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그릇 속의 보배 (고후 4:7-15)

        오늘 설교 제목은 질그릇 속의 보배입니다. 7절에 보면, “보배라고 하였으므로, 이 보배란 바로 앞 절에 나오는 예수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입니다. 그처럼 보배로운 복음의 빛을 바울을 비롯해서 질그릇 같이 연약한 인간들의 마음에 담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NLT: We now have this light shining in our hearts).

        그러한 질그릇 속의 보배를 보여주는 실화가 있습니다. 1947년에 발견된 사해 문서 (Dead Sea Scrolls) 20세기 최고의 발견이라고 불리워집니다. 그 두루마리들은 1947년부터 1956년까지 11개의 동굴에서 발견된 900여편의 다양한 종교적 문서들입니다. 특별히 그 중에는 히브리어 구약 성경이 다수 포함되어 있는데, 이사야서만 전체가 보존되어 있고, 나머지는 모두 조각 단편들입니다.

그 문서들은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파 사두개파와 더불어 중요한 종교 집단이었던 엣세네파 사람들이 쿰란 지역의 동굴에서 금욕 생활을 하면서 읽었던 경전들입니다. 그러므로 그 연대가 기원전 2세기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입니다. 사해 문서가 발견되기 전까지 지구상에 존재하던 가장 오래된 구약 사본은 기원후 900년경에 맛소라 학자들이 필사한 레닌그라드 사본 등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기원전 2세기경에 기록된 사해 사본은 구약 사본의 연대를 천 년 이상 끌어올렸던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구약 번역본의 근간이 되는 맛소라 사본이 얼마나 정확하고 진정성이 있는지를 증명하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처럼 귀중한 사해 사본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그 가치를 전혀 알지 못하였습니다. 베두윈 (Bedouin) 이라는 유목민족에 속한 무하메드 에드딥 (Muhammed ed-Dip) 이라는 목동이 하루는 잃어버린 염소를 찾아 사해 북서쪽 해안 절벽 지대를 헤매고 있었습니다. 그는 도망친 염소가 동굴에 들어갔는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동굴 속으로 돌을 던졌는데, 동굴 속에서 염소의 울음 소리 대신에 항아리 깨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목동은 호기심에서 동굴에 들어가 보니, 항아리 속에 양피지 두루마리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는 4개의 두루마리를 집으로 가져와서 방치하였다가, 이브라힘 이즈하라는 골동품 상인에게 헐 값에 팔았습니다. 그 네 편의 두루마리 속에는 귀중한 이사야 스크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1954 7 1 Wall Street Journal에는 이런 광고가 실리게 됩니다:

MISCELLANEOUS FOR SALE
THE FOUR DEAD SEA SCROLLS
Biblical manuscripts dating back to at least 200 B.C.
are for sale. This would be an ideal gift to an educational
or religious institution by an individual or group.

4개의 두루마리는 당시에 25만불에 팔렸습니다. 지금은 값 주고 살 수 없는 인류의 보화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보화를 발견한 목동은 그것을 가지고 신발끈을 만들려고 했고, 일부는 땔감으로 불태워 버렸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항아리에 들어 있었던 보배였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러한 보배를 왜 질그릇 같이 연약한 인간들에게 맡기셨는가? 왜 취약한 인간들을 통해서 복음이 전파되게 하셨는가? 오늘 본문 7절은 말씀합니다: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전서 126절로 29절에도 보면, 약하고 미련한 자들을 부르시고 택하셔서, 세상의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세상의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약해 보이는 십자가로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신 하나님은 약한 자들을 불러서 강한 자로 사용하십니다. 미련해 보이는 십자가를 통해서 구원의 지혜를 드러내신 하나님은 미련한 자들을 불러서 지혜로운 자들로 사용하십니다. 그 이유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고전 1:29).

사사기 7장에 보면,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명령을 내리십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군사의 수를 자꾸 줄이도록 하셨습니다. 전쟁에 나갈 때에 군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데, 왜 하나님은 300명까지 줄이라고 하셨는가? 사사기 7 2절에서 하나님은 그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H. A. Ironside 목사님은 오늘 본문 7절 말씀과 기드온을 연결시킵니다. 바울이 질그릇 속에 복음의 빛을 담아 주셨다고 말씀한 것은 항아리 속에 횃불을 감춘 기드온의 삼백 군사를 염두에 두고 한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7:16). 기드온의 군대가 한 밤 중에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왼손에 횃불을 들고 오른손에 나팔을 들어 불며 가로되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외칠 때에, 당황한 미디안의 13 5천명의 군사들은 (8:10) 서로 동무를 죽이며 자멸하였던 것입니다.

Ironside 목사님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This is what every Christian is, an earthen vessel with a light in it. To you and to me there has been committed the glorious light of the gospel. In order for the light to shine out of a vessel, it has to be broken.

바울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고, 핍박을 받고, 거꾸러뜨림을 당하였습니다 (8-9). 한 마디로, 계속 깨졌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러한 환난들을 가리켜서 예수의 죽으심을 몸에 짊어짐” (10), 혹은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 (11) 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바울은 영적인 역설을 (paradox) 말씀합니다. 곧 자신이 깨지고 죽을 때에, 예수의 생명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생명이 너희 (고린도 교인들) 안에서 역사한다고 말씀합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예수님 자신이 깨지시고 죽으심으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7장에 보면, 맛사라는 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이 없다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와 다투었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신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땅히 받아야할 대가는 하나님의 진노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반석에서 물을 내어 마시게 하신 것입니다.

모세에게 명하시기를 홍해를 가른 그 지팡이를 손에 들고 장로들과 같이 호렙산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거기서 지팡이로 반석을 치라고 명하셨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하였더니, 그 반석에서 샘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 목마른 광야에서 솟아난 이 샘물은 얼마나 귀한 선물이었겠습니까? 반석에서 구원의 생수가 솟아 나왔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건에 대해서 고린도전서 10 1절로 4절에서 중요한 말씀을 합니다: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원의 생수를 공급하여 준 그 반석, 모세가 지팡이로 쳤던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이셨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친 반석은 하나님으로부터 맞으신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하나님은 불평하고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심판과 진노를 쏟아 붓는 대신에, 반석을 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반석에서 나온 생명수로 백성들을 마시게 하셨습니다.

그 깨어진 반석은 누구를 보여주는가? 바로 십자가에서 찢기고 깨어지시며 물과 피를 다 흘리신, 그리하여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생명수,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구원의 생수를 주신 그리스도를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 말씀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맞고 심판받아야 할 그 자리에서 대신 깨어지신 반석이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이 공의의 지팡이를 드셨는데, 그 지팡이로 죄악된 자기 백성을 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치셨습니다: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 53:6). 하나님의 공의는 만족되어야 했습니다. 죄는 심판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에 대한 진노를 십자가에 달리신 아들에게 쏟아 부으셨습니다. 내가 받을 저주와 심판을 그 분이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 53:5). 예수님이 깨지고 죽으실 때에, 거기서부터 영생수가 솟아 나왔던 것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질그릇이 깨어지고 죽을 때에, 그 안에 있는 보배, 곧 복음의 빛, 생명의 빛이 비취게 됨을 말씀합니다. James Boice 목사님은 그 빛을 supernatural radiance라고 불렀습니다. 스데반은 핍박 중에 천사의 얼굴을 통하여 supernatural radiance를 비추었습니다. 스데반은 공회에서 거짓 증인들의 모함을 당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 같았다고 사도행전 6 1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스데반은 순교를 통하여 supernatural radiance를 바울에게 비추었습니다. 사도행전 8 1절에 보면,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울은 스데반을 돌로 죽이는 현장에 있었습니다. 돌을 던지는 증인들의 옷을 맡았습니다. 그러나 사울의 머리 속에서는 스데반의 기도가 신비로 남아 있었습니다. 자신을 돌로 치는 자들에게하나님이 너희에게 벌을 내리실 것이다, 너희 후손들이 되나 어디 두고 보자, 너희는 지옥에 것이다,그렇게 말해야 정상인데, 어떻게 “주여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라고 용서를 구할 있을까?

그래서 어거스틴은스데반이 순교하며 기도하지 않았다면, 바울은 설교하지 못하였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스데반은 삶을 통하여, 그리고 말씀 증거를 통하여 복음을 증거했을 뿐만 아니라, 죽음을 통하여서도 예수님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순교의 자리에 있었던 사울에게 supernatural radiance를 비추어 주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요한복음 12 24절에서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십자가를 눈 앞에 보시면서, 자신의 죽음을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는 것으로 비유하셨습니다. 밀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습니다. 그러나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질 때에, 자신은 죽지만 거기서부터 새로운 생명이 움트며 종국에는 많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 자연의 원리입니다.

예수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내려와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유대인과 헬라인 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과 족속들이 예수의 복음을 듣고 구원받는 결실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오늘 예배에 참예한 저와 여러분도 땅에 떨어져 죽으신 주님의 열매들입니다. 땅에 떨어진 밀알은 죽습니다. 그러나 거기서부터 많은 새로운 생명들이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5절은 바울이 예수님을 위하여 죽음에 처하는 삶을 사는 목적을 말씀합니다. 곧 하나님의 은혜가 많은 사람들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고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그러한 역설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죽을 때에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가 육체의 죄악된 욕망을 십자가에 못박을 때에 성령의 열매가 맺힙니다. 우리가 죽을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됩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길을 가로막는 베드로에게 “사단아 물러가라”고 꾸짖으셨습니다. 죽음을 통하여 생명이 드러나며,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을 막는 것이 사단의 역사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으라는 말씀을 부인하도록 만드는 것이 사단의 역사입니다.

주님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들을 장차 하나님께서 높여 주실 것입니다. 그것이 하늘의 영광입니다. 계시록 3 21절에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성도 여러분들도 자신을 부인하고 깨어지고 죽음으로써 복음의 보배로운 빛을 발하고, 하늘의 영원한 생명과 영광을 취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