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궁과 성전 (삼하 5:6-12, 7:1-17)

 

다윗은 헤브론에서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즉위한 후에,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옵니다. 당시에 예루살렘은 여부스 족속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에, 예루살렘은 베냐민 지파에게 할당된 땅이었습니다 (18:28). 그러나 사사기 121절에 보면, “베냐민 자손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오늘까지 예루살렘에 거주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결국 예루살렘은 여부스 족속의 땅이 되어서, 여부스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19:10).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중심부에 위치에 위치해 있었고, 3면이 골짜기인 요새였습니다. 그리고 기혼 샘물이 있어서 유사시에는 수원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부스 족속은 다윗이 결코 예루살렘을 정복하지 못할 것으로 자신하면서, 다윗을 모독하였습니다: “네가 결코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너를 물리치리라” (삼하5:6).

 

그래서 다윗은 예루살렘을 정복하는 날에 이렇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물을 길러 올리는 갱도를 타고 올라가서 다윗이 미워하는 다리 저는 사람과 맹인을 치라.” 그리고 후에도 다윗의 왕궁에는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은 왕궁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속담까지 생기게 되었습니다 (삼하 5:8). 다윗이 실제로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을 미워한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극진히 돌보아 주었는데, 그는 다리는 저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어서 사무엘하 510절에 보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갔다고 하였습니다. 역대상 142절은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로 이스라엘 왕을 삼으신 것을 깨달았으니, 이는 그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나라를 진흥하게 하셨음이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과 함께 하시는 징표를 주셨습니다. 곧 다윗이 점점 강성해졌고, 나라가 진흥하게 하산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또 한가지 징표는 두로 왕 히람이 다윗에게 사절들과 백향목과 목수와 석수를 보내서, 다윗의 왕궁을 짓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삼하 5:11). 그래서 다윗 자신이 이 모든 징표들을 보고,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신 것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알았다고 사무엘하 512절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징표를 보여주셨을 때에, 두로 왕 히람이 와서 다윗의 왕궁을 지어주었다는 말씀을 보고, 저는 이삭이 생각났습니다.

 

창세기 26장에 보면, 이삭의 유명한 우물파기가 나옵니다. 이삭의 삶은 평안치 않았습니다. 우물 쟁탈전이 계속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삭이 자기가 판 우물에 붙인 이름들이 그것을 증거합니다. 에섹이라는 우물 이름은 다툼을 뜻하였습니다. 싯나라는 우물은 대적함이라는 의미였습니다. 우물은 생명수의 근원이었기 때문에, 빼앗길 위험이 있을 때에는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다툼이 일어날 때마다 우물을 포기하고 떠납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이삭이 새로 파는 우물마다 물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중요한 징표였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복을 주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되는 증거였습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면, 아무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따라다니면서 막아도, 하나님이 또 주십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셨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복 주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사람은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불이익을 더 큰 축복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신명기 28장에 보면, 아무도 막을 수 없는 넘치는 하나님의 축복이 나옵니다.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28:3-6).

 

하나님이 이삭과 함께 하시고 복을 주신 실제적인 증표가 또 한가지 나옵니다. 자기를 시기하고 따라다니면서 괴롭히던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자기 발로 찾아와서 화친을 청한 것입니다. 이삭은 피해서 도망 다니기만 했는데, 못살게 굴던 사람이 먼저 찾아와서 항복을 하였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신명기 28장의 축복 목록을 보면, “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너를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세계 만민이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고 하였습니다 (28:9-10).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이삭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복 주시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삭을 찾아와서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또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고 말합니다 

 

그처럼 다윗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징표를 보여주시니까, 두로왕 히람이 자진해서 백향목과 일류 목수들을 데리고 와서, 다윗의 왕궁을 멋지게 지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무엘하 7 2절에 보면, 다윗이 나단 선지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 다윗은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나는 이렇게 좋은 집에 사는데, 하나님을 천막에 모시고 있다니, 이래서 되겠는가, 하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집보다도 자기 집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학개 선지자는 자기 집만 열심히 짓고 가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학개서 1 4절에서 “하나님의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고 질책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어떠하였습니까?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 이래서 되겠는가, 라는 죄송스러운 마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그 마음을 보시고 크게 축복하셨습니다. 사무엘하 711절에 보면,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겠다”고 하셨습니다. 다윗은 이미 백향목 궁궐에 살고 있었으므로, 하나님이 다윗에게 궁궐을 지어 주시겠다는 말씀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다윗의 후손을 통하여 왕조를 세우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러나 16절에 보면, 다윗에게 주신 축복은 다윗 왕조를 뛰어넘는 영원한 축복이었습니다: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존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다윗 왕조는 결코 영원하지 못하였습니다.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는 메시야의 왕국이 영원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성경에서 대표적인 메시야 예언의 하나로 꼽힙니다. 다윗에게 주신 축복은 솔로몬과 다윗 왕조를 통하여 역사적으로 성취되었지만, 그리스도의 왕국을 통하여 종말적으로 성취되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집을 짓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을 때에, 하나님은 그 마음을 기뻐하시고 “내가 너의 집을 세워주겠다”고 축복하신 것입니다. “네가 나를 위하여 집을 짓겠느냐? 내가 너의 집을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고 축복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하게 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6:33).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이런 것들을 구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왕조를 견고하게 세워달라고 기도하기 전에, 모든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하게 해달라고 구하기 전에,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구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다윗이 생각하지도 못했던 영원한 복을 주셨던 것입니다.

 

Matthew Henry는 사무엘하 7 2절을 주석하면서, 이 말씀을 교회 생활에 적용합니다. 곧 참된 신자는 교회가 힘들어 할 때에, 자기 집에서 편안하게 즐기면서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They cannot enjoy their own accommodations while they see the church of God in distress and under a cloud. David can take little pleasure in a house of cedar for himself, unless the ark have one.)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1 28절에서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것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도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는 참된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도행전 13 22절에 보면, 다윗은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다른 성경들은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참 예쁜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 다윗에게는 이 갸륵한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자식이 귀한 자식입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이것 주세요, 저것 주세요, 자기 갖고 싶은 것을 달라고 날마다 조르는 철없는 자식입니까, 아니면 어떻게 하면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부모님께 좋은 것으로 드릴 수 있을까, 생각하는 자식입니까? 여러분은 부디 철없는 자녀들이 아니라, 성숙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윗은 성전 건축의 마음만 품었던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성전 건축의 재료를 준비하였습니다. 역대상 22 14절에 보면,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의 전을 위하여 금 십만 달란트와 은 일백만 달란트와 놋과 철을 그 중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예비하였고, 또 재목과 돌을 예비하였으나, 너는 더할 것이며” 라고 솔로몬에게 명합니다. 환난 중에, 전쟁 중에, 힘든 중에도 다윗은 성전 건축을 준비하였습니다. 또 역대상 29 2절에서 다윗은 “내가 이미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힘을 다하여 예비”하였다고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다윗은 마음만 품은 것이 아니라, 평생 동안 힘을 다하여 준비하였던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가 평생 준비한 모든 것을 봉헌하면서 봉헌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 기도문에 보면, “즐거이” (willingly) 드린다는 구절이 여러 번 나옵니다: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대상 29:14),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며,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즐거이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 (대상 29:17).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많고 적음을 떠나서 자원하는 마음을 기뻐하십니다. 고린도후서 9 7절에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하였고, 베드로전서 5 2절은 “부득이 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쫓아 자원함으로 하라”고 말씀합니다. 억지로 하지 말라, 부득이 함으로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지은 성막도 마찬 가지였습니다. 출애굽기 35 21절에 보면, “무릇 마음이 감동된 자와 무릇 자원하는 자가 와서 성막을 짓기 위하여… 여호와께 드렸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가? 36 5절에 보니까, 백성들이 너무 많이 가지고 와서 성막을 짓는 재료가 넘쳐났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이제 그만 가지고 오라고 명합니다. 얼마나 은혜스럽습니까? 억지로 드리는 것이 아니고, 기쁨으로 드리는 것으로 인하여 차고 넘쳤던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이 충만하였던 초대 교회도 그러하였습니다. 사도행전 4 32절 이하에 보면, 교인들이 자기 소유를 팔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밭과 집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바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성령이 충만히 임하시면, 자기의 재물이 더 이상 자기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보입니다.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어떻게 바칠 것인가, 그런 관점으로 바뀌게 됩니다. 소유가 아니라 청지기의 마음으로 물질을 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의 대표적인 특징이 돈을 사랑하는 탐심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께 바쳐진 것은 하늘 나라 성소에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영원히 보전됩니다. 다윗과 같이, 천국의 성소를 소망하며 힘을 다하여 준비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윗과 같이, 하나님께 즐거이 바침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