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은사, 한 성령 (고전 12:4-11)

 

Life Application Bible Commentary12장의 요점을 다음과 같이 간파했습니다: This chapter explains that all the gifts come from one source and are to be used for one purpose. The one source is the Trinity – God the father, the Lord Christ, and the Holy Spirit. The one purpose is the building up of the body of Christ. 곧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4), 성령의 은사는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7NLT: A spiritual gift is given to each of us as a means of helping the entire church).  

 

4절로 6절을 보시면, diversityunity가 대조되어 있습니다. 여러 은사, 여러 직임, 여러 역사는 다양성을 보여주고, 같은 성령, 같은 주, 같은 하나님은 통일성을 보여 줍니다. 먼저 은사 (gift, charisma)는 은혜 (grace, charis)에서 나왔습니다. 은사란 성령께서 선물로 주신 능력입니다 (abilities distributed by the Holy Spirit). 직임은 (service, ministry, diakonia) 교회의 머리되시는 예수님이 은사를 사용하도록 주시는 기회입니다 (The Lord Jesus assigns ministries, opportunities for service). 역사란 (working, operations, effects, energema) 은사로 봉사할 때에 일어나는 능력입니다 (Working refers to the results that come when we use our gifts in meaningful service).

 

고린도 교회는 분당과 분파로 얼룩진 교회였습니다. 방언의 문제도 고린도 교회에서 논쟁과 분란을 일으킨 문제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4절로 6절에서 은사의 다양성 중의 통일성을 강조한 후에, 7절에서 은사를 주신 목적을 말씀합니다: The gifts are not to cause division among the believers. Instead, God graciously gives spiritual gifts as a means of helping the entire church (LABT). 우리 성경의 유익하게 하시려고라는 번역처럼, 헬라어 성경에는 그냥 “for the profiting”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개인의 유익인지, 공공의 유익인지, 확실히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12장부터 14장의 전체 내용을 보면, 은사란 개인의 유익을 위함이 아니요, 교회의 유익을 위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Ray Stedman 목사님은 고린도 교인들이 은사를 자신의 유익과 과시를 위해서 사용하였기 때문에,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지 않고, 분당과 분쟁과 같은 육체의 일들이 나타나게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if you use a spiritual gift for your own purpose, for your own aggrandizement, your own ego satisfaction, what will happen is that the Father, who controls the power, will simply turn off the faucet. What you will do then is use a spiritual gift in the power of the flesh, of selfishness, and what comes out, as a result, is death and the spreading of dissatisfaction, dissension and division in the body of Christ. Spiritual gifts can be used in the power of the flesh, and then they create havoc as they were doing here at Corinth, but spiritual gifts used to benefit others always awaken and make possible the release of the power of God. The result will be life and joy and harmony and the bringing together in a beautiful way of expressions of love.

 

다음으로 8절로 10절에는 은사의 list가 나옵니다. 소위 성령의 아홉 가지 은사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여기 나오는 성령의 은사 목록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점이 있는데, 이 아홉 가지가 은사의 전부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의 은사는 여기 나오는 아홉 가지 외에도 많습니다:  This list was not meant to be exhaustive; it merely illustrates many of the different kinds of spiritual gifts. The Spirit gives many gifts; the Bible contains no definitive list of all the gifts. Paul meant this list to be suggestive rather than exhaustive. (LABC)

 

여기 나오는 목록은 바울이 예로 든 것들이며, 그처럼 예로 든 은사들보다 중요한 key word9절의 같은성령, 그리고 11절의 성령입니다. The same and one Spirit이 다양한 은사를 주신다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성경에는 은사의 목록이 다섯 군데 나옵니다. 첫번째는 오늘 본문입니다: 지혜의 말씀 (word of wisdom), 지식의 말씀 (word of knowledge), 믿음 (faith), 병고침 (healings), 능력 행함 (working of miracles), 예언 (prophesy), 영분별 (distinguishing of spirits), 방언 (tongues), 방언 통역 (interpretation of tongues).

 

두번째는 고린도전서 1229절입니다: 사도 (apostles), 선지자 (prophets), 교사 (teachers), 능력 (workers of miracles), 병 고치는 은사 (healing), 서로 돕는 것 (helps), 다스리는 것 (administration), 각종 방언 (tougues).

 

세번째는 로마서 126절로 8절입니다: 예언 (prophesy), 섬기는 일 (service), 가르치는 일 (teaching), 권위하는 일 (exhortation), 구제 (giving), 다스리는 자 (leadership), 긍휼을 베푸는 자 (mercy).

 

네번째는 에베소서 411절입니다: 사도 (apostles), 선지자 (prophets), 복음 전하는 자 (evangelists), 목사 (pastors), 교사 (teachers).

 

다섯번째는 베드로전서 411절입니다: (speaking), 봉사 (service).  

 

Chuck Swindoll 목사님은 성경에 나오는 은사들을 세 가지로 분류하였습니다:

support gifts: apostleship, prophecy, evangelism, pastoring, teaching.

service gifts: administration, exhortation, faith, giving, helps, serving, mercy

sign gifts: distinguishing of spirits, miracles, healings, tongues, interpretation of tongues.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은사 중에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이 있습니다. 흔히 지식은 이론적인 (theoretical) 것이고, 지혜는 실제적인 (practical) 것이라고 이해하는데, 바울이 지식 (gnosis)이라는 단어와 지혜 (sophia) 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용례들을 보면, 그러한 이분법 (dichotomy)가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주석가들은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그리고 중심어는 말씀이기 때문에, 지혜나 지식의 은사라기 보다 말씀” (word, logos)의 은사라고 보는 것입니다.

 

구약에 나오는 예언에는 foretellingforthtelling이 있습니다. 한국말로 예언과 대언이라고 번역하는데, 구약에서 선지자들이 한 말에는 foretelling 보다 forth-telling이 더 많습니다. 곧 예언자/선지자 (prophets)들은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미리 말하는 것 (foretelling) 보다,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메시지를 선포하는 일 (forthtelling)에 더 관심이 많았다는 것입니. 곧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에 빠져서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하면, 하나님은 예언자/선지자를 세우셔서 회개하라고 부르시며, 불순종의 결과에 대해서 경고하시며, 심지어 이스라엘과 열방의 죄에 대한 심판을 선포하시기도 합니. 물론 예언자/선지자들이 예언 (foretelling) 도 했습니다. 곧 미래를 예견하고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말하기도 했습니.

 

그러한 예언자/선지자들이 말하는 미래에는 두 지평 (two horizons) 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곧 당시 독자들에게 곧 닥칠 미래와 종말 (eschaton)적 미래, 곧 우주의 종말에 하나님이 세상을 끝내시는 미래이다. 그러므로 예언적 말씀들을 해석할 때에는 그러한 이중적 성취에 대해서 주의하여야 합니.   

 

예언의 은사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습니다. 오늘날도 예언의 은사가 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에 보면,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1),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5),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39)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오늘날 예언의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까요?

 

오순절 계통의 은사주의적인 신학에서는 오늘날도 사도행전이나 고린도전서에 나오는 예언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이 누구에게나 직통 계시를 통하여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장로교의 입장은 예언의 은사가 사도 시대 이후로 중단되었다는 중단론 (cessationism)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례로 에베소서 4 11절에 보면, 교회의 직분 가운데 선지자가 나옵니다. 하지만 오늘날 선지자라는 직분을 주는 교회는 없습니다. 만약 그런 교회가 있다면, 이단이나 사이비가 틀림 없을 것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전하는 자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입 역할을 하는 계시의 전달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구약에 보면, 선지자들이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신다’고 운을 뗀 후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곤 하였습니다. 신약 성경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던 초대 교회 당시, 곧 사도행전 당시나 고린도 교회에는 하나님의 계시를 전하는 선지자들의 역할이 필요하였습니다. 아직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록된 성경이 완성된 이후에는 선지자의 직이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되었습니다. 정경 (cannon)이 완료된 다음에는 성령께서 기록된 성경에 조명하심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성경 저자들은 성령의 감동으로, 곧 영감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였는데, 성경을 읽는 우리는 성령의 조명 (illumination)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날 하나님은 성경에 대한 성령의 조명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성경 계시가 종료된 다음에는 하나님의 직접 계시를 전하는 선지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물론 오늘날도 교회가 선지자적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고, 당대의 죄악상을 고발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날에는 새로운 계시가 임하는 것이 아니라, 기록된 계시에 대하여 새로운 이해를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1 10절로 11절에 보면,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의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고 예언하였습니다. 바울은 그 예언대로 예루살렘에서 결박을 당하게 됩니다.

 

이 본문에 대해서 대표적은 은사 중단론자인 John MacArthur 목사님은 이렇게 주석하였습니다: 선지자의 직무에는 계시적인 측면과 비계시적인 측면이 있는데, 예언 은사의 계시적 측면은 성경의 완성과 함께 사도 시대에 끝났다. 반면에 선지자의 사역 가운데 교리적이고 실제적인 권면을 하는 비계시적인 측면은 복음 전파자와 목사와 교사에게 계승되었다.

 

그러나 같은 칼빈주의 신학자이면서도 John Piper 목사님은 자기가 방언을 못 하지만 방언의 능력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으며, 특별히 예언의 은사를 사모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파이퍼 목사님은 예언 은사의 남용과 오용으로 인한 위험을 인정하지만, 그보다 더 큰 위험은 비은사주의 교회들이 빠지는 메마른 영성의 위험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의 결론은 11절입니다: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여러 은사가 있지만, 그 모든 은사를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는 분은 성령님, 한 분이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은 아홉 가지 은사와 거기에 대한 은사주의 와 비은사주의의 논란이 아닙니다. 다양한 은사를 소유한 사람들이 한 성령 안에서 한 몸을 이루어 주님의 교회에 유익이 되도록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4절로 6절을 보면, 하나라는 단어가 일곱 번 반복됩니다: 한 몸, 한 성령, 한 소망, 한 주, 한 믿음, 한 세례, 한 하나님. 성경에서 일곱이라는 숫자는 완전수입니다. 일곱 가지 근거를 제시한다면, 더 이상 부족하지 않는 충분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도 바울은 4절로 6절까지 ‘하나’ 라는 단어를 일곱 번 반복하면서, 교회의 하나 됨에 대한 완전한 교리적 근거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하나 됨의 일곱 가지 교리적 근거 가운데 첫번째는 한 몸입니다. “몸이 하나이요.” 영어 성경에 보면, There is one body”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부터 너희가 노력해서 한 몸을 이루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한 몸이 이미 있는 것입니다. Unity는 이미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명하시는 것은 그 통일을 깨지 말고 보존하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한 몸이라고 할 때에, 그것은 영어로 capital C, the Church 입니다. 눈에 보이는 수 많은 교회들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단 하나의 교회,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신령한 교회를 가리킵니다. 지상에 수 많은 교회가 존재하지만,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궁극적으로 하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한 몸에 연합시키는 것이 한 성령님의 사역입니다. 고린도전서 12 13절에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한 성령이 한 몸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또한 한 성령님은 같은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한 성령님으로부터 같은 열매가 맺힙니다.

 

뿐만 아니라, 한 성령님은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부흥의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1730년대에 조나단 에드워드는 미국의 뉴잉글랜드 지방에서 부흥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같은 시기에 영국의 웨일즈 지방에서도 신앙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같은 시기에 조지 휫필드와 요한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에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1850년대의 신앙 부흥 운동도 마찬 가지입니다. 그러한 부흥은 사람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면서 계획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두 세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여서 기도하는 작은 모임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살고 있는 시대와 지역이 영적으로 무기력한 것에 대하여 애통하며 기도하였는데, 예기치 않았던 성령의 임하심을 경험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한 성령님께서 서로 모르는 여러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교회의 하나 됨도 한 성령께서 여러 사람의 마음 속에 역사하실 때에 일어납니다. 한 성령께서 다양한 사람들로 하여금 한 마음을 품고 주를 섬기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 성령께서 나누어 주신 성령의 은사를 가지고 다른 지체를 깔보아서도 안됩니다. 은사란 자기 것이 아니라,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한 성령님이 자기의 기쁘신 뜻과 지혜대로 은사들을 나누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혹시라도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가지고 교만하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였다면, 회개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한 소망 가운데에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좇아가노라,” 빌립보서 3 13절로 14절에서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앞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또한 위를 바라 보아야 합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골로새서 3 2절은 말씀합니다. 장차 천국에서는 모든 구분과 차별이 다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 하나 됨의 소망 가운데 “평안의 매는 띠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천국의 백성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