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음의 우선 순위를 점검한 기도 시간이었습니다. 순서를 담당하신 1목장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밤부터 큰 눈이 온다는 일기 예보에 따라서, 내일 화요일 새벽 기도회를 캔슬합니다. 

장년: 함대옥, 우정희, 정재훈, 이기호, 이경의, 김영희, 주원열 (7명)

청년: 이하경, 이상엽, 한민식, 나예진, 김규리, 신진실, 이윤호, 최혜원, 하우석, 정호웅, 서지원, 정노아 (1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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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을 보내심 6:7-13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전도 여행을 보내셨습니다. 오늘 날로 말하면 단기 선교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빈 손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양식도 가지고 가지 말고, 돈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심지어 옷도 두 벌을 준비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단지 가파르고 험한 길을 갈 때에 필요한 지팡이만 들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준비물 없이 가라는 것이지요. 비상금도 필요 없고, 비상 양식도 필요 없고, 옷도 필요 없고, 슬리핑 백도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맨손에 지팡이 하나 달랑 들고 전도 여행을 떠난 제자들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누가복음 22 35절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전대와 주머니와 신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제자들이 “없었나이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매우 뜻 밖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주머니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 22:36). 무슨 뜻일까요? 왜 아무 것도 필요 없다고 하시던 예수님이 이제는 다 준비물을 챙기라고 하실까요?

Albert Barnes 라는 주석가는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주님은 이제 때가 바뀌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전에는 주님이 짧은 시간 동안 그들을 보내셨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 동네를 돌아다녔다. 그들의 여행은 짧은 여행이었고, 장기간 여행에 대비한 준비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넓은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는 낯선 자들과 시련과 위험과 궁핍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주님이 죽을 시간이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한 위험이 다가오고 있었으므로, 그들이 앞 날을 대비하여 준비하는 것이 타당하였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 의거해서 주님의 사역을 할 때에 아무런 준비가 필요 없다, 지팡이 하나만 있으면 된다고 말한다면,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오늘날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충분한 준비를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것도 준비할 것이 없고, 두 벌 옷도 필요 없고, 양식이나 돈도 필요 없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이 들어 있습니다. 곧 주님의 사역을 하는 사람들은 주님의 공급    하심을 의지하여야 하고, 주님께서 미리 예비하심, 곧 여호와 이레의 믿음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문을 여시고, 하나님이 계획 가운데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실 때에는 예비하심과 공급하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중요한 교훈은 주의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짐이 가벼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거운 짐을 꾸릴 필요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무거운 짐은 전도 여행에 오히려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2 1절에 보면,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라.” 믿음의 경주를 마라톤에 비유하였습니다. 마라톤을 뛰는 사람이 자기 자식들, 자기 살림 살이 다 짊어지고 뛰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여벌의 옷과 신을 들고 뛰는 사람도 없습니다. 밥통을 들고 뛰는 사람도 없습니다. 최대한 가볍게 옷을 입고 뛰는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는 짐이 가벼워야 합니다. 주님의 제자는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짐이 많으면 주님을 따라다닐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을 마가복음 1장에서 이미 보았습니다: “갈리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좇으니라.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저희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곧 부르시니, 그 아비 세베대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 가니라” ( 1:16-20).

          그들은 어부였습니다. 배가 있었습니다. 그물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부리는 삯꾼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따르고자 한다면, 그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야 했던 것입니다. 무거운 배를 끌고 다니면서 어떻게 주님을 따를 수 있겠습니까?

사실 그들에게는 얼마나 많은 핑계 거리가 있었겠습니까? 당장은 안됩니다, 시간을 주십시오, 생각해 보겠습니다, 기도해 보겠습니다, 노력해 보겠습니다, 이 때까지 하던 고기 잡이는 어떻하나요, 배와 그물을 어떻하나요, 아버지는 어떻하나요, 내가 고용한 삯군들은 어떻하나요… 또 얼마나 많은 질문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얼마나 오랫동안 따라 다녀야 합니까, 나를 끌고 어디로 가실 것입니까, 주님을 따르면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일절 묻지 않았습니다. 참된 신자라면 주님이 제자로, 사역자로 부르실 때에 즉시 온전히 기쁨으로 순종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9 59절로 62절에 보면, 예수님이 어떤 사람에게 “나를 좇으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 하옵소서”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정말 너무나 비인간적인 것이었습니다: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또 다른 사람이 주님께 나와서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습니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 하소서” 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에 대한 주님의 대답도 정말 너무한 것이었습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아버지 장례식 마치고 주님을 따르겠다는데, 그것 마저 안된다고 하시면 너무 한 것 아닙니까?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주님을 따르겠다는데, 그것 마저 안된다고 하시면 너무 한 것 아닙니까? 예수님이 보실 때에, 그 사람들은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그 사람들이 한 말을 자세히 보면, “먼저”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 하옵소서.”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 하소서.” 그들에게는 주님을 따르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일, 더 중요한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와서 하는 말이, 주님 제가 주님을 따르기는 따를 터인데, 먼저 아버지와 가족에게 할 일이 있습니다, 그 일을 먼저 하고, 다음에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라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아버지 장례를 치루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그것이 먼저라고 말하기 때문에, 안된다고 하신 것입니다. 너는 아직 영적으로 죽은 자이다, 너는 지금 쟁기를 들고 뒤를 돌아다 보는 자이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다, 너는 그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그것이 주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돈을 열심히 버는 것이 나쁜 일이 아닙니다.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나쁜 일이 아닙니다. 가정과 자녀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보다 우선 순위에 놓이게 되면,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조차 하나님 나라보다 현실을 더 중요시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적인 일보다 세상의 일을 더 중요시하는 것입니다.우리는 우선 순위를 잘 정하여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가다가, 영원한 것을 놓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뒤를 돌아다 보는 자가 되지 맙시다. 배를 버릴 수 없어서, 그물을 버릴 수 없어서, 아비를 버릴 수 없어서, 주님을 따를 수 없다고 핑계하지 맙시다. 버릴 수 없는 무거운 짐이 너무 많아서, 주님을 따라 갈 수 없다고 핑계하지 맙시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부르시면, 다 놓고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을 소천, 하늘에서 불렀다고 말합니다.

전도사님이 주일 찬양 마지막 곡으로 몇 번 불렀던 주님을 보게 하소서라는 찬양을 저는 처음 듣는 곡이었는데, 마지막 부분에 마음에 와 닿는 가사가 있어서, 유튜브로 찾아서 여러 번 들어 보았습니다: “주님 앞에 나 엎드려 주의 음성 기다리니, 나를 부르실 때 믿음으로 걸어가리.” 주님이 부르실 때,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내려 놓지 못해서 순종하지 못하는 자가 아니라, 믿음으로 걸어가는 순종의 종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