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편지 (고후 3:1-3)

          오늘 본문 31절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이 좀 화가 난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특별히 다시” (again) 이라는 단어는 짜증스러운 마음을 표현합니다: 우리가 다시 우리 자신에 대하여 자화자찬을 시작해야 하겠느냐? 아니면 우리가 다른 사람들처럼 추천장을 너희에게 제출하거나, 너희에게 추천장을 받아야 하겠느냐?

          이 말씀에 비추어 볼 때에, 고린도 교회에서는 바울의 사도성에 대해서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메신저를 불신케 해서, 메시지가 불신을 받도록 하는 사단의 작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말을 계속 퍼뜨리는 사람들이 누구였습니까? 바울이 개척한 이방인 교회마다 들어가서 거짓 (counterfeit) 복음을 전하고 있던 거짓 교사들이 (false teachers) 있었습니다.

그들은 소위 유대주의자들 (Judaizers, Jewish legalists) 였습니다. 바울은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복음을 전파하였던 것에 반해서, 그들은 믿음에 율법 준수를 더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쳤습니다. 특히 이방인들도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들이 전하는 율법주의적인 복음 (gospel of legalism)은 사람들의 종교심에 부합하기 때문에, 이방인들로부터 호응을 받았습니다.   

더욱이 그들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기둥과 같이 여겨지는 베드로나 야고보나 요한과 같은 사도들로부터 받은 추천장을 보여 주면서 자랑하였던 것 같습니다. 가짜였을지도 모릅니다 (forgery). 그런 추천장은 그들이 전하는 거짓 복음에 힘을 실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에게는 이런 추천장이 없다고 말하였던 것 같습니다 (Paul had no such credentials). 그럼으로써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권위를 깎아 내리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순진한 고린도 교인들을 선동하였을 것입니다. 바울에게도 추천장을 요구해라. 바울은 예수님의 제자도 아니고, 교회를 핍박하고 다니던 사람인데, 그가 무슨 사도냐? 정말 사도라는 증명서를 보이라고 해라. 고린도 교인들은 그들의 그럴 듯한 말에 흔들렸습니다. 그래서 바울에게도 추천장을 가지고 와서 보여 달라고 요구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자신에게도 추천장을 요구하는 고린도 교인들이 한심하였을 것입니다. 내가 누구냐?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자가 아니냐? 내가 고린도 교회를 세우고, 일년 반 동안 목회를 하지 않았느냐? 나는 너희의 영적인 아버지다. 추천장이란 모르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지, 나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너희가 나에게 추천장을 받아 오라는 것이 말이 되냐? 그래 좋다. 추천장을 보여 주겠다. 너희가 바로 나의 추천장이다.

2절에 보면,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고 하였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Paul stated that he did not need any letters. The changed lives of the believers to whom he and his companions had preached were recommendation enough. Paul claimed that the changed lives of the Corinthian believers were a letter written in our heart. Some ancient manuscripts read “your hearts” instead; therefore, some have interpreted this verse as saying that the Corinthians’ own hearts testified to Paul’s apostolic authority. (LABC).

이어지는 3절에 보면, “너희는 우리가 사역한 결과로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성령님이 마음에 쓰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편지를 기록한 저자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라고 말씀합니다. 흔히 필체는 그 사람의 성품을 보여 준다고 합니다. Graphology는 필적을 통하여 사람의 성격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합니다. 글씨체를 보면, 그 사람이 외향적인 사람인가 혹은 내성적인 사람인가, 이기적인 사람인가 혹은 협조적인 사람인가, 등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성령님이 쓰신 그리스도의 편지는 누구의 성품을 보여 줄까요? 예수님의 성품, 성령의 열매들을 보여 줄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을 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형상을 보여주는 그리스도의 편지입니까? 사람들이 우리를 볼 때에,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를 분명히 볼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인내와 관용을 볼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연민과 동정을 볼 수 있습니까? 여러분의 가장 가까운 가족과 이웃들과 교우들에게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성품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우리는 복음을 받은 사람들로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저 사람이 믿는 예수라면 나도 믿고 싶다는 말을 듣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편지로서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까?

Sir George Burns, founder of the Cunard Steamship Company, was a living epistle. Biographer Edwin Hodder had this to say about him: "If the Bible were blotted out of existence...[and] if there were no visible church at all, I could not fail to believe in the doctrines of Christianity while the living epistle of Sir George Burns' life remained in my memory." No higher compliment could be paid to anyone. May we too be living letters that recommend the Lord Jesus to others. (Dennis Davidson)

영어 성경들은 그리스도의 편지를 a letter from Christ 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주님이 보내신 편지라는 것입니다.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어떤 미국 사람이 프랑스에 관광을 갔다가 파리에 있는 어느 골동품 가게에 들렀습니다.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진열장에 전시되어 있는 진주 목걸이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오래되고 낡은 것이라서 이미 색깔은 다 바랬지만, 진주 목걸이에 장식되어 있는 장식품이 그의 눈길을 끌었습니다그래서 얼마냐고 물어보았더니 500달러를 내라고 했습니다. 그는 좀 비싼 듯 했지만 장식품이 마음에 들어서 그것을 샀습니다. 그는 그것을 가지고 미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한동안 자기의 보석 상자에 넣어 놓고 그대로 방치해 두었습니다

그러다 한 번은 급히 돈이 필요해서 프랑스에서 샀던 그 진주 목걸이를 팔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래된 것이라서 과연 얼마나 값을 쳐줄지 궁금한 마음으로 집 근처에 있는 보석 가게에 목걸이를 가지고 갔습니다. 보석 가게 주인은 그 진주 목걸이를 손위에 올려놓고 두꺼운 돋보기를 가지고 한참동안 감정을 하더니 상기된 표정으로 “제가 2만 달러를 주겠습니다. 제게 파십시오.”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500달러를 주고 샀는데 2만 달러를 주겠다니 놀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정신을 좀 가다듬기 위해서 일단 그것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다음날 그는 그것을 가지고 꽤 알려진 골동품 가게를 찾아갔습니다. 그 골동품 가게의 주인도 한참동안 감정을 하더니 옆에 있던 몇 사람을 불러 자기들끼리 회의를 한 후에 “5만 달러를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이 진주 목걸이를 제게 파십시오.”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더 놀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솔직하게 골동품 가게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색깔이 다 바랜 진주 목걸이인데 왜 그렇게 값이 많이 나갑니까?” 그러자 골동품 가게 주인은 의외라는 듯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 아직도 모르고 계셨습니까?” 그러면서 가지고 있던 돋보기를 진주 목걸이에 들이대면서 자세히 쳐다보라는 것입니다.

자세히 보니 거기에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조세핀에게. 황제 나폴레옹으로부터.” 그리고 오른편에는 나폴레옹 황제의 친필사인이 들어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가게 주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진주 목걸이의 자체만으로는 값이 얼마 나가지 않습니다그러나 여기에 적혀 있는 글씨와 나폴레옹의 친필 사인(sign) 때문에 그렇게 값이 많이 나가는 것입니다.” 목걸이 자체가 귀한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위대한 영웅 나폴레옹의 사인이 있기에 값비싼 목걸이가 된 것입니다우리도 예수님이 보낸 그리스도의 편지가 된다면, 보화를 질그릇에 담은 귀한 존재가 될 것입니다.

3절 마지막 부분에 보면, 성령님이 육의 심비에 기록하셨다고 했는데, 육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sark, 인간의 살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영어 성경들은 육의 심비를 human hearts 라고 번역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돌비석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 기록한다는 표현은 모세의 십계명 옛 언약과 예수님의 십자가 새 언약을 대조하는 표현인데, 예레미야서 3133절에 나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새언약에서는 하나님이 당신의 법을 인간의 생각에 두고 인간의 마음에 기록하시겠다고 말씀합니다. 옛 언약에서는 하나님의 법을 돌판에 새기고 책에 기록하였습니다. 그러한 율법은 타율적인 것이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 복과 생명을 누리고, 율법을 어기면 저주와 사망이 임하기 때문에 지켜야만 하는 대상이었습니다. 율법은 부담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억지로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새언약에서는 당신의 법을 우리 마음에 기록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옛 언약에서는 하나님의 법이 외부에서 우리에게 부담을 주는 대상이었습니다. 역사하는 방향이outside in 이었습니다. 그러나 새언약에서는 하나님의 법이 우리 마음에 있기 때문에, 그 역사하는 방향이 inside out이 된다는 것입니다. 억지로 할 수 없이 지키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와서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법을 지키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 같은 자를 위하여 주님이 십자가에서 속죄의 피를 흘리시고 목숨까지 내어 주셨으니,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내가 주님의 뜻을 행하겠습니다, 무엇이든지 시켜 주십시오, 라고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충성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예레미야 31장 외에도 새언약을 예언한 것으로 에스겔서 36장이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하나님은 우상숭배와 온갖 불의로 범죄한 이스라엘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들을 그 행위대로 심판하여 각국에 흩으며 열방에 헤쳤다”고 말씀합니다. 그들은 그 들어간 열국 사람들로부터 여호와의 땅에서 좇겨난 여호와의 백성이라는 조소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을 고토로, 곧 조상들에게 준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면서 말씀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여기서 죄와 심판으로부터 회복시켜 주시는 구원에 대하여 삼단계로 말씀하십니다. 첫째로는 모든 죄악으로부터 정결케 해 주시겠다고 말씀합니다: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정결케 할 것이며.” 두번째로 새 마음을 주시겠다고 말씀합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세번째로 성령의 능력을 주시겠다고 말씀합니다: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찌라.” 이렇게 함으로써, 언약의 관계가 회복된다고 말씀합니다: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이 에스겔서 36장 말씀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예수님의 십자가 피로써 인치신 새언약은 새마음을 주십니다. 하나님을 상실한 마음은 전적으로 부패하였기 때문에, 여기저기 조금씩 손을 보아서는 고칠 수가 없습니다. 기초로부터 지붕까지 철저하게 썩어 들어간 집은, 페인트 칠을 다시하고 장식을 더한다고 고쳐지지 않습니다. 완전히 헐고 다시 지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전적으로 부패한 인간의 굳은 마음을 제하여 내고, 부드러운 새 마음을 새로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상실하고 돌같이 굳어진 마음, 온갖 악한 일을 도모하는 마음, 하나님을 거역하는 마음을 제하여 내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새로운 마음을 심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중보가 되신 새언약은 성령께서 내주하셔서,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를 지키도록 해 주십니다. 전에는 죄를 지을 능력 밖에 없던 사람이 하나님의 신이 마음 속에 내주하심으로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거룩한 삶을 사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상실했던 마음에 하나님이 다시 찾아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회복한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 백성으로서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이 말씀하는 바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에 역사하셔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를 받을 때에, 우리는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추천하는 전도지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을 드러내는 향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변화를 받아, 그리스도의 살아 있는 편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