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빌립보서 1:22-26


빌립보서 1장 23절로 24절 말씀은 사도 바울의 생사관을 잘 보여 줍니다: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바울은 육신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될 날을 고대하였습니다. 바울은 죽음을 마라톤 선수가 결승점을 통과하는 순간으로 보았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딤후 4:7-8). 바울은 죽어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바울은 죽음을 "떠나서" 라는 단어로 표현하는데, 그 단어는 헬라어로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천막을 걷는다는 의미입니다. 죽음이란 잠시 살던 텐트를 걷고 캠프장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린도후서 5장 1절로 2절은 이 땅에서 입고 있는 육신을 장막에 비유하였습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둘째로, 떠난다는 단어는 닻을 올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항구에 정박하여 있는 동안에는 닻을 내리고 있지만, 새로운 소원의 항구를 향하여 떠날 때에는 닻을 올리게 됩니다. 하늘 나라로 항해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내리고 있었던 닻을 거두는 것이 곧 죽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희망찬 출발인 것입니다. 


결국 바울의 말은 이런 것입니다. 나 자신만 생각하면 죽는 것이 더 좋지만, 너희를 생각하면 사는 것이 더 유익하다. 유익하다는 단어는 헬라어로 필요하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바울이 사는 이유는 빌립보 교인들을 비롯하여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꼭 필요한 존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곧 그들의 믿음의 진보를 위하여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교회에 유익한 사람, 교인들에게 필요한 사람, 세상에 사명을 갖고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