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배자의 시편 (삼상 23, 시편 54)

 

"유다 천천인 중에서" 다윗을 찾으려는 사울의 추격은 계속됩니다 (23). 그러나 다윗은 가는 곳마다 주민들의 밀고로 인하여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합니다. 일례로 다윗은 그일라 (Keilah) 지역의 주민들을 블레셋의 침공으로부터 구하여 주었으나, 그들은 사울 왕에게 다윗의 있는 곳을 밀고하려고 하였습니다 (1-14). 다윗은 인적이 드문 십 (Ziph) 황무지로 피하였으나, 십 사람들도 사울에게 다윗이 숨어있는 곳을 밀고합니다

 

사울 왕과 군사들은 마온 (Maon) 황무지에 거하는 다윗 일행을 에워싸고 포위망을 좁혀 왔습니다. 사울이 산 이편으로 가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산 저편으로 급히 피하였다고 하였습니다 (26). 다윗은 독 안에 든 쥐와 같았습니다. 나무도 별로 없는 바위산에서 더 이상 피할 곳도 없었습니다. 이 때에 하나님은 전혀 뜻 밖의 사건을 통하여 다윗을 구하셨습니다. 블레셋이 침공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사울 왕이 추격을 그치고 돌아갔던 것입니다. 다윗은 그곳을 셀라 하마느곳 (Sela Hammahlekoth, 분리하는 바위, the Rock of Escape) 라고 명명하고 기념하였습니다.

        

사실 다윗이 그일라를 구하러 갈 때에, 다윗의 부하들은 반대하였습니다. 3절에 보면, 우리가 유다 땅에서 목숨을 부지하기도 어려운데, 블레셋 군대와 싸울 여력이 어디 있냐는 것이었습니다. 그일라는 블레셋과의 접경 지역에 있는 취약한 성읍이었습니다. 힘들게 농사를 다 지어 놓았는데, 추수 때가 되자,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타작 마당을 취하였습니다 (1). 사울 왕이 와서 구해주어야 할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사울 왕에게 쫓기고 있는 다윗이 가서 구해주었습니다.

 

다윗은 그일라를 구하러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묻습니다 (2). 하나님이 가라고 하십니다. 부하들이 반대하자, 다시 하나님이 뜻을 묻습니다. 하나님은 승리를 약속해 주십니다 (4). 중요한 결정을 할 때에, 하나님께 먼저 묻는 다윗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9절에 보면, 대제사장의 옷인 에봇을 가지고 오라고 해서, 하나님의 뜻을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에봇의 흉패에 들어 있었던 우림과 (Urim) 둠밈으로 (Thummim) 하나님의 뜻을 물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대제사장의 옷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흉패입니다. 흉패는 가로 세로 각각 반 규빗, 곧 가로 세로 23쎈티 미터의 정사각형이었습니다. 그리고 각종 보석들이 가로로 3개 세로로 4, 도합 12개가 박혀 있었습니다. 이 열두개의 보석은 열 두 지파에게 고유하게 할당된 보석들이었습니다. 열 두 지파를 가리키는 보석을 물린 흉패는 대제사장의 가슴에 붙어있었습니다. 가슴은 다함이 없는 사랑을 상징합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가슴에 품으시는 사랑을 표현합니다.

 

그 흉패 안에 우림과 둠밈이 있었습니다. 우림과 둠밈은 무엇이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판결을 하는데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림과 둠밈이 들어있는 흉패를 판결 흉패라고 불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림과 둠밈은 아마도 흰 돌과 검은 돌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민수기 27 21절에 보면, 제사장 엘르아살이 우림의 판결법으로 여호와께 물을 것이고, 그 결과에 따라서 온 이스라엘 백성이 출입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판결 흉패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흉패에 물린 열 두 지파의 보석들이 주는 메시지가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라면, 우림과 둠밈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주님은 그 뜻을 알려주신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까? 우리도 흰 돌과 검은 돌을 주머니에 넣고 다녀야 할까요? 우림의 뜻을 입니다. 그리고 둠밈은 완전을 뜻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앞길에 완전한 빛을 비추어주는 것이 무엇일까요? 시편 19 7절과 8절에 여호와의 율법이 완전하다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을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또한 시편 119 105절은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고 말씀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는 완전한 빛이란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알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이 우리의 판결 흉패입니다.

 

디모데후서 3 16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케 하며, 그의 행실을 온전케 하는 지침인 것입니다. 오늘을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우림과 둠밈, 곧 빛과 온전한 지침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중요한 것은 다윗이 하나님께 먼저 묻고 행동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새로운 상황이 전개될 때에,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에, 하나님의 뜻을 먼저 물으십니까? 눈 앞에 보이는 이득만 따라가면, 롯처럼 소돔 성으로 들어가는 수도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계획이나, 부하들의 의견보다, 하나님의 뜻을 묻고 순종하였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성경을 통하여 분별하고 순종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겠다고, 성경을 탁 펼쳐서 아무 곳이나 눈에 들어오는 곳을 읽었습니다. 그랬더니 가룟 유다가 가서 목매어 죽었다라는 말씀이 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건 아니다 싶어서, 또 다시 성경을 덮었다가 탁 펴서 읽으니, “너도 이와 같이 행하라는 말씀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삼세번이라고 했으니, 한 번만 더 해보자고 생각하고, 성경을 덮었다가 탁 펼쳤습니다. 그랬더니 네가 오늘 할 일을 속히 행하라는 말씀이 보였다고 합니다.

 

그런 식으로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꾸준히 읽으면, 또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꾸준히 하면,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뜻을 알려주십니다. 그러므로 성급하게 나의 유익과 나의 뜻과 방법으로 나아가지 말고, 먼저 말씀과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묻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11절과 12절에 보면, 다윗은 사울 왕이 그일라로 내려올지, 또한 그일라 사람들이 자기를 사울 왕에게 넘겨줄지를 하나님께 묻습니다. 사울 왕이 과연 그일라로 다윗을 잡으러 내려올 것이며, 그일라 사람들은 다윗을 사울 왕에게 넘길 것이라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다윗은 십 광야로 피합니다. 마음이 씁쓸했겠지요? 그일라 사람들이 자기들을 구해준 다윗을 사울 왕에 넘길 것이라는 사실은 다윗에게 배신감을 느끼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십 광야에서도 다윗은 평안히 거할 수가 없었습니다. 19절로 20절에 보면, 십 사람들이 기브아에 있는 사울 왕에게 가서 밀고를 합니다. 다윗이 우리 땅에 숨어 있으니, 내려오시면 저희가 왕의 손에 넘겨 드리겠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다시 마온 황무지로 피합니다. 사울은 또다시 다윗이 마온 황무지로 갔다는 밀고를 듣고, 마온 황무지로 추격합니다.

 

왜 사람들은 그처럼 다윗을 밀고 하였을까요? 사울 왕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놉의 제사장 아히멜렉이 다윗에게 떡과 칼을 주었다가, 어떤 최후를 맞았는지 보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물론이고 제사장 85명이 학살을 당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일라 사람들도 자기들을 구해준 다윗을 밀고 하였습니다. 십 사람들도 다윗을 밀고하였습니다. 마온 사람들도 다윗을 밀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현상금이 붙은 수배자였습니다.

 

시편 54편은 수배자 다윗의 시편입니다. 시편 54편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시편 54편의 제목에 보면, “십 사람이 사울에게 이르러 말하기를, 다윗이 우리가 있는 곳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던 때에라고 되어있습니다. 시편 54편에는 다윗의 믿음의 삼차원, 곧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한 믿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먼저 7절에 보면, “참으로 주께서는 모든 환난에서 나를 건지셨다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지금 환난 가운데 있습니다. 현상 수배범으로 쫓기고 있습니다. 사울 왕은 자신보다 강한 자이며, 자신을 죽이기로 작정한 사람입니다. 그는 모든 정보망을 충동원해서, 집요하게 추적하고 있었고, “나와 죽음 사이는 한 걸음뿐이라는 다윗의 고백처럼 (삼상 20:3), 언제 잡혀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골리앗을 물리치게 해 주신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였을 것입니다. 골리앗과 싸우러 나갈 때에는 자신의 양을 물어가는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신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였습니다 (삼상 17:37). 다윗의 믿음의 근거는 과거에 환난에서 건져 주신 하나님의 구원이었습니다. 우리 믿음의 근거도 십자가의 구속 사건입니다. 사망의 권세에서, 원수 마귀의 권세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우리는 믿는 것입니다.


둘째로 4절에 보면, “하나님은 나를 돕는 이시며, 주께서는 내 생명을 붙들어 주시는 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과거에 함께 하셨을 뿐만 아니라, 현재도 나를 도우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자에게는 보혜사 성령께서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는데, 보혜사의 뜻이 helper, counselor, comforter입니다. 십자가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도우십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답답한 일을 당할 때에, 상황과 자신 만을 보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잊을 때가 많습니다.

 

열왕기하 6장에 보면, 엘리사가 머물고 있던 도단 성을 아람 군대가 포위하였습니다. 엘리사의 사환은 겹겹이 에워 싼 군사와 말과 병거를 보고 기가 질렸습니다. “아아 내 주여 어찌하리이까?” (왕하 6:15). 그 때에 엘리사는 패배 의식에 사로잡힌 사환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6:17). 하나님이 사환의 영안을 열어 주었습니다. 사환이 보니, 하나님이 보내신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였습니다. 여러분도 눈에 보이는 상황 때문에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윗과 같이 지금도 도우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세번째로 5절에 보면, “주께서는 내 원수에게 악으로 갚으시리니, 주의 성실하심으로 그들을 멸하소서라고 미래를 의탁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다윗의 기도는 어떻게 응답되었습니까? “전령이 사울에게 와서 이르되, 급히 오소서. 블레셋 사람들이 땅을 침노하나이다. (삼상 23:27). 사울 왕은 다윗을 눈 앞에 보면서도,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눈에는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어 보일 때가 있습니다. 다윗의 눈에는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의 상상을 초원하는 방법으로 구원하셨습니다.

 

애굽 군대의 추격에 쫓겨 홍해 앞에 다다른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하였습니다. 패닉 상태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 14:13). 이스라엘 민족이 홍해를 건넌 기사는 출애굽기 14장에 나옵니다.

 

그런데 그 바로 앞의 13장 마지막 부분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이 친히 인도하셔서 도달한 곳이 홍해 바닷가였습니다. 그곳의 지형은 좌우에 높은 계곡이 있었습니다. 앞에는 건널 수 없는 바다였습니다. 막다른 골목에 처한 형국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이스라엘 백성을 그런 코너로 몰아넣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셔서, 애굽의 군대가 병거를 갖추고 이스라엘을 추격해 오도록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완전히 독 안에 든 쥐와 같았습니다. 그들이 볼 때에, 앞에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바다요, 좌우에는 도망갈 수 없는 계곡인데, 퇴로까지 차단을 당한 형편이 되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친히 인도하셔서 그처럼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아 넣으셨는가? 그 이유가 출애굽기 14 4절에 나옵니다: “내가 바로와 그 온 군대를 인하여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으로 나를 여호와인줄 알게 하리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함이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출애급기 1413절에서는 모세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먼저 모세는 백성들에게 “두려워 말라”고 말했습니다. Fear not. 두려워 말라는 말씀은 성경에 참 많이 나오는 말씀입니다. 리처드 범브랜드 목사님이 공산권 선교를 하다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투명한 상태에서 두려움이 엄습하여 왔습니다. 그러한 심정으로 성경을 읽으니까, 두려워 말라는 말씀만 눈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으면서 두려워 말라는 말씀이 나올 때마다 체크를 하였습니다. 성경을 다 읽으면서 세어보니까, 365번이었습니다. 그래서 무릎을 탁 치면서, 아 하나님은 일년 365일 날이면 날마다 나에게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시는구나, 하고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모세는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구원을 보라고 외쳤습니다. 가만히 서라는 것은 팔장 끼고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패닉이 되어 우왕좌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몸부림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을 때에는, 하나님이 하시는 구원을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십자가 상에서 이루신 구원이 무엇입니까? 인간의 힘으로는 하나님 보좌로 나아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주님께서 보좌로 나아가는 길을 막고 있었던 휘장을 찢으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힘으로는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홍해를 어찌할 수 없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이 새롭고 산 길을 내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그 하나님의 구원을 목도하라는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복음송 가사가 있습니다. God will make a way, when there seems to be no way. 인간의 눈에는 길이 전혀 안보이는 곳에 하나님은 길을 여신다는 것입니다. 앞 길이 꽉 막혀 있는 때에는 하나님이 친히 길 열어 주시는 역사를 체험하는 기회입니다. 내가 할 수 없을 때에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예레미야 애가 3 26절에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고 말씀했습니다. 앞 길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고 조용히 도우심을 바라야 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상황이라고 믿고,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여야 합니다. 시험당할 즈음에 능히 감당케 하시고 피할 길을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내 삶 속에서도 나타날 것을 끝까지 믿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사건은 성경에서 계속 반복되어 인용되는 중요한 구원의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앞이 보이지 않을 때마다, 과거에 하나님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홍해를 가르사 길을 열어주신 사건을 상기하였습니다.

 

우리도 어떠한 최악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명심하여야 합니다. 자녀들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 43:2).

 

앞 길이 보이지 않을 때마다,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을 버리심으로 하나님의 보좌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신 구속의 사건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자녀들에게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신다는 약속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영광을 얻으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구원의 역사를 보이시기 위하여, 그 자녀들에게 당신의 전능하심과 능력을 드러내시기 위하여, 내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도 허락하신다는 것을 꼭 기억하십시다. 어떠한 최악의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승리하시고, 하나님의 구원을 목도하시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