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령한 것에 대하여 (고전 12:1-3)

        바울은 12 1절부터 새로운 주제를 다루면서, 영어로 Now concerning 이라는 구절로 시작합니다. 헬라어로는 peri de 인데, 고린도전서에서 주제를 바꿀 때에 여러 번 사용되었습니다. 7 1절에서는, ‘너희가 쓴 말에 대해서는이라는 구절로 독신과 결혼의 주제를 시작합니다. 8 1절에서는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이라는 구절로 새로운 주제를 다룹니다. 16 1절에도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이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바울은 지금까지 고린도 교회의 문제들과 고린도 교인들이 질문한 문제들을 다루었습니다. 근친 상간의 문제도 있었고 (5), 세상 법정에 호소하는 문제 (6), 독신의 문제 (7), 우상 제물의 문제 (8), 애찬과 성찬의 문제 (11) 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여러 가지 문제들 밑에 깔려 있는 근본적인 문제는 분쟁 (division) 이었습니다. 바울파, 아볼로파, 그리스도파, 베드로파 등으로 나뉜 현실을 보고,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Is Christ divided?) 라고 통탄하였습니다. 이 분파의 문제는 1장부터 4장까지 집중적으로 나오지만, 5장부터 여러 이슈들을 다룰 때에도 그 근간에 깔려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여러 문제에 다루는 논지 (style of argumentation)을 보면, “yes-but” form of argument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D. A. Carson, Showing the Spirit: A Theological Exposition of 1 Corinthians 12-14). 그래 네 말에 일리가 있다, 그러나 반대편 말도 틀리지 않다, 이런 식으로 바울은 분쟁하는 분파들의 화합을 추구하였던 것입니다. 7장에서는 나처럼 독신으로 살 수 있으면 좋지만, 결혼도 괜찮다는 논지로 말씀합니다. 8장에서는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므로 우상에 바쳤던 제물을 먹어도 되지만, 우상 제물을 더럽게 보는 형제들도 배려해 주라는 논지로 말씀합니다. 11장의 애찬과 성찬은 예외입니다. 애찬이나 성찬에서 편당을 보이는 것은 결코 칭찬할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11:17-19). 그러나 12장부터 14장까지 다루는 방언의 문제에 있어서는 다시 ‘yes-but’ 스타일로 말씀합니다. 방언을 금하지 말라.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보다는 알아 들을 수 있는 예언이 교회에 덕을 끼치며 (14), 은사 중에 가장 큰 은사는 사랑이라고 말씀합니다 (13). 방언의 은사로 인하여 교회에 편당이 생겨서는 안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1절의 신령한 것이라는 구절을 많은 영어 성경들은 spiritual gifts로 번역하였습니다. Gift (은사)는 헬라어로 카리스마 (charisma)인데, 헬라어 본문에 없습니다. 우리 성경의 신령한 것들이라는 번역이 더 원문에 가까운 문자적인 번역입니다. 바울은 4절부터 은사” (charisma) 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많은 주석가들은 바울이 먼저 사용한 pneumatikon 이라는 단어는 고린도 교인들이 질문할 때에 사용한 단어이고, charisma는 바울이 애용하는 단어라고 봅니다. Charisma는 은혜라는 뜻의 charis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charisma에는 “grace-gift”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바울이 charisma라는 단어를 애용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16번 사용한 charisma의 용례들을 살펴보면, 고린도전서 12-14장의 방언의 은사나 병고침의 은사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폭 넓은 의미로 사용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로마서 5 15절로 16절에서 말씀하는 은사는 죄인을 의롭다 하시는 은혜를 가리킵니다. 6 23절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생을 가리킵니다. 로마서 11 29절에서는 이스라엘을 택하신 은혜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로마서 12 6절로 7절에 나오는 은사의 목록을 보면, 예언 (prophesying), 섬기는 일 (serving), 가르치는 일 (teaching), 권위하는 일 (encouraging), 구제, 다스리는 일 (leadership) 등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 11절에서는 많은 사람의 기도에 응답하여 하나님이 주신 은총 (favor), 곧 극심한 환난 가운데 건지심을 가리킵니다. 디모데전서 4 14절에서는 장로들의 안수를 통하여 받은 은사를 가리키고, 디모데후서 1 6절에서도 역시 바울의 안수를 통하여 받은 은사를 가리키는데, Carson 교수는 직무 (ministry)를 가리킨다고 봅니다. 그런가 하면, 고린도전서 7 7절에서는 독신의 은사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는 은사라는 단어가 3번 나오는데, 모두 병고치는 은사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사용하는 charisma는 방언이나 병고침의 은사 뿐만 아니라, 봉사나 위로를 잘하는 것이나 구제도 포함하고, 독신의 은사도 있으며, 돌보시는 은혜와 의롭다 하시는 구원의 은혜까지,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는 모든 것을 가리킵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크리스챤은 은사를 받은 은사자 (a charismatic)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우상을 숭배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2). 그래서 그들은 신령한 것에 대해서 무지하였습니다.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 많은 혼란이 있었고, 방언의 문제 등으로 또 편당이 생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날로 말하면, 방언을 못 하면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순복음 교인과, 방언은 아예 소멸되었다는 죤 맥아더 목사님의 견해를 따르는 장로 교인과 편당이 생긴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 때문에 갈등을 빚고 있는 고린도 교회에 주는 바울의 해답은 무엇입니까?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을 같다라는 것입니다 (4). 누가 성령을 받은 사람인가? 방언을 하는 사람인가? 바울이 주는 해답은 예수를 주시라고 고백하는 자는 누구나 성령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3). 바울은 비본질적인 것으로 교회가 나뉘는 것을 경계하였습니다. 방언이나 병고침의 은사는 비본질입니다. 본질은 성령입니다. 은사 문제로 교회가 나뉘어서는 안되며, 성령으로 하나되어야 합니다.

예수를 주시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은 사람입니다. 애굽의 술사들처럼, 성령을 받지 않은 이교도들도 방언이나 병고침이나 기적을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를 주시라고 진정으로 고백할 수 없습니다. 성령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교회는 성령의 공동체로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 13절에 보면,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또한 믿어 성령의 인치심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언제 성령의 인치심이 일어나는가? 누구에게 인치심의 축복이 임하는가?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는 자에게 임합니다. 구원의 복음, 곧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시고,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사셨다는 것을 내가 믿을 때에 성령의 인치심이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침은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성령의 인침이란, 성령님이 우리 심령에 임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세례 요한은 말하기를,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지만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는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간단히 말해서, 예수를 믿으면 성령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치심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믿는 자의 마음에 확신으로 임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는 자에게 임하시는 성령은 그 사람의 마음 속에 거하시며 구원의 확신을 주실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일을 행하십니다.

로마서 8 16절에 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그러므로 성령의 인침을 받은 성도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4 6절에는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령의 인침을 받은 성도에게는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또한 성령님은 우리에게 성경 말씀의 뜻을 가르쳐 주십니다. 요한복음 14 17절에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시라고 하였습니다. 26절에서는 성령님이 오시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소위 "성령의 조명"이라고 부릅니다. 성령의 조명이 있을 때 우리는 성경 말씀의 뜻을 깨닫게 됩니다. 마치 무대에 조명이 비취면 무대가 환히 드러나는 것처럼, 성령께서 성경을 비추어주실 때에 성경 말씀이 밝히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님은 전도의 능력도 주시고 할 말도 가르쳐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사도행전 1 8절은 말씀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마태복음 10 19절과 20절에서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 마음에 예수님을 증거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증거하도록 도와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님은 교회를 하나되게 하십니다. 에베소서 4 3절은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성령님이 하나 되게 하셨다, 이것은 교리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 하나 됨을 힘써 지키라, 이것은 실천입니다.

성령의 임재 안에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하나가 됩니다. 외부적인 혹은 제도적인 강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눈에 안보이는 영적인 신비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주의 성령이 임하실 때에, 사람들이 주의 영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말씀과 기도 가운데 한 성령님의 감동으로 온 교회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를 하나 되게 하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오직 성령이 임하실 때에 만이 교회가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하나가 되자고 설득을 하고 제도를 만들고 운동을 일으켜도, 인간의 힘으로는 참된 교회의 연합을 이룰 수 없습니다. 한 성령님이 두 사람 사이에 중재하실 때에, 두 사람의 마음이 하나가 됩니다. 성령님이 교회를 지배하실 때에 교회는 하나가 됩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령님이 한 사람 한 사람을 감동하셔서 예수를 주시라 시인하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그리스도께 연합시킴으로써 우리는 서로 한 몸을 이루고 연합하게 된 것입니다. 그처럼 성령님이 공들여 이루신 하나 됨을 깨뜨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그것이 우리에게 주시는 명령입니다. 힘써 지키라는 말씀은 어떠한 희생과 대가를 치루고서라도 정성을 다하여 보존하라는 것입니다. 하나 됨은 성령님이 이루어 주신 것으로 신성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는 명령은 하나님이 하신 일에 동참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 예수의 십자가 보혈에 근거한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몸 된 교회로 불러 주셨습니다. 한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의 한 몸이 되게 하셨습니다. 교회가 하나가 되게 하는 일에 우리가 한 일을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내세울 공로가 하나도 없습니다.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에게 주님이 명하시는 것은 오직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 되게 한 것을 네가 깨지 말라는 것입니다.

분쟁과 시기와 당 짓는 것과 분리함은 육체, 곧 죄성의 열매입니다. 방언이나 병고침의 은사를 받고도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성령님은 하나되게 하시는 분입니다.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는 명령에 온전히 순종하심으로, 여러분의 가정과 섬기는 교회가 성령님의 영광스럽고 완전한 연합 안에서 하나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