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 (삼상 10:1-13)

 

하나님은 사무엘이 사울을 만나기 전에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내일 이맘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삼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삼상 9:16). 그리고 사무엘이 사울을 볼 때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이는 내가 네게 말한 사람이니, 이가 내 백성을 통할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삼상 9:17).

 

사무엘이 사울에게 하나님께서 너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다고 말하자, 사울을 당황스러운 반응을 보였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오며,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나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삼하 9:21). 사무엘은 사울에게 기름을 머리에 부어 왕으로 삼습니다(삼상 10:1). 그리고 하나님이 진정 너를 왕으로 삼은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세 가지 징조를 말합니다.

 

첫째는, 라헬의 묘실 곁에서 두 사람을 만날 것인데, 사울이 찾던 암나귀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전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삼상 10:2). 두번째는, 디볼 상수리 나무에서 세 사람을 만날 것인데, 그들이 네게 문안하고 떡 두덩이를 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삼상 10:3-4). 세번째는, 블레셋 영문에서 선지자의 무리를 만날 것인데, 너에게 여호와의 신이 크게 임하여,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삼상 10:5-6).     

 

선견자 사무엘이 예견한 세 가지 징조는 모두 다 응하였습니다. 특별히 세번째 징조가 임할 때에, “전에 사울을 알던 모든 사람이 사울의 선지자들과 함께 예언함을 보고 서로 이르되, 기스의 아들의 당한 일이 무엇이뇨?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 하였다1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바로 이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는 속담을 상고해 보고자 하는데, 그 전에 두 가지 예비적인 지식이 필요합니다.

 

첫째, 6절에 사울이 변하여 새 사람이 될 것이고 했고, 9절에 하나님이 마음을 주셨다고 했는데, 이것은 예수를 믿고 거듭 나서 새 사람이 되는 것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Don’t read New Testament “regeneration” into this statement: it refers primarily to a different attitude and outlook. This young farmer would now think and act like a leader, the king of the nation, a warrior-stateman whose responsibility was to listen to God and obey His will. The Holy Spirit would further enable him to serve God as long as he walked in obedience to His will. Because Saul became proud and independent and rebelled against God, he lost the Spirit’s power, he lost his kingdom, and he eventually lost his life. (Warren Wiersbe)

 

둘째, 구약에서 성령을 받은 사람들과 신약에서 성령을 받는 사람들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In the old Testament era, God gave His Holy Spirit to chosen people to enable them to perform special tasks, and God could take the Spirit away as well. Believers today, who are under the new covenant, have the Holy Spirit abiding within forever (John 14:16-17) as God’s seal that we are His children (Eph. 1:13-14). When David asked God not to take the Holy Spirit from him (Ps. 51:11), he was thinking especially what the Lord did to Saul (1 Sam. 16:14, 28:15). Believers today may grieve the Spirit (Eph. 4:30), and quench the Spirit (1 Thess. 5:19), but they cannot drive Him away. (Warren Wiersbe)

 

구약의 삼손도 여호와의 신이 크게 임하여 (14:6, 19) 단신으로 블레셋을 막아 냈으나,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사는 사람이 되었을 때에, 여호와께서 그를 떠나셨으므로 (16:20), 더 이상 힘을 쓰지 못 하였습니다.

 

창세기 6 2절은 경건한 자손들이 타락하여 육체가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의 신이 영원히 그들과 함께 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경건한 자손들이 타락하였을 때에, 그들은 육체가 되었고, 성령님은 그들로부터 떠나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Keil and Delitzch라는 권위있는 구약 주석은 다음과 같이 주석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타락하여 육체가 되었다고 말씀하신다. 곧 하나님의 성령의 지배를 받을 수 없고, 삶의 신성한 목적으로 돌아갈 수 없는 육체로 전락하였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여기 육체라는 뜻의 בּשׂר (바솨르)는 신약의 σάρξ (싸르크스)처럼 도덕적인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곧 자연적인 사람의 몸이 아니라, 죄로 인하여 불경건하게 된 육체를 의미한다.

 

사울도 여호와의 신이 임하여 예언을 하였으나, 후에 버림받은 경우입니다. 사울이 처음 예언을 하였을 때에, 사람들은 너무나 놀라서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고 반문하였습니다. 메튜 헨리는 이렇게 주석하였습니다:

 

지금 사울이 선지자 무리와 함께 예언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신약에서 그와 동일한 이름 (사울)을 가진 자가 전에 핍박하던 복음을 전파는 것을 볼 때 사람들이 크게 놀랐던 것과 비슷했다 (21,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사울이 선지자들 가운데 끼여 있었다는 것은 속담이 될 정도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런데 이 속담은 사무엘상 1924절에 다시 나옵니다. 사울이 악령에 사로 잡혀서 단창으로 다윗을 향하여 던졌으나, 다윗은 피하고 단창은 벽에 박혔습니다. 다윗이 사무엘과 함께 나욧으로 피신하자, 사울이 다윗을 잡으려고 사자들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사자들이 선지자 무리가 예언하는 것과 사무엘이 수령으로 선 것을 볼 때에, 하나님의 신이 사울의 사자들에게 임하매 그들도 예언을 하였습니다 (삼상 19:20). 사울은 두 번째, 세 번째 사자들을 계속 보냈으나, 보내는 사자들마다 예언을 하고, 다윗을 잡아오지 못하였습니다.

 

그러자 사울이 직접 나욧으로 왔지만, “하나님의 신이 그에게도 임하시니, 그가 라마 나욧에 이르기까지 행하며 예언을 하였으며, 그가 또 그 옷을 벗고 사무엘 앞에서 예언을 하며 종일 종야에 벌거벗은 몸으로 누웠었더라. 그러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 하니라” (삼상 19:23-24). 사울은 아주 추하게 하루 종일 벌거벗고 누워서 예언을 했다는 것입니다.

 

메튜 헨리는 이렇게 주석하였습니다: 사울은 이미 하나님께 버림받은 상태였고 악령에 의해 충동되고 있었다. 사무엘상 1012절에서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는 속담이 회자될 때와 지금의 경우는 아주 다르다. 오늘 날도 큰 은사를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은혜는 갖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또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면서도, 그 분에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고 일컬음을 받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7:22-23). 

 

오늘 사무엘상 10장 본문에 나오는 사울도 선지자들 가운데 있느냐?”는 속담은 변하여 새 사람이 된 사울에 대한 놀라움의 표시였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상 19장에 나오는 동일한 속담은 경이로움이 아니라, 비웃음의 말이었습니다. 저런 형편없는 인간도 예언을 하느냐, 개나 소나 다 예언을 하느냐, 그런 조롱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나더러 이르기를,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지 않았나이까?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그들은 선지자 노릇을 하고도 왜 버림을 받았을까요? 바로 앞 절에 답이 있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7:21).

 

사울은 선지자 노릇을 하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뜻에 역행하여 다윗을 죽이려고 20년을 쫓아다녔습니다. 그는 악령이 시키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야고보서 219절에 보면, 귀신들도 하나님이 한 분이신 줄을 믿고 떤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귀신들은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습니다. 사탄의 뜻을 행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은사와 열매에 대하여 이렇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예언과 같은 성령의 은사를 가지고도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면, 세상 사람들의 조롱을 받게 된다. 고린도전서 122절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지식을 안다고 하더라도, 성령의 열매인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의 은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성령의 뜻을 따라 행하며,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17절을 보면,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을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육체란 NIV 성경은 sinful nature (죄성)이라고 번역하였는데, NEB 성경은 lower nature 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갖고 태어나는 타락한 성품, 죄악된 성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육체가 원하는 것은 성령의 뜻과 정반대로 서로 갈등을 일으키고 부딪친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마음에 오실 때에, 죄성이 다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 욕심, 옛 성품은 그대로 있습니다. 그래서 갈등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29절은 이스마엘을 육체를 따라 난 자라고 부르고, 이석을 성령을 따라 난 자라고 부릅니다. 육체를 따라 난 자 이스마엘만 있을 때에는 갈등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따라 난 자 이삭이 태어남으로 갈등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갈등에서 승리하는 길은 무엇인가? 성령님께 순종하고 성령님과 동행할 때에,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게 되고,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라는 표현은 서서히 결실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열매는 천천히 자라기 때문에, 자라는 것이 눈에 띄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보면, 열매가 자란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성이 죽는 것도 서서히 죽지만, 성령의 성품이 자라는 것도 서서히 자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인격은 서서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16절과 25절은 성령을 좇아 행하라혹은 성령으로 살아라, 성령으로 행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성경에는 다르게 표현되었지만, 영어 성경을 보면, 16절과 25절은 같은 말씀입니다. Walk in the Spirit, Live by the Spirit입니다.

 

성령의 뜻을 따라 살 때에, 우리는 서서히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육체의 일들은 서서히 사라지고, 성령의 열매들이 맺히게 됩니다. 옛 사람은 서서히 죽어가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서서히 회복하게 됩니다. 죄의 유혹이 계속되지만, 죄를 짓고 싶은 욕망이 서서히 사라집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칭의를 주셨습니다. 율법의 정죄로부터의 자유를 주셨습니다. 복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의 영향력으부터 온전히 해방되는 과정은 서서히 이루어집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날마다 더 온전한 자유인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날마다 성령을 따라 행하심으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며, 성령의 열매를 많이 맺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