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삼상 15:1-23)

 

사울은 세상적으로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보통 성공한 것이 아니라, 크게 대성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첫번째 왕이 되는 영예를 얻었습니다. 사울은 왕이 될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먼저 사울은 집안이 좋았습니다. 사무엘상 9 1절에 보면, 사울의 아버지 기스는 베냐민 지파에 유력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게다가 사울은 잘 생긴 남자였습니다. 사무엘상 9 2절에 보면, 사울은 “준수한 소년으로,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는 더하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말 현대인의 성경에는 미남자라고 번역하였습니다. 또한 사무엘서 곳곳에 ‘사울에게 여호와의 신이 크게 임하였다’ (삼상 10:10), 혹은 ‘사울이 하나님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었다’ (삼상 11:6) 는 말씀대로, 사울은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울은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상 9 21절에 보면,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에게 하나님이 당신을 왕으로 삼으셨다고 말하였을 때에,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베냐민 사람이 아니오며,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사무엘이 백성들을 미스바로 모으고 사울을 왕으로 추대하려 할 때에도, 사울은 부끄러워 행구 사이에 숨었던 사람입니다 (삼상 10:22).

 

그리고 사울은 전쟁에 능하였습니다. 비록 사무엘이 사울에게 왕으로 기름을 부었지만, 사울이 백성들에게 왕으로 추대를 받은 것은 사무엘상 11장에 나오는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후였습니다. 사울은 33만 명의 군사를 소집하는 리더쉽을 발휘하였고, 군사를 세 부대로 나누어 새벽에 적진을 기습하는 전략도 보여주었습니다 (삼상 11:11).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길갈로 가서 여호와 앞에서 사울을 왕으로 삼았다고 사무엘상 11 15절은 말씀합니다.

 

사울은 왕이 된 다음에도 계속해서 전쟁에서 이겼습니다. 사무엘상 13장과 14장에는 사울왕이 블레셋과 싸워서 이긴 기사가 나오고, 사무엘상 15장에는 사울왕이 아말렉과 싸워서 이긴 기사가 나옵니다. 그러나 사울왕은 그 승리한 두 전투로 인해서 하나님께 버림을 받게 됩니다. 두 전쟁에서 모두 이기고도 하나님께는 버림을 받았던 것입니다. 사울왕은 세상적으로는 크게 성공하였으나, 하나님께는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사울의 일생은 성공한 인생입니까, 아니면 실패한 인생입니까? 예수님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서 팔레스틴 지방을 평정하였지만, 하나님께 버림받은 인생이 되었으니, 성공한 인생이 아니라 실패한 인생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사울왕이 하나님께 버림받은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먼저 사무엘상 13장에 사울왕의 큰 실수가 나옵니다. 블레셋과 싸우기 위하여 전쟁터에 나갔는데, 사무엘이 정한 기한이 지나도 오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이 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나서 전쟁에 나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을 오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꾸 흩어졌습니다. 다급해진 사울왕은 자기가 직접 번제를 드렸습니다.

 

사무엘이 와서 묻습니다: “왕의 행한 것이 무엇이뇨? (삼상 13:11). 사무엘에 대답합니다.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고 전쟁터에 나가야 하겠는데, 사무엘 당신은 오지 않고 시간은 다급하여서 부득이 번제를 드렸나이다 (삼상 13:12). 사무엘은 사울왕에게 망령되니 행하였다고 책망하고 (삼상 13:13),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삼상 13:14).

 

이어서 사울왕이 결정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되는 사건이 오늘 우리가 읽은 사무엘상 15장에 나옵니다. 사무엘은 사울왕에게 아말렉을 진멸 (totally destroy) 하라는 하나님의 명을 전합니다. 아말렉을 진멸해야 하는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가나안으로 행군할 때에, 대열의 후미를 공격하여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기 때문입니다 ( 25:18).

 

하나님은 이미 모세를 통하여 "아말렉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 (blot out)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 25:19). 오늘 본문에 보면,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모두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왜 그처럼 잔인한 명령을 내리셨는가? 18절에 보면, "죄인 아말렉 사람"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왕에게 죄를 심판하는 일을 맡기신 것입니다. 가축까지 모두 진멸하라는 명령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준엄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는 자비가 없습니다.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사울왕은 그 하나님의 철저한 심판을 시행하도록 명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왕은 모든 아말렉 백성을 다 진멸하였으되, 아말렉 왕 아각은 사로잡아 왔습니다. 또 양과 소에 대해서도 가치 없고 낮은 것은 진멸하였으되, 좋고 기름진 짐승들을 죽이지 않고 가져왔습니다. 이러한 사울왕의 행동을 설명해주는 성경 구절이 야고보서 1 14절로 15절에 있습니다: “각 사람이 유혹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사무엘이 사울왕에게 묻습니다: “내 귀에 들어오는 이 양의 소리와 내게 들리는 소의 소리는 어찜이니이까? (삼상 15:14). 이 때에 사울왕은 갈림길에 서있었습니다. 사울왕은 거기서 자신의 죄를 자백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랬다면 다윗왕처럼 용서를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다윗왕은 충신 우리야 장군을 전쟁터에서 지능적으로 죽이고 그의 아내 밧세바를 취한 죄를 나단 선지자에게 지적받았을 때에, 즉시로 회개하였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삼하 12:13).

 

우리 눈에는 다윗왕의 죄가 사울왕의 죄보다 더 크고 그 죄질이 더 악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나단 선지자는 다윗왕에게 사죄를 선언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으니 당신이 죽지 아니할 것이다” (삼하 12:13). 요한일서 1 9절은 말씀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 어떤 불의를 행하였던 간에 솔직히 죄를 자백하면 깨끗이 용서하여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울왕은 자신의 죄를 자백하는 대신에 변명을 하였습니다. 그것도 아주 교묘한 변명을 하였습니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남겼습니다” (삼상 15:15).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가장 좋은 것들을 죽이지 않고 가지고 왔습니다. 얼마나 가증스러운 변명입니까?

 

그때 사무엘이 사울왕에게 유명한 답변을 하였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습니다” (삼상 15:22).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보다 더 좋아하시겠습니까?”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습니다.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삼상 15:23).

 

사울왕은 하나님께 최상급의 제물을 드리며 예배드리려고 했다는데, 이것이 왠 날벼락입니까? 하나님은 사울왕의 중심을 보신 것입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으나,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잘못을 솔직히 자백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다윗왕처럼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울왕은 불행하게도 자신의 죄를 숨기고 변명하는데 급급하였습니다.

 

오래 전에 한국의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프로그램에서 어떤 목사님을 다룬 것을 보았습니다. 당시 교인이 몇 만명에 으르는 대형 교회의 목회자였는데, 여러 가지로 물의를 일으키고, 이단 내지는 사이비로 지탄을 받는 분이었습니다. 지금은 성폭행 혐의로 감옥에 있습니다.

 

그 프로그램은 이 목사님이 라스베가스의 slot machine 앞에서 밤새도록 놀음을 한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이 자기가 왜 그랬는지에 대해서 해명을 하는데, 정말 귀를 의심케 하는 말이었습니다. 곧 교회 재정에 보탬이 한 번 되어 보려고 밤새도록 팔에 쥐가 나도록 쉬지도 않고 당겼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그런 말도 안되는 합리화를 하면서 타협적인 믿음 생활을 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서, 그 불순종에 대해서 온갖 그럴듯한 구실을 내세우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께 예배드리려고 가장 좋은 짐승들을 죽이지 않았다는 사울왕이나, 교회 재정에 도움을 주려고 라스베가스에서 밤새도록 땡겼다는 목사님과 똑같이 가증스러운 변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속에는 자기 명예욕, 권력욕, 탐욕이 가득 차 있으면서, 겉으로는 아주 그럴 듯한 신앙적인 구실을 내세우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참으로 가증스러운 인간입니다. 시편 51 17절은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이제 돌이켜 순종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렇게 회개하고 새사람이 될 때에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빛 되신 하나님 앞에 나와가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과 동행하시는 복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아말렉과의 전쟁을 우리의 영적인 전투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스펄쳔 목사님은 아말렉과의 전쟁은 old nature new nature, old man new man, 그리고 flesh Spirit의 투쟁으로 설교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애굽에서 나올 때에는 전쟁을 전혀 치루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애굽왕 바로와 싸우지 않았습니다. 단지 집 문설주에 칠한 어린 양의 피로 구속을 받았습니다. 홍해가 앞에 있고 뒤에서는 애굽 군사들이 추격해 올 때에도 모세는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고 말했습니다. 나가서 싸우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마찬 가지로, 우리가 예수의 피로 구속받고, 마귀의 권세로부터 해방될 때에, 우리가 한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두 다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하신 일입니다. 우리는 단지 복음에 순종하여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습니다. 고린도전서 12 3절은 “누구든지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 16절에서, 아버지가 너희에게 성령을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를 믿는 자의 마음에는 성령이 계십니다. 문제는 옛 사람의 본성, 죄악된 본성도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 죄성만 있을 때에는 아무런 갈등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성령께서 마음에 들어오시게 되니, 성령님과 죄악된 본성이 충돌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과 육체 (sinful nature)는 서로 대적하는 관계입니다. 갈라디아서 5 17절에 “육신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 안에는 성령의 인도대로 살고 싶어하는 열망과 육체의 소욕대로 살고자 하는 타락한 본성이 갈등을 일으킵니다. 그것이 영적인 갈등입니다.

 

갈라디아서 429절은 이스마엘을 육체를 따라 난 자라고 부르고, 이삭을 성령을 따라 난 자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30절은 이스마엘을 내어 쫓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살아 숨쉬고 있는 이스마엘을 내쫓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옛사람을 내쫓는 일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아브라함이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낼 때처럼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삭과 이스마엘은 동거할 수 없습니다. 옛사람과 새사람은 동거할 수 없습니다. 육체의 소욕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로마서 8 5절에 말씀했습니다. 육체의 소욕과 육신의 소욕을 끊어버리고, 이스마엘을 내어쫓음으로써 우리는 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미 출애굽기 17장에서 아말렉과 싸워야 했습니다. 출애굽 후에는 더 이상 하나님이 싸우실 것이니 너희는 가만히 서서 구경만 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서 12 4절은 우리가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워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애굽에서는 바로와 싸우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애굽에서는 하나님이 싸우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어린 양의 피로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죄와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싸워서 죄악의 세력을 몰아 내야 하는 것입니다. 내어 쫓아야 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7장에서 이스라엘이 아말렉의 공격을 물리친 것은 기도의 힘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힘으로는 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세가 기도하는 손을 내리면, 이스라엘은 어김없이 패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가 산 위에서 기도하면 이스라엘이 이겼습니다.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이스라엘에게 임하였습니다. 밀고 밀리는 팽팽한 싸움 가운데 승리의 결정적인 요소가 된 것은 군사력이나 전략이 아니라, 모세의 들린 두 팔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은 기도 없이 승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말렉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그런 대적과 싸워야 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기도하지 않고 나아가면 패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의 손을 높이 들어야 합니다. 주님의 도우심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내 지혜와 힘과 능력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믿음으로 고백하여야 합니다. 혼자 기도하면 쉽게 지칩니다. 새벽 기도회에도 나오시고, 수요 예배에도 나오시고, 목장 모임에도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에 아말렉의 군기가 뽑히고, 여호와 닛시, 하나님의 승리가 임하실 줄로 믿습니다. 기도로써 영적인 전투에서 승리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