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브론에서 76개월 (삼하 2:1-11, 5:1-5)

 

사울 왕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죽었으므로, 다윗은 이제 당당히 자신의 왕권을 주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이 다윗을 왕으로 삼으신 것을 이미 다 알고 있었습니다. 사무엘하 317절로 18절에 보면, 사울 왕의 군사령관이었고 사울이 죽은 후에 북 이스라엘의 실권을 잡고 있었던 아브넬이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여러 번 다윗을 너희 임금으로 세우기를 구하였으니, 이제 그대로 하라. 여호와께서 이미 다윗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종 다윗의 손으로 내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블레셋 사람의 손과 모든 대적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리라 하셨음이니라.”

 

사무엘하 51절로 2절에도 보면,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있는 다윗에게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전에 사울이 우리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하신 분은 (다윗) 왕이시었고,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네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다윗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울 왕을 버리신 후에, 사무엘을 통하여 나를 왕으로 기름 부으셨다. 이제 사울 왕이 죽었으므로, 당연히 내가 왕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무엘하 21절에 보면, 다윗을 사울 왕이 죽은 후에 여호와께 물어 가로되, 내가 유다 한 성으로 올라가리이까?”’ 라고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지금까지 사울 왕을 피해서 블레셋 땅에서 피난살이를 하던 다윗은 더 이상 블레셋 땅에 머물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제 망명 생활을 마감하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 왕이 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는데, 다윗은 앞길을 하나님께 물었던 것입니다.

 

Arthur Pink 목사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참고 기다리면 잃는 것이 없지만, 서둘러서 우리 손으로 일을 처리하게 되면 항상 고통을 당하게 된다라고 했습니다. 오직 기도로 오천 명의 고아를 먹였다고 하는 죠지 물러 목사님은 결코 하나님보다 앞서지 말자. 결코 성령님보다 앞서지 말자. 결코 기도보다 앞서지 말자는 신조로 평생을 살았다고 합니다.

 

다윗은 기도로 하나님께 앞 길을 물었고,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서 헤브론으로 갔습니다. 그러자 유다 사람들이 와서, 거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 족속의 왕으로 삼았습니다 (삼하 2:4). 그처럼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의 왕이 된 시점으로부터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때가지의 기간이 칠 년 육 개월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기간은 다윗에게 기다림의 시간이었습니다. 그 칠 년 육 개월 동안 일어난 일들이 사무엘하 2장부터 4장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2장의 내용을 보면, 사울 왕이 죽은 후에, 사울의 군사령관 아브넬이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삼았습니다. 아브넬은 사울의 숙부 넬의 아들이었습니다 (삼상 14:50). 그러니까 사울의 사촌이고,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에게는 아저씨 뻘이 됩니다. 아브넬이 실권자이고, 이스보셋을 허수아비 왕으로 세운 것이었습니다.

 

반면에 다윗의 군사령관은 요압이었고, 요압의 두 동생인 아비새와 아사헬도 장수들이었습니다. 그 삼형제는 다윗의 누이의 스루야의 아들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요압은 다윗의 조카입니다. 사무엘하 212절 이하에 보면, 하루는 아브넬의 군대와 요압의 군대가 기브온 물가에서 만났습니다. 아브넬이 힘겨루기를 하자고 제의합니다. 곧 양편에서 대표 선수를 뽑아서 싸우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요압도 좋다고 해서, 양편에서 열 두 명씩 나와서 싸웠는데, 그 스물 네 명이 서로 찌르매 일제히 다 죽었습니다.

 

그래서 양편이 모두 나와서 싸움을 하게 되었는데, 아브넬의 군대가 다윗의 군장 요압의 군대 앞에서 패했습니다. 아브넬의 군대는 쫓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압의 두 동생 아비새와 아사헬 가운데, 아사헬은 늘노루처럼 잘 뛰었다고 했습니다 (삼하 2:18). 아사헬이 아브넬을 쫓기 시작했습니다. 아사헬이 아브넬 뒤를 바짝 추격하니까, 아브넬이 말합니다. 다른 사람을 쫓으라, 나를 계속 따라오면 내가 너를 죽일 수밖에 없다. 나는 너를 죽이기를 원치 않는다. 그러나 아사헬은 계속 아브넬을 쫓았고, 아브넬은 창 뒤 끝으로 아사헬의 배를 찌르니, 창이 등을 꿰뚫고 나가서 죽었습니다. 그처럼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갔다고 삼하 3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무엘하 3장으로 넘어오면, 아브넬과 이스보셋의 관계가 깨집니다. 곧 이스보셋이 자기 아버지 사울왕의 첩과 아브넬이 통간하였다고 문제를 삼자, 아브넬은 나를 개대가리로 여기느냐고 분개하였습니다 (8). 아비넬은 이스보셋이 배은망덕하다고 비난하면서, 나라를 다윗에게 돌리기로 작정합니다. 아브넬은 먼저 다윗에게 밀사를 보내서 탐색을 하고 (12), 온 이스라엘 장로들의 지지를 얻은 후에, 다윗을 직접 만나 언약을 맺었습니다 (21). 그러나 다윗의 군장 요압이 그 사실을 알고, 다윗의 허락 없이 아브넬의 배를 찔러서 죽였습니다 (27). 요압이 아브넬을 죽인 것에는 동생 아사헬의 원수를 갚는 면도 있었지만 (30), 장차 자신의 군권이 위협받는 것을 방지하는 면도 있었습니다.

 

다윗은 분개하여 요압의 집을 저주하였습니다 (29). 아브넬의 죽음을 애도하여 헤브론에 장사를 지내고 애가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저녁까지 음식도 먹지 않았습니다. 백성들도 다윗이 요압을 시켜서 아브넬을 죽인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요압을 제어하지 못함을 한탄하였습니다: “내가 기름 부음을 받아 왕이 되었으나, 오늘 약하여서 스루야의 아들인 이 사람들 (요압)을 제어하기가 너무 어려우니, 여호와는 악행한 자에게 그 악한대로 갚으실지로다.”

 

사무엘하 4장으로 넘어오면, 아브넬이 죽은 후에 이스보셋 왕의 군 지휘관 두 명이 이스보셋의 머리를 베어서 다윗에게 가지고 옵니다. 그들은 이미 대세가 다윗에게 기운 것을 알고, 이스보셋을 죽이고 다윗에게 상을 받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다윗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왕의 생명을 해하려 하던 원수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머리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오늘 우리 주 되신 왕의 원수를 사울과 그의 자손에게 갚으셨나이다” (8).

 

다윗은 그들을 처형하였습니다: “전에 사람 (아말렉 청년)이 내게 알리기를, 보라 사울이 죽었다 하며, 그가 좋은 소식을 전하는 줄로 생각하였어도 내가 그를 죽여서 갚았거늘, 하물며 악인이 의인을 그의 집 침상에서 죽인 것이겠느냐? 그런즉 내가 악인의 피 흘린 죄를 너희에게 갚아서 너희를 이 땅에서 없이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리고 이스보셋의 머리를 아브넬의 무덤에 매장하였습니다.

 

그러자 모든 이스라엘 지파가 헤브론에 있는 다윗에게 이르러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추대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세 번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첫번째는 사무엘에게 받은 것이고 (삼상 16:13), 두번째는 자신의 지파인 유다 사람들에게 받은 것입니다 (삼하 2:4). 그리고 세번째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장로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서 명실상부한 이스라엘의 왕을 삼았습니다 (삼하 5:3).

 

다윗은 사무엘에게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을 때에, 이미 하나님이 자신을 왕으로 삼으셨음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사울 왕을 신하로서 섬겼습니다. 사울 왕이 자신을 죽이려고 쫓아다닐 때에,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지만,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왕에게 손을 대는 것을 금하였습니다.

 

또한 사울 왕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전사한 후에, 다윗은 사울 왕의 아들 이스보셋을 힘으로 쳐서 물리치고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있었지만, 칠 년 반이나 헤브론에 머물렀습니다. 심지어 이스보셋을 죽이고 그의 머리를 들고 온 적장들을 오히려 처형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결국 온 이스라엘 지파가 자진해서 다윗에게 나아와 기름을 부어 왕으로 추대하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알았지만, 그 성취의 때를 하나님 손에 맡기었습니다. 자신이 빨리 왕이 되겠다고 성급하게 욕심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하박국 2 3절에 보면,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때는 인간이 보기에 너무 더디다고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끝까지 기다림으로 승리하였습니다.

 

다윗이 7년 반 동안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동안, 모든 일이 다 해결되었습니다. 요압에 버금가는 강력한 적장인 아브넬이 자기 발로 찾아와서 항복을 하고 요압의 손에 죽었습니다. 아브넬이 왕으로 세운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도 부하들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나와서 다윗을 왕으로 추대했습니다. 다윗은 죄를 짓지 않고 악을 행하지 않고, 동족의 피를 흘리지 않고, 아주 은혜스럽게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내가 나서면 낭패를 보지만, 하나님이 하시면 아무런 부작용 없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인내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기다리는 것을 좋아하십니까? 아마도 기다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다려야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신호등에서도 기다려야 하고, DMV 같은 곳에 가면, 번호표를 받아 들고 몇 시간씩 기다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합격 소식을 기다릴 때도 있습니다. 청년들은 결혼할 배우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립니다. 결혼한 다음에는 배우자가 좀 바뀌기를 평생 기다립니다. 아기를 기다리는 부부들도 있습니다. 혹은 몸 속에 보이는 덩어리가 암인지 아닌지 검사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릴 때도 있습니다.

 

기다리는 것이 왜 힘든 일입니까? 내가 콘트롤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과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또 어떨 때에는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조차 모를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기다리는 훈련을 시키십니다. 왜 하나님은 속히 빨리 이루어 주시지 않으시고 기다리게 하실까요?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인내를 배우게 하십니다. 인내를 통하여 온전하고 구비하여 부족함이 없게 하신다고 야고보서 1 4절은 말씀합니다. 또 아브라함의 경우를 보면, 기다림을 통하여 믿음을 시험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기다림을 통하여 준비를 시키십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신다고 약속하시고, 그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신 것은 성령을 받을 준비를 하는 시간을 주시기 위함이셨습니다.

 

구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날 때에, 구름 기둥이 성막에서 떠오르면 진행하였고,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동안에는 유진하였습니다. 구름이 움직이지 아니하면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하루 만에 구름이 떠오르는 경우에도 순종하여 길을 떠났습니다.

 

무엇을 보여줍니까? 하나님이 떠나라고 하면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다리라고 하면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출애굽한 1세대들이 여호수아와 갈렙만 빼고 모두 광야에 엎드려 죽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가라고 할 때에 못 가겠다고 하고, 하나님이 가지 말라고 할 때에 가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기다리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들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고 인간의 역할을 배제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초월적인 역사가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하여 인간이 할 수 있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기도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졌을 때에는, 감사와 찬송을 드리며,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하나님을 전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다리는 자에게 임하십니다. 신명기 4 29절은 만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그를 구하면 만나리라고 말씀하며, 예레미야 29 13절은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약속하십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는 자는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리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온전히 경험하는 유일한 길인 것입니다.

 

시편 62 1절에서 다윗은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기도하십니까? 잠잠히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기도하십니까? 우리의 기도에는 나의 뜻을 이루려는 성급함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마음이 부족합니다. 우리는 기도 가운데 나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입니다. 도우실 능력이 있으시고 도우실 뜻이 있으십니다. 우리는 그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인정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신앙의 위인들은 모두 기다리는 가운데,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였습니다.

 

시편 25 3절은 말씀합니다: “주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전심으로 기도하며 기다리던 제자들은 약속하신 성령님의 영광스러운 강림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기다리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셨다는 갈라디아서 4 4절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때가 이르면 지체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알지 못하고 듣지 못하였던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인내로 기다리는 가운데, 마침내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목도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