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으로 오신 예수님 ( 2:1-12)

 

메시야, 혹은 그리스도란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구약에서 기름 부음을 받는 직분은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곧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부족하기 때문에, 완전한 선지자도 없었고 완전한 제사장도 없었고 완전한 왕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완전한 선지자이셨고 완전한 제사장이셨고 완전한 왕이셨습니다. 주님은 동시에 세 가지 직분을 온전히 감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칼빈은 그 세 가지 직분을 그리스도의 삼중직 (threefold office of Christ) 라고 불렀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완전한 선지자이셨습니다. 히브리서 1 1절로 2절에 보면,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고 하였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각 시대에 주시는 다양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온전한 선지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 1절도 예수님을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으로 정의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베드로는 모세가 신명기 18 15절에서 예언한 그 선지자가 바로 예수님이라고 증거하였습니다 ( 3:22). 예수님도 스스로를 선지자로 언급하셨습니다. 곧 누가복음 13 33절에서는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 죽는 법이 없다”고 하셨고, 마태복음13 57절에서는 선지자가 고향과 자기 집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했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완전한 제사장이셨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께 죄인을 대신하여 제사를 드리는 중보자였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하나님과 인간의 중보시라고 증거합니다. 디모데전서 2 5절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고 말씀합니다. 히브리서도 예수님이 새 언약의 중보시라고 세 곳에서 증거합니다 (8:6, 9:15, 12:24).

 

사실 히브리서 전체는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영원한 제사장이라”는 시편 110 4절의 주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곧 히브리서 4 14절은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고 말씀하고, 히브리서 9 24절은 “그리스도께서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셨다”고 말씀합니다. 구약의 지성소에는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구약의 대제사장들은 해마다 짐승의 피를 들고 지성소에 들어갔지만, 완전한 대제사장으로 오신 예수님은 단번에 (once for all) 영원한 속죄의 피를 하늘 성소에 뿌리셨다는 것입니다.

 

세째, 예수님은 완전한 왕이셨습니다. 골로새서 1 13절은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구원받은 사람들, 곧 하나님의 백성들의 왕이십니다. 새 언약의 백성은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 받은 백성, 곧 교회입니다. 신약에서는 교회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러나 구약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이스라엘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은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동방에서 온 천문학 박사들은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은 유대 땅에 와서 헤롯을 찾아갔습니다. 헤롯이 유대의 분봉왕이었기 때문입니다. 새로 태어난 유대인의 왕은 헤롯의 왕궁에 태어났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들은 헤롯왕에게 우리가 동방에서 유대인의 왕의 탄생을 알리는 별을 보고 경배하러 왔다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헤롯의 반응은 16절에 나옵니다. 베들레헴 지경의 두 살 이하의 모든 사내 아이들을 다 죽여 버렸습니다. 헤롯왕은 다른 왕을 용납할 수 없었기에,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 퀴즈를 하나 내겠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의 성탄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이 헤롯 말고 또 있습니다. 누구일까요? 약간 넌센스 퀴즈이기도 한데, 누가복음 27절에 나오는 사관 (여관)의 주인입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다이너 도너후가 "No Room at the Inn (빈 방이 없소)"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어느 시골 교회에서 성탄 성극을 하게 되었습니다. 웰리스는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인데 언어 장애가 있었습니다. 말을 더듬었습니다, 그래서 대사를 하다가 막힐 수 있었기 때문에 역할을 주기가 곤란하였습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여관주인 역할을 맡겼습니다. 그리고 여관 주인의 대사를 최대한으로 줄였습니다. 단 두 마디였습니다. No room. 그것을 세 번 반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 요셉과 마리아가 찾아와서 빈 방 있습니까, 하고 물으면 no room 이라고 대답합니다. 두 번째로 요셉이 제 아내가 아이를 낳으려고 합니다. 방이 정말 없습니까? 하면 조금 더 큰 소리로 no room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요셉이 다시 한 번 지금 밖에는 춥고 눈이 오고 있습니다. 제 아내는 아이를 낳으려고 합니다. 부탁드립니다. 창고라도 좋으니 머물 수 있는 곳을 좀 주세요, 라고 말하면, 아주 신경질적인 말투로 no room 하고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웰리스는 열심히 연습하였습니다. no room, No Room, NO ROOM!

 

드디어 공연 날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요셉이 너무나 연기를 잘 하였다는 것입니다. "주인 어른, 찾아 간 집마다 허탕을 쳤습니다. 우리는 먼 길을 여행해서 매우 지쳐 있어요. 마음씨 착하신 주인 어른, 제발 살려주세요. 내 아내 마리아는 보시다시피 아기를 가져서 이렇게 몸이 무겁습니다. 어디라도 좋으니 쉴 수 있는 한쪽 구석이라도 허락해 주세요. 이 추운 날씨에 어디로 가란 말입니까?" 그처럼 애절한 요셉의 부탁을 들은 웰리스가 말할 차례가 되었는데, 말이 없습니다. 선생님들이 웰리스 no room 이라고 속삭였습니다. 웰리스의 입술이 떨렸습니다.

 

선생님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웰리스가 말문이 막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안타깝게 속삭였습니다. 웰리스, no room이라고 말해. 그러나 웰리스의 눈이 충혈되었습니다. 울먹거리던 웰리슨의 입에서 드디어 대사가 나왔습니다. Then, come to my room. 그러면 내 방으로 오세요. 관객들은 박수 갈채를 보냈습니다. 추운 날씨에 해산의 고통을 당해야 하는 불쌍한 부부를 그냥 쫓아낼 수 없었던 웰리스의 마음이 관객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마음의 왕좌를 예수님께 내어 드리셨습니까? 아니면, no room 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고 아직도 고집하고 계십니까? 자신의 왕좌에 연연하는 사람은 헤롯과 같은 사람입니다. 이번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예수님은 나의 왕이십니다, 다시 한번 고백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왕의 왕되신 주님께 나의 왕좌를 내어드립니다.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신 주님, 나를 위하여 십자가의 중한 고통을 받으신 주님, 좌정하사 다스리소서,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그처럼 “유대인의 왕”이라는 칭호 때문에, 탄생하실 때부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유대인의 왕”이라는 칭호는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 달린 죄명이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9 19절에 보면,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카톨릭에서 사용하는 십자가에 보면, 위에 INRI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것은 라틴어로Iesus Nazarenus, Rex Iudaeorum의 약자로,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어찌하여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패가 붙게 되었습니까?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공회에서 예수님에게 사형을 선고한 죄목은 신성모독 (blasphemy) 이었습니다. 대제사장이 예수님에게 네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냐고 물었을 때에, 예수님이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고 대답했습니다 ( 26:64). 그러자 대제사장이 옷을 찢으며 “참람하도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저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선언하였던 것입니다 ( 26:65).

 

그러나 유대인들에게는 사람을 죽일 권한이 없었습니다 ( 18:31). 그래서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죽여 달라고 끌고 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주장은 빌라도에게 죽일 만한 죄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가 자기를 유대인의 왕이라고 주장하는 정치적 반역범이라고 고소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유명한 질문을 하게 됩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 18:33). 예수님은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 18:37). 그러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18:36). 빌라도는 예수에게서 죽일 만한 죄를 찾지 못하였습니다. 빌라도가 볼 때에 예수님은 아마도 종교적인 과대망상에 빠진 사람 쯤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를 적당히 때리고 놓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최후의 발악을 하였습니다.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 19:12). 빌라도는 가이사의 명을 받고 유대 총독으로 파송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의 왕이라고 자칭하는 정치적 반역자를 놓아주면 되겠는가, 그러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라고 하면서, 그들은 빌라도를 압박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를 죽이기 위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빌라도가 귀를 의심할 만한 말을 서슴치 않고 내뱉었습니다: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 19:15).

 

결국 예수님은 로마 군병들에게 유대인의 왕으로 조롱을 받으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혔습니다. 자색 옷은 임금의 권위를 상징하는 옷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머리에 왕관 대신 가시 면류관을 씌웠습니다. 손에는 홀 대신 갈대를 들렸습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희롱하며 경배하였습니다: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 27:29).

 

그리고 예수님은 로마 군병들의 손에 처형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조롱 섞인 팻말이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붙었습니다 ( 19:20). 심지어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을 더 조롱하기 위하여 빌라도에게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팻말을 써 달라고 요구하였던 것입니다 ( 19:21).

 

그런데 성경은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이 영원한 평강의 왕으로 다스리신다고 말씀합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 9:6-7).

 

당시의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로마의 평화 (pax Romana) 를 이룩하였습니다. 로마의 평화는 군사력으로 이룩한 평화였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평화가 되지 못하고, 로마의 쇠퇴와 함께 200년 만에 막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평강의 왕은 영원토록 다스리신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로마의 평화를 위협하는 역적으로 몰려서 처형되셨지만, 십자가의 사랑과 용서를 통하여 영원한 평강의 왕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화목을 이루셨고, 이방인과 유대인을 하나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셨다”고 말씀하며 ( 1:20), 한 마디로 “그는 우리의 화평이시라”고 말씀합니다 ( 2:14).

 

그러므로 천사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며 노래하였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 2:14).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크리스마스 선물이 무엇입니까? 평화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 14:27).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첫 마디도 peace 였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 20:19).

 

이 복된 성탄의 계절에 평강의 왕께 “예수 우리 왕이여” 경배드리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왕좌를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는 헤롯과 같은 사람이 한 분도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앞에 엎드려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며 경배한 막달라 마리아와 같이, 예수님의 못박히신 발에 입맞추며 ‘당신은 나의 왕이십니다,’ 경배하시기 바랍니다. ‘내 일생을 주님께 드리며, 내 사는 날 동안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고백하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때에, 십자가에서 주님이 이루신 평화,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화가 평강의 왕께 경배드리시는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그리고 우리 교회에 충만히 임하시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