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말씀을 전파하라 딤후 4:2

 

말씀을 아는 것에 그치지 말고 그 말씀을 살아냅시다.”라는 표현을 많이 듣는다. 그런데 말씀대로 산다는 것을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크리스챤들이 말없이 묵묵히 세상으로부터 칭찬만을 받아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말이다. 과연 그것이 성경의 핵심사상일까? 그것은 크리스챤의 일부의 모습이지 핵심은 아니다. 왜냐하면 정직, 구제, 관용, 용서, 긍휼, 오래참음, 자기비움 등 모든 선한 삶의 모습은 예수님과 상관없이도 세상이 다 흉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남을 위해 죽는 삶을 강조하는 것까지도 다른 종교와 철학에 얼마든지 다 있다.

세상과 완전히 구별되는 차원에서 말씀대로 사는 삶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선포하는삶이다. 다른 외형적인 행동으로는 그리스도인의 구별됨을 나타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구주 하나님으로 모셔들이지 않은 자는 결코 흉내낼 수 없는 내용을 선포해 보자.

“2천 년 전 인류역사 이래 최고의 저주의 자리, 십자가에서 죽은 한 사람! 그 이름 예수! 그가 우리의 유일한 창조주 하나님, 구원자이십니다. 그것을 증명한 것이 부활입니다. 예수님 앞에 회개하고 주인으로 모셔들이십시오. 그래야 영생을 얻습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셔들이지 않으면 영원한 심판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심판주로 다시오실 때가 가까이 다가와 있습니다.”

2 십자가의 처형은 로마법 차원과 종교법 차원에서 동시에 최고의 저주의 자리였다. “그 저주의 십자가에서 죽은 한 사람, 예수가 창조주 하나님이시요 구주시다!”라고 선포하는 모습만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결코 흉내낼 없는 모습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세상이 가장 이해할 없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우리에게 말한다. 2 저주의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한 사람 예수가 어찌 유일한 창조주 하나님이며 주인이 있는가? 당신들은 단단히 미쳤군!”이라고 하며 우리를 바보 취급을 한다. 그런데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바보 취급을 받는 것에 굴복하지 않고 유일한 복음을 항상 전하게 마련이다. 오늘 옆을 스쳐 지나가는 영혼이 예수님의 생명을 소유하지 못한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면 영원한 심판으로 직행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것이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이다. 이것에 동의할 수 있는 사람은 교묘한 인본주의적인 사상들이 교회 안에 침투하는 것을 정확히 구분해 있다.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그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말로 표현해야 한다. 그게 전도의 본질이다. 전도의 본질은 입술의 선포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1 38절에서 당신이 전도하러 오신 분이라고 하셨고 그 때 사용하신 전도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케륏쏘 이며 영어로는 proclaim 이다. ,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러 오셨고, 진리 그 자체시다.

예수님의 설교의 반 이상이 영생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내용이라는 것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교회를 핍박했다가 예수님을 구주로 만난 바울이, 그들의 편지 신약의 서신서들 에서 예수님께서 심판주로 오시면,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사라질 것이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올 것을 말하고 있다.

그 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또 그 때에 그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13:24~37)”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 3:8~13)”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1:1)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살전 4:14~18)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3:20,21)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 전파하라에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의 헬라어는 유카이로스 and 아카이로스 로서 영어로는  in season and out of season , 적절한 때든지 적절치 못할 때든지 라는 뜻이다. 접속사가 or 아니라 and 라는 것에 주의하자.  And 하나만 해당되는 의미가 아니라 해당된다는 의미다. 적절한 때와 적절치 않을 의미한다면 결국 항상 말씀을 전파하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히브리서 9 27절을 통하여 사람이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요 죽음 뒤에 심판이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고, 오늘 옆을 스쳐 지나갈 사람이 예수님의 부활 생명을 소유하지 못하지 못한 죽는다면 그는 영원한 심판에 처해질 밖에 없기 때문이다.

911테러 사건을 보라. 사람은 1 뒤의 일을 없다.

당신이 영원한 심판에서 건짐 받은 확신이 있다면 그것은 아버지의 마음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의 마음은 지금 영원한 심판을 향하여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자들도 향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라면 구원받은 자녀라면 항상 말씀을 전파하게 되어져 있다. 구원의 확신은 있는데 전도의 마음은 없는 자가 있는가? 그렇다면 구원을 다시 점검해 보아야 한다.

 

어떤 이들은 거리전도와 외침전도 같은 모습을 전근대적인 미련한 전도의 방법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인본주의 사상이다. 우리는 세상을 향하여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인생의 가장 큰 위험의 때 즉 심판의 때가 다가옴을 알려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자녀들을 통하여 세상에게 경고하시기 원하신다. 전도는 바로 하나님의 경고하심을 알리는 일이다. 세상 사람들은, ‘인류의 역사상 가장 저주스러운 자리에 죽은 사람이 어찌 모든 인류, 모든 각각의 사람들의 유일한 창조주요 주인이란 말인가?’ 라며 합리적 이성을 들이댄다. 그래서 교회의 탈을 자들이 전하는 인본주의적 가짜 복음 속에는 유일한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전도그다지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성경은 미련한 전도의 방법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도 자체가 세상사람들이 보기에는 미련한 것이라고 했다. 바울의 목소리를 들어보라.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 1:18, 21~24)

예수님께서 죽으신 이유가 무엇인가? 예수님의 제자들 초대교회 성도들을 비롯하여 교회사 속에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를 당한 이유가 무엇일까? 윤리적인 측면에서 세상에게 칭찬받을만한 모습으로만 살았다면 순교당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순교를 당한 이유는 오직 하나다. 때를 얻든지 얻든지 바로 위에서 말한 유일한 복음을 선포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교훈들의 핵심이 바로 순교적 삶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5:3)”

심령이 가난한 자원어의 의미를 최대한 살려서 다시 표현한다면하나님 앞에서 떠는자(terrify) ~ ”로서, 이 표현 속에는 모든 인류를 향한 공의의 심판이 이루어진 십자가 앞에서 진정한 회개가 시작된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게 된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그러한 자가 자신의 죄로 인하여 애통하는 회개로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게 되어 하나님의 위로를 받게 된다( 5:3,4).

결국에 그 유일한 구원의 축복을 받은 자는 핍박을 받는 삶을 살게 된다고 예수님께서 강조하셨다. 이것이 산상수훈의 핵심이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5:10-12)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의 모습에 대해 산상수훈이 결론인 것처럼 말하는데, 그렇게 말할 , 조심해야 한다. 의를 위하여 핍박받고 예수님의 이름을 인하여 욕을 먹는 삶 핵심으로 강조하지 않는 산상수훈의 강조는, 가장 중요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을 누락시킨이다. 그 핵심을 빼놓고 아무리 성경을 인용한다해도, 성경의 인물들을 예로 들어도 다른 인본주의 종교 철학 사상에서도 얼마든지 흉내낼 있는 차원의 강조와 다를 바가 없다.

참된 초대교회의 제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은 산상수훈 속의 다른 윤리적 삶들을 부단히 살아내면서도, 성경에서 말하는 창조주 하나님만을 두려워하고 떨며, 때를 얻든지 얻든지 유일한 복음을 외치는 전도삶을 살았다. 그리고 성령을 좇아서 성경에서 말하는 죄를 죄라고 담대히 말하고 의와 심판을 전하며 세상을 책망했기 때문에 순교를 당했다( 16:7,8).

마가복음 13, 종말에 대한 장(chapter)에서도 예수님께서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3:)고 하신 말씀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전도의 현장에서 거의 모든, 다른 세계관들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서 유일한 복음을 더욱 확인할 수 있었다. “저주의 십자가에서 죽었고 부활한 사람 예수만이 유일하신 창조주시며 구원자시며 인생의 주인이시다 표현은 어느 종교 철학 윤리 도덕에서도 찾아볼 없었다. 유대교도 십자가상의 나사렛 예수가 창조주 하나님이 아니라는 사상이며, 이슬람, 여호와의 증인, 몰몬, 통일교도 그렇게 말하며 힌두교와 불교는 예수만이 하나님일 수가 없다는 범신론 사상이다.

특히 전도의 현장에서 여호와의 증인과 같은 이단 사이비들을 만났을 때 그들에게 어떻게 해서 그곳에 가게 되었는지 물었을 때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정통교회에 다녔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며 실망하고 교회를 다니지 않다가, 이웃 사람이 말없이 생명까지 내어 정도의 사랑을 베푸는 모습에 큰 감동을 느끼고 반해서 따라가게 되어 여호와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선한 행동이 유일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절대로 아니라는 증거 중 하나다. 다른 모든 종교 철학 윤리 도덕 신념도 얼마든지 선한 모습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단 사이비들은 선한행동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선한 행동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강조하시는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의로운 삶의 모습의 핵심인, 유일한 복음을 증거하는 삶의 모습을 나타내야 한다. 그로 인하여 세상으로부터 미련하다는 욕을 먹고 핍박을 받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우리 육체에 채워야 한다( 1:24).

요즈음 시대도 초대교회 시대와 마찬가지로 말씀대로 사는 크리스챤들이 칭찬보다는 핍박을 받을 밖에 없는 차원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반면에 미혹의 영도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역사하고 있는 듯하다. 그 현상들을 통하여 우리는 주님의 재림의 때가 성큼 다가오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산상수훈을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향하여 걸어가고 계셨던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진리이신 그 분이 유일한 진리를 외쳤고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아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제자들도 그 길을 따라갔다. 십자가에 죽으러 오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명령하신 것이 바로 그 이유다.

마귀의 전략은 굉장히 교묘하다. 진정한 회개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거듭나지 않아서 주와 연합되지 않고, 여전히 자기 생각대로 살아가는 종교적인 교인들이 교회에 많다. 마귀는 그들을 성도, 교회, 기독교라는 이름의 탈을 쓰게 하여 교회를 욕먹이고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전략을 쓴다. 상식차원의 비윤리적인 모습으로 인해 욕을 먹는 모습은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께서 세우신 성도의 모습이 아니다. 진짜 성도는 그렇게 살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성도들이 모인 교회는 거룩한 영이 생명으로 강력히 임재하시는 유기체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연합된 생명의 유기체로서의 성도와 교회는 거룩의 열매를 나타내게 마련이다.

참된 성도요 제자들은 윤리적인 면에서는 세상이 업신여기지 못할 정도로 거룩의 열매를 맺으면서도, 유일한 진리의 선포 측면에서는 담대히 세상을 향하여 외쳐서 미움을 받는 존재들이다. 진정한 성도요 제자요 교회라면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고, 모든 인본주의적인 가치관에 의해 세워지는 법, 사회규범, 경제원리, 문화 예술사상, 종교, 철학, 윤리, 과학에 대하여 진리를 담대히 외친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승천하신 후에 인류의 역사 속에서 지금까지 자신이 자칭 그리스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났다. 자칭 그리스도라 하는 자들은 크게 두 부류다. 미치광이든지 사기꾼이다.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면서도 진짜 그리스도라고 착각하는 미친 사람인 경우와,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님을 잘 알면서도 그리스도 행세를 하는 사기꾼이다. 이 두 부류는 분별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세번째 사람들이 더 무서운 부류다. 왜냐하면 좀처럼 분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사상입니다라고 하며 성경의 이야기를 전개하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차원과 다르게 결론을 짓는 자들이다. 그런 부류들 중 하나가 크리스챤들이 세상으로부터 칭찬만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가르치는 자들이다. 예수님께서 로마 핍박의 시대에 제자들에게 이러한 자들을 경계하라고 첫번째로 말씀하신 것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초대교회시대에 로마는 태양숭배사상과 혼합시키는 차원에서 기독교를 공인하고 국교화 하면서 크리스챤들에게 좋은 제안을 했다. “핍박받으며 죽어가지 말고 국가가 원하는 몇가지 부분 진리를 살짝만 부인해도 되는 제안들 만 이행하면 편하고 칭찬받는 크리스챤들로 살아갈 수 있다라고 타협안을 내놓았다. 그 유혹에 넘어간 사람들이 많았지만, 끝까지 진리를 수호하던 초대교회 크리스챤들은 콜로세움 경기장의 짐승의 밥으로 순교의 길을 택했다.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2:8~11)

서머나 교회는 핍박받는 길을 선택했던 교회 중 대표적인 교회다. 예수님께서 유일한 진리를 외치시고 결국 핍박과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신 것처럼, 서머나 교회도 예수님을 따라 유일한 복음을 선포하며 진리대로 살았기 때문에 핍박을 받았다. 진리를 사수한 서머나교회의 성도들은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종교인들로부터 출교를 당하고 세상 권력인 로마로부터 핍박을 받고 죽임을 당했다. 예수님께서 사도요한에게 나타나셔서 서머나 교회가 환란과 핍박을 받는 모습에 대해 묘사하신 말씀은, 요한복음 16장에서 핍박받을 미래를 대비하라고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과 깊이 일맥상통한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라”( 16:1~4)

이 말씀대로 제자들도 핍박받고 순교했고, 반면에 종교인들은 예수님을 그렇게 죽였던 것처럼, 예수님의 제자들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을 더 잘 섬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참된 제자들이 종교인들로부터 출교를 당하고 세상 권력에 의해 핍박받고 순교당한 이유는 오직 하나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만을 창조주 구주 하나님으로 선포했기 때문이었다.

당신은 진정한 크리스챤인가? 그렇다면 언제든지 어디에서든지 누구에게든지 모든 상황 속에서 어떠한 불이익을 당하고 어떠한 핍박이 다가온다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입술로 선포할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크리스챤이라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다음과 같이 외치자!

2천 년 전 인류역사 이래 최고의 저주의 자리, 십자가에서 죽은 한 사람! 그 이름 예수! 그가 우리의 유일한 창조주 하나님, 구원자이십니다. 그것을 증명한 것이 부활입니다. 예수님 앞에 회개하고 주인으로 모셔들이십시오. 그래야 영생을 얻습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셔들이지 않으면 영원한 심판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심판주로 다시오실 때가 가까이 다가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