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살롬의 반역 (삼하 15)

        지난 번에 살핀 사무엘하 14장에서는 다윗이 암살롬과 입을 맞추며 화해하는 장면으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탕자와 달랐습니다. 압살롬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고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5장에 보면, 압살롬은 자신을 용서하고 받아준 아버지 다윗에 대하여 계획적으로 반란을 일으킵니다.   

        1절로 6절은 압살롬에 어떻게 계획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훔쳤는지를 보여줍니다. 먼저 압살롬은 스스로를 위대 (great)하게 보이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는 병거 (chariot)와 말들을 준비시키고, 자신이 행차할 때에는 호위병 50명이 그 앞을 달리게 하였습니다. 아마도 압살롬은 병거에 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처럼 멋진 장관을 연출하면서, 왕의 위엄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폼을 잡았습니다.

        또한 압살롬은 자상한 척했습니다. 2절에 보면, 그는 부지런하게도 아침 일찍부터 성문 길 곁에 서서 사람들을 기다렸습니다. 누구든지 다윗 왕에게 재판을 받으러 오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불러서 어느 성읍 사람이냐고 관심을 나타냈습니다. Colin Smith 목사님은 압살롬의 말을 현대어로 이렇게 바꾸었습니다. Hey, welcome to Jerusalem. My name is Absalom. Nice to meet you. Where are you from? You must have had a long journey. Now what is the issue that has brought you here?

        이어서 압살롬은 무조건 그 사람의 말이 맞다고 역성을 들어주었습니다. Look, your claims are good and right. 무조건 네가 옳다고 해주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다윗에게 재판을 받으러 온 사람의 환심을 샀습니다. 그리고 압살롬은 응근슬쩍 이런 말을 합니다: “그런데 네 송사를 들을 사람을 왕께서 세우지 않으셨도다.” 어떤 주석에 보면, 다윗이 말년에 병이 들어서 왕의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못 했다고 봅니다.

압살롬은 그처럼 아버지 다윗이 일을 제대로 안 한다고 응근히 불만을 부추킨 후에,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이 땅에 재판관이 되고, 누구든지 송사나 재판할 일이 있어 내게로 오는 자에게 내가 정의 베풀기를 원하노라” (4). 백성을 제대로 보살피지 않는 다윗만 없다면, 내가 너의 문제를 잘 해결해 주었을 텐데, 라는 뜻입니다.

압살롬은 온 나라에서 가장 잘 생긴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삼하 14:25). 그는 병거와 말과 호위병으로 왕의 위엄을 보였습니다. 그는 재판을 받으러 오는 사람에게 자상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는 네 말이 옳다고 역성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런데 네 문제를 해결해 줄 사람이 없다면서, 응근히 불만을 부추켰습니다. 내가 왕이라면, 내가 재판관이 되면, 네 문제를 잘 해결해 주겠다고, 말하자면 공약을 내세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압살롬은 겸손한 척했습니다. 5절에 보면, 사람이 가까이 와서 그에게 절하려 하면, 압살롬이 손을 펴서 그 사람을 붙들고 그에게 입을 맞추었습니다. 사람들이 압살롬에게 와서 절을 하려고 하면, 압살롬은 자기에게 절하지 말라고 만류하면서, 그 사람을 붙들어 세우고 친구처럼 끌어안았습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겸손한 모습입니까?

메튜 헨리는 이렇게 주석하였습니다. 지금 그의 마음은 루시퍼만큼이나 교만해 있지만, 그의 행동은 어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을 만큼 겸손했다. 음모를 꾸미고 있는 자들은 자신들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 종종 이와 같은 겸손의 모양을 취하곤 한다 (2:23). 압살롬은 그것이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만일 그것이 진실된 것이라면, 그것은 그의 장점이며 그의 진정한 칭찬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된 것이었으며, 가증한 위선이었다. 그는 웅크려 스스로를 겸비케 했는데, 그것은 사람들을 그물 속으로 끌어들이려 함이었다 (10:9-10).

Collin Smith 목사님은 현대어로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Hug and kisses for everyone from Absalom… This was an all-out charm offensive to win the hearts and minds of God’s people. This carried on for a period of 4 years (2 Samuel 15:7). Over time, people who came to Jerusalem from across the country would go back home and talk to their friends. And their friends would inevitably ask: “How are things in Jerusalem?”

“Things are in bad shape in the capital. The king seems to be at death’s door, and the whole system of justice seems to have broken down. But we did meet the king’s son, Absalom. What a good man he is – so understanding and supportive! He was the first one to greet us at the city gate. We’d better off if he was king!” How easily even God’s people are taken in!

압살롬은 그처럼 백성들의 마음을 훔치는 작업을 4년간 한 후에, 아버지 다윗을 거짓말로 속이고 예루살렘을 떠나서, 헤브론에 반란의 거점을 마련합니다. 곧 자신이 형 암논을 죽이고 그술에 도망가 있을 때에, 만약 하나님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해주시면, (헤브론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겠다고 서원했었는데, 이제 헤브론으로 가서 그 서원을 이행하게 해달라고 거짓 구실을 댄 것입니다. 다윗은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특별히 압살롬은 다윗의 모사 아히도벨을 포섭하였습니다. 사무엘하 1623절에 보면, “그 때에 아히도벨이 베푸는 계략은 사람이 하나님께 물어서 받은 말씀과 같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삼국지에서 유비를 도왔던 제갈량과 같은 당대 최고의 counselor였습니다. 압살롬이 아히도벨을 얻었다는 것은 다윗에게 치명적인 배신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3 18절에서 시편 41 9절을 인용하셨습니다: “나의 신뢰하는 바, 내 떡을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그 시편에서 다윗이 말하는 배신자는 아히도벨이었습니다. 아히도벨은 다윗의 충복이었으나,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반역하였을 때에, 압살롬의 반역에 가담했던 것입니다.

아히도벨은 다윗의 상에서 함께 떡을 먹던 자였습니다. 아히도벨이 다윗의 상에서 먹었다는 것은 다윗이 아끼는 각별한 신하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한 아히도벨이 배신을 하였지만, 후에 아히도벨은 압살롬의 반역을 돕다가 자신의 작전이 채택되지 않자 집으로 돌아가 자결하였습니다. 가룟 유다도 주님의 상에서 먹던 자였습니다. 유다도 양심의 가책으로 자살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의 모습에서 아히도벨의 모습을 보았던 것입니다.

왜 아히도벨은 다윗을 반역하였을까? 사무엘하 2334절에 보면, 아히도벨의 아들의 이름이 엘리암입니다. 그런데 사무엘하 113절에 보면, 엘리암은 밧세바의 아버지입니다. 그러니까 아히도벨은 밧세바의 할아버지입니다. 다윗이 충신 우리아를 계획적으로 죽이고 취한 밧세바가 아히도벨의 손녀인 것입니다.

아마도 아히도벨은 마음 속 깊이 다윗을 불신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키며 도와달라고 하였을 때에 응하였던 것 같습니다. 12절에 보면,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가면서, 반역하는 일이 커가매, 압살롬에게로 돌아오는 백성이 많아졌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3절에 보면, 급기야 전령이 와서 다윗왕에게 보고합니다: “이스라엘의 인심이 다 압살롬에게 돌아 갔나이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칼날을 피하여 급히 도망을 가게 되었습니다. 당시 다윗의 심경이 얼마나 참담하고, 다윗의 모습이 얼마나 처량하였는지, 30절에 보면, “다윗이 감람 산 길로 올라갈 때에, 그의 머리를 그가 가리고 맨발로 울며 가고, 그와 함께 가는 모든 백성들도 각각 자기의 머리를 가리고 울며 올라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 참담한 상황 속에서 다윗은 압살롬과 함께 모반한 자들 가운데 아히도벨이 있다는 보고를 받습니다. 다윗은 이제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원하옵건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31). 다윗은 길게 기도할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아히도벨이 아무리 지혜로운 자라고 하더라도, 원하옵건대 그의 counsel이 어리석은 모략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은 즉시로 기도의 응답을 주셨습니다. 다윗 앞에 후새라는 사람이 옷을 찢고 흙을 머리에 덮어쓰고 나타난 것입니다. 그처럼 애통하며 다윗을 맞은 후새도 모사였습니다. 다윗은 그에게 부탁합니다. 네가 나를 배신한 척하고 압살롬의 종으로 들어가면, 네가 나를 위하여 아히도벨의 모략을 패하게 하리라. 후에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advice를 채택하지 않고, 후새의 advice를 채택하게 됩니다.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해달라는 다윗의 기도는 아히도벨의 지혜로운 모략이 채택되지 못하게 하심으로 응답되었습니다.

다윗이 지은 시편들은 대부분 고난 중에 지은 것들입니다. 시편 3편에도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 지은 시라고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1절로 3절을 읽겠습니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나를 일어나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압살롬의 반역은 다윗의 생애에서 가장 큰 위기였습니다. 설마 자기 아들이 자기를 죽이겠다고 쳐들어올 줄 알았겠습니까? 설마 자기 아들이 그렇게 계획적으로 백성들의 민심을 바꾸어 놓을 줄 알았겠습니까? 얼마나 급했으면 맨발로 도망을 갔겠습니까? 얼마나 챙피하면, 머리를 가리고 울면서 산 길을 올라갔겠습니까? 그처럼 이스라엘 백성의 민심이 모두 압살롬에게 돌아가고, 자기를 대적하여 치는 자의 수효가 엄청나게 많으며,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 구원을 못 받는다고 조롱하는 가운데, 다윗은 여호와” (Lord)를 부르며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소년이 강가에서 놀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 자리에는 건장한 장년이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허우적거리는 소년을 바라만 볼 뿐 건지러 들지 않았습니다. 허우적거리던 소년의 힘이 다 빠져 허우적거리지도 못해 수면위로 떠오르자 잽싸게 뛰어들더니 건져 냈습니다. 그 이유를 묻자 "아이가 발버둥치는 동안에는 구해낼 수가 없습니다. 구하러 들어간 사람을 죽기까지 붙잡고 늘어지기 때문에 두 사람 다 죽게 됩니다. 그렇지만 지쳐서 힘이 빠진 후에는 쉽게 구해 낼 수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 가지입니다. 나에게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한, 나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게 됩니다. 즉 하나님의 구원을 의지하거나 바라지 않게 됩니다. 돈을 의지하기도 하고 권력을 의지하기도 하고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에게서 힘이 빠지면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너무나 수치스러워서 머리를 가리고 도망가는 처지가 되었을 때에, 나의 머리는 드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합니다. 여러분의 일생에서 가장 수치스러웠던 일은 무엇입니까? 어제 시니어 목장에서 나눔 시간에, 나의 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일과 가장 슬펐던 일을 나누었습니다. 여러분의 일생에서 가장 수치스러웠던 일은 무엇입니까? 무슨 시험에 떨어지고 사업이 망하고 하는 것보다 더 수치스러운 일은 도덕적인 실패일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이나 죄를 부인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입니다. 감히 하늘을 처다 볼 수도 없는 죄인입니다. 혹은 이 세상에서 얼굴을 들 수 없는 실패를 경험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처지를 당했던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의 머리를 드시는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도 주님이 십자가 상에서 내가 받을 모든 수치를 대신 당하셨기 때문에, 당당하게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있습니다. 내 힘으로는 마귀의 궤계를 이길 수 없지만, 우리가 하나님은 나의 방패라고 고백할 때에, 하나님께서 마귀의 거짓과 술수를 어리석게 만드시고, 사탄의 머리를 짓밟는 승리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은 나의 영광이라고 고백할 때에,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3:21).

다윗은 시편 276절에서도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삼상 2:7).

다윗은 비천한 처지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고백하였습니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3:4). 비록 말할 수 없는 환난을 당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신 다면,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윗은 고백합니다 (3:6).

구원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3:8). 하나님은 아히도벨 같이 천하에 당할 자가 없는 지혜로운 자의 모략도 어리석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수치를 씻으시고 머리를 들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내가 믿고 있는 모든 우상을 내어 버리고, 구원의 하나님께 부르짖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