁨을 음악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여러분의 기쁨은 무엇으로 표현됩니까? 무엇보다도 웃음으로, 미소로 표현됩니다. 기쁨은 얼굴에 나타납니다. 어떤 사람이 지방에 출장을 갔다가 주일을 맞았습니다.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려야 하겠는데 어떤 교회로 가야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 사람은 아무 택시나 잡아타고 기사에게 부탁하였습니다: “이 도시에서 가장 좋은 교회로 가십시다.” 기사가 차를 몰고 길을 가는데, 큰 교회 작은 교회 여러 교회를 지나쳤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어떤 교회 앞에 차를 멈추었습니다. “왜 이 교회가 가장 좋은 교회입니까?” 대답하기를, “나는 교회를 안 다니는 사람이라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인지 모릅니다. 단지 이 교회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이 가장 밝고 기뻐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교회가 제일 좋은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그 불신자 기사의 말이 맞습니다. 기쁨이 넘치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교회의 기쁨은 어디서 옵니까? 주님으로부터 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요한복음 1713절에서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시면서, “저희로 내 기쁨을 충만히 가지게해 달라고 구하셨습니다. 주님의 기쁨은 세상으로부터 오지 않습니다. 세상의 환경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세상의 역경 속에서 더욱 기뻐하라고 명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기쁨은 성령 충만한 자에게 나타나는 열매입니다. 주님이 주시기를 기도하셨던 기쁨을 소유하고, 이웃에게도 기쁨을 주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인내로 기다렸습니다. 24절에 보면,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 사이에 눈물의 편지’ (severe letter)를 보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큰 환난과 애통하는 마음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그 편지에는 고린도전서처럼 많은 책망이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것이 사랑의 권면이었다고 말씀합니다: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가슴 아픈 방문과 눈물의 편지 후에도 고린도 교인들이 변하지 않았을 때에, 또 다시 방문하여 근심을 주고 받는 것은 지혜롭지 않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바울은 기도하면서, 그들이 회개하기를 기다렸습니다.

마찬 가지로, 우리도 때로는 기다려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내 마음도 내 마음대로 안되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하실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감화시켜서 변화를 일으키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맡기고, 인내로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인내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Robert Strand 목사님은 성령의 열매 성경 공부 시리즈에서 인내의 열매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성령님은 간단한 방법으로 신자에게 인내를 갖도록 만드신다. 무언가 참고 기다려야만 하는 것을 주시는 것이다. 오래 참음은 밖에 다른 방법으로는 생기지 않는다. 견딜 것도 없고, 기다릴 것도 없고, 참을 것도 없고, 오래 지속해야 일도 없는 사람은 인내라는 성령의 열매를 맺을 없다. 인내의 열매를 거두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며, 죽을 때까지 거둘 수도 있다. 우리가 입학한 학교는 평생 다녀야 하는 학교이다. 인내란 오랫동안 고생을 견뎌야 하는 것이기에, 제임스 성경은 longsuffering 이라고 번역하였다. 궁극적으로 인내란 미래의 영광을 기다리는 것이다. 하늘의 상을 기다리는 것이다.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 5:7).

그렇습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자는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리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온전히 경험하는 유일한 길인 것입니다. 시편 62 1절에서 다윗은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기도하십니까? 잠잠히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기도하십니까? 우리의 기도에는 나의 뜻을 이루려는 성급함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인내를 달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속히 달라고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기다리는 마음이 부족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신앙의 위인들은 모두 기다리는 가운데,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기다리게 하십니까? 인내의 열매를 맺도록 해주시기 위함입니다. 야고보서 1 3절로 4절은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말씀합니다. 로마서 5 3절로 4절도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게 한다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기다리게 하시는가? Robert Strand 목사님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그의 자녀들을 성숙시키시는 작업을 하지 않으신다면, 모든 일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적 성장에 관심이 있으시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신속히 주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성숙이라는 목표를 이루시기 위하여 기다림이라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를 사용하신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을 천국 백성으로 준비시키실 때에, 편리한 인스턴트 방식으로 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기다릴 때에 무엇을 기억하여야 하는가? 기다림에는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을 안달 나게 하고 올리는 분이 아니시다. 그리고 감당치 못할 시험을 허락지 않으신다. 당신이 기다리는 것을 즐기지도 않으신다. 하나님은 당신을 성숙한 인간으로 만들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당신이 과정에서 실패하기를 원치 않으신다. 당신이 보기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같지만, 실제로는 무언가 진행중인 것이다. 믿음을 지키고 소망을 붙잡으라. 하나님이 당신의 속에서 역사하고 계심을 굳게 믿고 끝까지 견디라.

말씀을 맺습니다. 참으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인내의 열매를 거두시기 바랍니다. 낙심치 아니하고 포기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때에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것입니다. 추수꾼의 기쁨에 동참하게 것입니다. 앞에 있는 즐거움을 바라보며, 모든 어려움을 인내로 이겨 나가는 하나님의 귀한 종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