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향기 (고후 2:12-17)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2차 선교 여행 중에 개척하고 1년 반 동안 목회하였던 교회입니다. 바울은 3차 선교 여행 중에 에베소에서 고린도 전서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와 후서 사이에 소위 눈물의 편지’ (severe letter)를 디도 편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지금 바울은 드로아에 와 있습니다. 드로아는 바울이 2차 선교 여행 때에, 마게도니아 사람이 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부르는 환상을 본 곳입니다.

12절에 보면, 드로아에서 복음 전파의 문이 열렸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의 마음은 편치 못하였습니다. 눈물의 편지를 들고 고린도로 갔던 디도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마게도니아로 가게 되었습니다. 759절에 보면, 마게도니아에서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에 시달렸는데, 디도가 옴으로 위로를 얻게 됩니다. 특별히 고린도 교인들이 눈물을 편지를 받은 후에 회개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고린도후서를 쓰게 된 것입니다.

15절에 보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말씀합니다. 헬라어 원어로는 하나님께 향기 (to theo)라고 되어 있고, 영어 성경에는 to God 이나 unto God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향기라는 뜻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제물의 향기를 흠향하십니다. 레위기 2318절에 보면, 하나님께 드리는 번제는 화제로서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노아가 홍수 후에 단을 쌓고 짐승으로 번제를 드렸을 때에,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에 백향목을 쓴 것은 나무의 재질이 좋을 뿐 아니라, 좋은 향기가 나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성전 안에는 향단이 있어서, 항상 향기가 성전을 가득 채우게 하였습니다.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드린 세 가지 예물 중에서 두 가지, 곧 유향과 몰약은 향기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여인이 예수님의 발에 값비싼 향유를 부었을 때에, 주님은 그 여자가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했다고 하시고,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인의 한 일도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  

에베소서 52절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드리신 속죄의 제사를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다고 말씀합니다. 빌립보서 418절은 헌금에 대해서,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계시록 8장에 보면, 금향로의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하나님께 올라간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성도의 기도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가를 보여줍니다. 마치 향기로운 향과 같이 열납하시고 흠향하신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을 하나님은 흠향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하나님께 향기가 될 뿐만 아니라, 세상을 향해서도 향기가 된다고 말씀합니다. 구원 얻는 믿는 자에게 뿐만 아니라, 멸망당할 불신자들에게도 향기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산하고 있습니까?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는 두 개의 화분을 솔로몬 왕에게 가지고 왔습니다그리고 솔로몬 왕에게 어느 것이 생화이고 조화인지 분별해 보라고 했습니다 화분의 꽃은 너무나  같았습니다지혜의 왕 솔로몬은 화분들을 창가에 갖다 두라고 하였습니다잠시 후에 화분에 나비와 벌이 날아와 앉은 것을 보고 솔로몬 왕은  화분을 생화로 분별해 냈습니다향기가 있는 꽃만이 나비와 벌을 부를  있었습니다생화만이 향기를 발하는 것입니다

누가 참된 그리스도인이냐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모양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향기가 있어야 합니다아무리그리스도인의 모양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그리스도의 향기가 없으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향수 중에 제일 좋은 것이 샤넬 넘버 5 (Chanel number 5) 라고 하는데, 장미 꽃잎 45kg으로부터, 28g의 향수액을 추출한다고 합니다. 샤넬이라고 하니까, 불란서 제품인 것 같은데, 프랑스에서 향수가 발달한 것은 목욕을 하지 않는 문화 때문이었다고 하지요. 유럽 사람들이 14세기부터 400년 동안 목욕을 안 했는데, 그 이유는 목욕을 하면 흑사병에 걸린다는 잘못된 통념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루이 14세로부터 모든 왕족들과 귀족들도 평생 목욕을 안 했는데, 그 대신 옷을 자주 갈아 입고, 향수를 뿌렸다고 합니다.

상상해 보건대, 몸에서 나는 악취와 향수 냄새가 짬뽕이 되어서, 더욱 역겨운 냄새가 났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에 대해서, 속은 더러우면서 겉만 깨끗한 사람들이라고 하셨는데, 우리도 위선자가 된다면, 죄성의 악취와 그리스도의 향기가 뒤섞여서 악취보다 더 역겨운 냄새가 날 것 같습니다.    

그런데 16절에 보면, 그리스도의 향기가 구원 얻는 자들에게는 생명의 냄새요, 멸망당할 사람들에게는 죽음의 냄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는 고린도 교인들은 알고 있었지만 우리는 모르는 역사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곧 로마의 승리 (Roman Triumph)를 축하하는 개선 행진 (Roman triumphal procession)입니다. 로마의 장군이 군사들과 함께 정복지의 포로들과 전리품을 끌고, 로마의 대로를 행진하는 것입니다.

These ancient processionals were marked by an aroma, as giant censers of smoking incense were carried by the priests. The smell would flow equally over those exulting in triumph and those hanging their heads in defeat. To the former, the incense reinforced their victory over the enemy. To the latter, the smoke stung their nostril with the incessant reminder of military defeat and imminent death. (Swindoll)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익히 알고 있던 로마의 개선 행진에 비유해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구원 얻는 자들에게는 생명의 향기요, 멸망당할 사람들에게는 죽음의 냄새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골로새서 215절에서도 예수님의 십자가 승리를 당시의 개선 행진에 비유하였습니다: “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공동 번역은 이렇게 번역하였습니다: 십자가로 권세와 세력의 천신들을 사로잡아 그 무장을 해제시키시고, 그들을 구경거리로 삼아 끌고 개선의 행진을 하셨습니다. 십자가로 승리하신 주님은 마귀와 그 졸개들을 포로로 끌고 개선 행진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4절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항상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신다고 말씀했습니다. NIV God leads us as captives in Christ's triumphal procession 라고 번역했는데, 우리가 포로라는 구절은 원어 성경에 없는 의역입니다. 헬라어 성경에는 그냥 하나님이 우리를 개선행진에서 이끌어 가신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English Standard VersionGod in Christ always leads us in triumphal procession 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승리의 행진에 동참해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산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17절에 보면,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 다른 사람들처럼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한다는 구절을 영어 성경들로 보면, peddle한다고 번역하였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장사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듣기 좋은 쪽으로 말해서, 인기를 끌고, 개인의 영달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했지만, 바울은 순전한 말씀을 전했고, 그 말씀은 구원 얻는 자들에게는 생명의 향기가 되었고, 멸망당할 사람들에게는 죽음의 냄새가 되었던 것입니다.

          순전한 하나님이 말씀은 항상 그처럼 두 가지 반응을 일으켰습니다. 베드로는 오순절 설교에서 너희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사실 그들은 예수를 직접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로마 병정들이고, 그렇게 하라고 명령을 내린 것은 빌라도 총독이었으며, 예수를 빌라도 법정에 끌고 간 것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었습니다. 예수를 대제사장들에게 팔아 넘긴 것은 가룟 유다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 강림의 현장에 몰려든 유대인들을 향하여 말합니다: “너희가 죽었다.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도 유대인들에게 같은 고발을 하였습니다: “너희 조상들은 의인이 오시리라 예언한 자들을 죽였고, 너희는 그 의인을 살인한 자가 되었다” ( 7:52). 이 스데반 집사의 고발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7 5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그들은 마음에 찔림을 받았으나, 회개를 한 것이 아니라 이를 갈며 귀를 막고 스데반에게 달려들어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쳐 죽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똑같이 마음에 찔림을 받았지만, “우리가 어찌할꼬?” 라고 묻습니다. 그처럼 말씀을 들을 때에, 마음에 찔려 분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음에 찔려 회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시편 95편을 인용해서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마음에 찔려 어찌할꼬?” 였습니다.

          말씀을 듣고 마음에 찔림을 받는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의 검이라는 에베소서 말씀과 아울러 히브리서 4 12절로 13절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검입니다. 우리의 심령 깊숙한 곳까지 찔러 쪼개서 다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의 생각과 뜻까지 다 노출시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심령을 open surgery 하십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포장하고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겸손한 척 합니다. 거룩한 척 합니다. 착한 척 합니다. 믿음이 좋은 척 합니다. 순수하고 위선이 없는 성자로 행사합니다. 그러나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감찰하시는 자 앞에 하나라도 나타나지 않음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검과 같이 우리의 깊은 곳을 open 하십니다.

우리 모든 사람들이 직면해야만 하는 말씀이 이것입니다: “네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 어떤 사람은 생사람 잡는다고 화를 낼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양심의 가책을 애써 피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만져 주시는 사람은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도 바울처럼 나는 죄인의 괴수다고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고백은 처음 예수 믿을 때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7장을 보십시오. 사도 바울같은 믿음의 거장도 자신의 죄성에 대하여 몸부림치며 괴로워했습니다: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향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이것이 “어찌할꼬?” 입니다.

아직도 돈이 있는 사람은 “어찌할꼬”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직도 건강한 사람은 “어찌할꼬” 라고 탄식하지 않습니다. 아직도 기댈 구석이 있는 사람른 “어찌할꼬” 라고 외치지 않습니다. 오직 파산한 사람 만이 “어찌할꼬” 라고 간절하게 부르짖는 것입니다. 영적인 파산, 나에게는 의가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의 입에서 이사야 선지자와 같이,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라는 고백이 나오는 것입니다.

바울이 전한 것과 같은 가감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는 생명의 향기가 되기를 원합니다.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서 하나님께 올려지며, 이웃들에게 전파되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아무 냄새도 안나는 가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혹은 악취가 나는 위선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향기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어두운 세상에서 빛 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