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복음 (고전 15:1-20)

       

바울은 지금까지 고린도 교회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다루었습니다. 그 문제들은 실제적인 문제들이었습니다. 실제적인 삶의 문제, 그리고 교회 생활, 예배를 드리는 자세 등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바울이 다루었던 주제들을 보면, 분파의 문제, 성적인 부도덕의 문제, 성도끼리 세상 법정에 고소하는 문제, 독신의 문제, 우상 제물을 먹는 문제, 예배 시간에 여자들의 복장 문제, 성찬과 애찬의 문제, 그리고 방언의 문제 등이었습니다. Paul has primarily addressed the church’s errors of orthopraxy (Swindoll).  

       

오늘 읽은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장이라고 불립니다. 고린도 교인들의 일부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였기 때문에 (12), 바울은 죽은 자의 육체적 부활이라는 신학적인 주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게 된 것입니다. In 1 Corinthians 15, Paul makes a sudden transition from serious issues of orthopraxy to a severe issue of orthodoxy, making this chapter the theological summit of Paul’s grand letter (Swindoll).   

       

Corinth was a Greek city, and the Greek did not believe in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When Paul had preached at Athens and declared the fact of Christ’s resurrection, some of his listeners actually laughed at him (Acts 17:32). Most Greek philosophers considered the human body a prison, and they welcomed death as deliverance from bondage. This skeptical attitude had somehow invaded the church, and Paul had to face it head-on (Wiersbe).


바울은 1절과 2절에서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이 전한 복음을 받고 그 가운데 서 있음을 상고시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헛되이 믿지 않고, 굳게 붙잡는다면, 그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그처럼 구원을 약속하는 복음의 내용은 무엇인가? 바울은 3절로 4절에서 복음의 핵심을 말씀합니다: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의 증거는 장사 (buried) 지낸 바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죄를 죽으셨다는 증거는 성경 말씀입니다.

        

이어서 바울은 예수 부활의 증거를 두 가지 들고 있습니다. 첫째는 성경입니다. 구약에 예수님의 부활을 예언하는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제가 설교를 준비하다가 새롭게 깨달은 것이 있는데, 예수님이 초실절에 부활하심으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20). 우리는 예수님이 유월절에 유월절 어린양으로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유월절은 금요일이고, 예수님은 안식일 (토요일) 후 첫날 (주일) 새벽에 부활하셨습니다 (24:1).

        

그런데 레위기 239절로 14절에 나오는 초실절의 규례를 보면, 유월절 다음날 안식일의 이튿날에 (11), 곡물의 첫 이삭을 제사장에게 가지고 오면 (10), 제사장이 그 단을 여호와 앞에 열납되도록 흔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첫 이삭은 계절상 보리입니다. 그래서 보리 맥자, 맥추절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런데 초실절은 유월절 (금요일) 다음날 토요 안식일 (무교절 시작) 다음날이라고 했으니, 주일입니다. 예수님은 고린도전서 1520절 말씀처럼 부활의 첫 열매로 초실절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유월절에 죽으시고, 초실절에 부활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타이밍은 정말 놀랍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첫 열매를 바치는 초실절이 또 하나 있습니다. 칠칠절 혹은 오순절입니다. 칠칠절은 방금 말씀드린 유월절 직후의 초실절로부터 일곱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 그 일곱번째 안식일 이튿날까지 도합 오십 일을 계수한 날입니다 (23:15-16). 이 칠칠절도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리는 날이라고 민수기 2826절은 말씀하는데, 이 날은 밀 (wheat)의 첫 열매를 드리는 날입니다. 칠칠절은 밀의 첫 열매를 드리는 초실절입니다. 개역 성경 출애굽기 3422절에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라는 말씀의 맥추는 오역입니다. 모든 영어 성경에 wheat로 나오고, 새번역과 공동번역도 이라고 나옵니다.


요약하면, 유월절 다음 날인 안식일부터 일주일 간의 무교절이 시작되고, 그 안식일 다음날이 초실절입니다. 그날은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주일입니다. 그 날은 보리 맥추의 첫 단을 제사장이 대표로 여호와 앞에 흔들었습니다. 그로부터 7주가 지난 칠칠절 혹은 오순절에는 밀 (wheat)의 첫 열매를 백성들이 하나님께 바쳤고, 신약의 교회가 성령의 첫 열매로 오순절에 탄생하였습니다.

        

바울이 예수 부활의 증거로 드는 두번째는 5절로 8절에 나오는 수 많은 증인들입니다. 그 명단 게바 (베드로)로부터 시작해서 바울로 끝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다는 것은 바울에게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부활하신 주님을 본 사람 만이 사도가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9절에 보면, 바울은 자신이 사도라고 말합니다. 교회를 핍박하던 전력이 있기 때문에, 사도라 칭함을 감당치 못할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지극히 작은 사도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사도라는 직분은 특별히 열 두 제자에게 주님이 친히 주신 칭호였습니다. 누가복음 6장에 보면, 예수님이 밤새 산에서 기도하시고 내려 오셔서, 많은 제자들 가운데 특별히 12명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120문도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할 때에 베드로가 일어나서 말하였습니다. 이제 가룟 유다 대신에 한사람을 또 뽑아야 되겠다.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사도란 말의 본 뜻은 messenger입니다. 메세지를 전하기 위하여 보내심을 받은 사자, 전령을 의미합니다. 베드로의 말을 보면 그들이 전하여야 할 메세지는 주님의 부활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부활의 증인이었습니다. 사도의 제일되는 요건은 주님의 부활을 눈으로 목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이 의심받을 때에, “내가 사도가 아니냐? 내가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고 반문하였던 것입니다 (고전 9:1). 바울은 자신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으며, 주님으로부터 직접 파송을 받은 사도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처럼 사도직은 divine한 것이기 때문에, 바울은 갈라디아서 11절에서 “사람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이라고 자신의 사도직을 길게 정의합니다.


그처럼 부활은 중요한 것이고, 복음의 핵심입니다. 복음의 양대축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을 부인하는 것은 복음 자체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13절로 19절까지 만일이라는 단어를 반복하면서, 부활을 부인하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가를 말씀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모든 것이 부활에 달려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첫째로 14절에 보면,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너희의 믿음도 헛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기독교는 이 세상 역사상 최대의 사기극이 될 것입니다. 기독교가 가르치고 믿는 모든 체계가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둘째로 17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여전히 죄 가운데 있다는 것은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하였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서 우리가 의롭다함을 입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로마서 4 25절은 말씀합니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이 말씀은 십자가를 통한 죄사함과 부활을 통한 칭의를 구별합니다. 우리의 죄는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보혈로 다 사하심을 입었으나,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우리가 비로서 의롭다 하심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세째로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을 것이라고 18절은 말씀합니다. 예수 믿고 죽은 신자들의 부활도 없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먼저 떠나간 사랑하는 부모님들을 다시 만날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하나님이 먼저 데려 가신 사랑하는 자녀를 다시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에게 붙은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부활할 것이라고 고린도전서 15 23절에 말씀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 16절은 “주께서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부활이요 생명이 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을 따라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부활 신앙입니다.


마지막으로
19절에 보면, 만일 내세가 없고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생 뿐이라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말로 다할 수 없는 고생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부활이 없다면, 이생이 전부라면, 내가 얼마나 헛고생을 한 것인가, 내가 얼마나 불쌍한 사람인가,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에 비할 수 없다는 말씀이 완전히 무효가 된다면, 우리 모두에게는 허탄한 절망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증거는 수 많은 목격자들입니다. 예수님은 40일동안 제자들에게 보이셨
, 부활한 주님을 목격한 제자들은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비겁했던 제자들이 누구도 당할 수 없는 용기와 담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처럼 낙심과 슬픔에 빠져있던 제자들이 핍박을 무릅쓰고, “나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며 예수의 부활을 담대히 증거할 수 있었습니까? 이것이 인간의 조작으로 가능할까요? 여러분이라면, 거짓말을 위하여 순교하실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다시 사셨기 때문에, 그리고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기 때문에, 그러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의 부활이 거짓말이라면 어떻게 한 두 사람도 아니고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 전원이 생명을 걸고 복음을 증거 했겠습니까? 거짓말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요, 그들은 목숨을 걸고 본 것을 증거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에,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사울은 자라는 의미의 히브리식 이름이고, 바울은 작은 자라는 의미의 로마식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히브리인으로서 자라는 뜻을 갖고 있는 사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만나고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고, 작은 자라는 뜻의 바울로 살아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고 스스로를 크게 여기는 바리새인으로부터 스스로를 작게 여기는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개종하기 전에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자부했습니다. 자기 의로 가득 찬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자들을 잡으러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해보다 밝은 빛으로 나타나신 주님 앞에 거꾸러졌습니다. 시력을 잃었습니다. 예수님의 앞에 바울의 의는 빛을 잃었습니다. 햇빛보다 밝은 주님의 앞에서 바울의 의는 꼬마 전구도 안되었던 것입니다. 지식을 갖게 바울은 자기 의를 쫓는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 예수를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의를 전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율법의 의로 흠이 없는 자라고 자부하는 자기 의로 가득 있던 바울의 입에서나는 죄인의 괴수라 고백이 나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었던 그가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핍박자가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율법주의적인 바리새인이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는 위대한 설교자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큰 변화입니까? 예수님을 만난 바울은 다메섹에 가서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전파하였습니다 ( 9:20). 예루살렘 교회를 잔해하던 , 예수 믿는 자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에게 끌고 가려고 다메섹까지 원정을 오던 사울이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였던 것입니다 ( 9:21-22).


그리고 자기 의를 자랑하던 사울이 바울로 변화되어 갈라디아서 6 14절에서는내게는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 고백하였습니다. 얼마나 변화 입니까? 스스로 났다는 교만과 자기 의에 사로 잡혔던 사울은 살아계신 주님을 만난 후에, 나는 죄인의 괴수라, 나의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는 작은 자가 되었습니다. 자기 자랑을 배설물과 같이 버리고, 예수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외치는 복음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믿는 성도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합니다. 로마서 64절은 예수님의 육체적인 부활과 성도들의 영적인 부활을 연결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 말씀은 성도들의 현재적 부활을 말씀합니다. 죄악된 옛 사람이 죽고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되는 부활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연합함으로 미래의 육체적 부활에 동참할 뿐만 아니라, 현재의 영적 부활에도 동참하게 됩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나의 죄를 위한 십자가였다는 것을 믿고 고백하고 세례 받는 그 순간에, 죄악된 옛 사람은 죽고 의인으로 부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 안에 새 생활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함으로, 신자는 영적으로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가 되는 것입니다. 거듭난 새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있는 자가 됩니다.


거듭나기 전에는 성경을 읽을 때에, 말씀을 들을 때에, 아무런 느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자에게는 그 말씀이 살아 움직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으로 다가 옵니다. 거듭나기 전에는 세상 친구들이 좋았습니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친구들하고 같이 있는 것이 고역이었습니다. 관심사가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자에게는 성도의 교제가 가장 즐겁습니다. 거듭나기 전에는 교회에 나가는 것이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자에게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시간이 가장 소중하고, 기도하는 시간이 가장 즐겁습니다. 주일 날 교회에 나가 예배드리는 것이 일주일의 가장 중요한 일이 됩니다. 거듭나기 전에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성도는 바울과 같이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한다" 고 외칠 수 있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 27절에 보면,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누구로 옷 입었다구요? 그리스도로 옷 입었습니다. 신부복 수녀복과 같은 성직자 옷보다 비할 수 없이 더 거룩한 그리스도로 옷 입었습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고 죄 가운데 거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고, 성도라는 이름을 가지고, 교인이라는 명함을 가지고, 그 신분에 어울리지 아니하는 부끄러운 죄 가운데 거할 때에,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다른 사람을 실족케 합니다. 성도가 거짓말과 분냄과 싸움과 같은 구습을 버리지 못할 때에, 마귀가 틈타며 성령이 근심하십니다.


반면에 성도의 부르심에 합당한 덕목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사랑 가운데 서로 용납함이라고 에베소서 4 1절로 3절은 말씀합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죄악을 떠난 경건한 삶을 살 때에 그 자체가 세상의 빛이 됩니다. 우리 주님의 말씀과 같이,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축복된 교회의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