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 (고후 4:1-6)

The Light of the Knowledge of the Glory of God in the Face of Christ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이 직분이란 무엇입니까? 3장에서 말씀한 새 언약의 일꾼의 직분을 가리킵니다 (3:6). 옛 언약 (율법)의 직분도 영광스럽지만 (3:7), 성령의 직분은 더욱 영광스럽다고 하였습니다 (3:8). 옛 언약의 직분은 정죄의 직분인데 반하여, 새 언약의 직분은 그리스도의 의를 주는 의의 직분이기 때문입니다 (3:9).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아 내려 온 모세의 얼굴에 나타났던 하나님의 영광은 서서히 사라지는 영광이었지만,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은 길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3:11, 4:6).

        바울은 그러한 새 언약의 직분을 긍휼하심으로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NIV: through God’s mercy we have this ministry). 바울은 디모데전서 112절에서도 직분을 맡기신 주님께 감사한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직분을 주신 것은 은혜입니다. 우리가 잘 나서가 아니라, 자비하심과 긍휼하심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깨달은 사람은 minimum만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물론 미니멈도 안 하는 직분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직분을 주신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만 가지 은혜를 받았으니, 나 무엇 주님께 바치리까라는 자세로 새언약의 일꾼의 직분을 감당한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깨달음은 직분자로 하여금 quitter (포기하는 자), deceiver (속이는 자), self-promoter (자신을 선전하는 자)가 되지 않도록 지켜 준다고 바울은 말씀합니다 (Warren Wiersbe).

        먼저 1절에 보면,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직분을 받은 것을 아는 사람은 낙심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직분을 포기하는 사람이 (quitter)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 직분을 감당하면서, 살 소망까지 끊어질 정도로 고난이 많았습니다 (1:8). 옥에 여러 번 갇히고, 매도 수없이 맞았습니다 (11:23). 그럼에도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선포하였습니다 (8:37).

        A discouraged Methodist preacher wrote to the great Scottish preacher Alexander Whyte to ask his counsel. Should he leave the ministry? “Never think of giving up preaching!” Whyte wrote to him. “The angels around the throne envy your great work!” That was the kind of reply Paul would have written, the kind of reply all of us need to ponder whenever we feel our work is in vain. (Wiersbe).   

다음으로 2절에 보면, “숨은 부끄러운 일을 버리고, 궤휼 (간교/교활)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한다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부르신 직분자는 속이는 자가 (deceiver)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당시 이방인 교회들을 어지럽히던 거짓 교사들, 유대주의자들을 (Judaizers)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구약에 할례를 받으라고 하였으므로, 예수를 믿는 자들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단들도 그처럼 성경을 가지고 말하기 때문에, 신학적인 기초가 없는 사람은 넘어가기 쉽습니다.  

바울은 이미 217절에서도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 다른 사람들처럼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도 다른 사람들이란 유대주의자들, 거짓 교사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한다는 구절을 영어 성경들로 보면, peddle한다고 번역하였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장사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듣기 좋은 쪽으로 말해서, 인기를 끌고, 개인의 영달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5절에 보면, 바울은 그들처럼 자신을 선전하는 자가 (self-promoter)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되신 것을 전파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fan club을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심을 전파하였습니다. 세례 요한도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말했습니다 (3:30).

인도 선교의 선구자 William Carey 가 임종하면서 곁에 있던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죽으면 윌리암 케리에 대해서 말하지 말고, 윌리암 케리를 구원하여 주신 분에 대해서 말해주게. 나는 오직 그리스도만이 존귀케 되기를 바라네.” 우리도 작은 일에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충성할 때에, 세상은 우리를 작다고 여길지 모르나, 하나님은 귀히 보시고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칭찬하실 것입니다. 세례 요한처럼 주님을 높여 드리기 위하여 자신은 철저히 쇠하기를 소원하는 참된 주의 종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바울이 그처럼 진실한 자세로 복음을 전했는데, 왜 동족 유대인들과 많은 이방인들이 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이지 않았는가? 그 점을 바울은 3절과 4절에서 말씀합니다: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에게 가리운 것이라.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blinded),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여기서 이 세상의 신이란 사탄을 가리킵니다. 사탄이 불신자의 마음에 불신의 수건을 (veil) 덮어서 복음의 광채를 보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The mind of the lost sinner is blinded by Satan. Satan does not want the glorious light to shine into their hearts. Satan keeps lost sinners in the dark. 아무리 밝은 햇빛이 비추어도 소경은 눈이 가리워서 못 보는 것과 마찬 가지입니다. 사탄은 죄의 수건으로 불신자의 마음을 덮을 때가 많습니다.

H. A. Ironside 목사님은 Isaac Newton의 일화를 소개합니다. Someone said to Isaac Newton, “Sir Isaac, I do not understand; you seem to be able to believe the Bible like a little child. I have tried, but I cannot. So many of its statements mean nothing to me. I cannot believe; I cannot understand.”

Sir Isaac Newton replied, “Sometimes I come into my study and in my absent mindedness I attempt to light my candle when the extinguisher is over it, and I fumble about trying to light it and cannot; but when I remove the extinguisher then I am able to light the candle. I am afraid the extinguisher in your case is the love of your sins; it is deliberate unbelief that is in you. Turn to God in repentance; be prepared to let the Spirit of God reveal His truth to you, and it will be His joy to show the glory of the grace of God shining in the face of Jesus Christ.”

6절에 보면, 믿는 우리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 우리 마음에 비취셨다고 말씀합니다. NIV 성경이나 NLT 성경으로 보면, 빛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그 하나님의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어 주셨다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빛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알게 하는 빛이라고 말씀합니다. 그처럼 6절은 천지 창조 첫 날에 만드신 빛과 우리 마음에 비추어 주신 하나님의 빛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어두움 가운데 빛이 비취라고 명하셨던 하나님이 죄와 무지로 어두웠던 우리의 마음에 빛을 비추어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빛이 비추이기 이전의 인간의 마음은 어두운 마음이었습니다. 죄로 물든 마음이었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을 모르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창조 첫 날에 있으라고 명하신 하나님의 빛을 죄인의 어두운 마음에 비추어 주실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빛은 예수님 이전에 구약에도 나타났었습니다. 역대하 7장에 보면,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하고 기도를 마쳤을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여 제사장들이 들어가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하나님과 대면하고 십계명을 받아서 온 모세의 얼굴에 하나님의 영광이 빛나서 사람들이 쳐다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하나님의 빛이 예수님의 얼굴에 있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나타나신 분이셨습니다. 빌립보서 2 6절에 보면,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의 본체시라고 말씀합니다. 히브리서 1 3절은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14:9). 같은 의미로, 골로새서 1 15절은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씀하고, 오늘 본문 4절도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계시록 1장에 보면,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예수님을 보았는데, 예수님의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취는 것 같았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개종하기 이전에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 오기 위해서 예루살렘에서 다메섹으로 살기가 등등해서 가는 도중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사울이 본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 나를 핍박하느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사울이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에, 그가 본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빛이었습니다. 눈을 뜰 수 없는 광채였습니다. 사울은 해보다 더 밝은 빛 앞에 꼬꾸라졌습니다.

미국의 테네시 주의 Maurice Rawlings라는 심장 닥터가 죽었다가 살아난 환자들의 경험을 모아서 <Beyond the Deaths Door 죽음의 문 너머>라는 책을 출간하였습니다. 그 의사가 인터뷰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한 것은 죽은 다음에 빛나는 존재 앞으로 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성경은 사람이 죽은 후에 어떻게 된다고 말씀합니까? 장로교에서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교리의 표준으로 삼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32장에 보면, 사후의 상태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해서 이렇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육체는 사후에 흙으로 돌아가 썩게 되나, 영혼은 불멸의 본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결코 죽거나 잠들지 않고,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즉시 돌아간다. 의인의 영혼은 죽는 순간에 거룩함으로 완전케 되어 지극히 높은 천국에 들어가 거기서 빛과 영광 가운데 하나님의 얼굴을 뵈오며 몸의 완전한 구속을 기다린다. 그러나 사악한 자의 영혼은 지옥에 던지어져 거기서 고통과  칡흑같은 어두움 가운데 지내며 마지막 날의 심판을 기다리게 되어 있는 것이다. 성경은 육신이 죽은 후에 영혼이 갈 곳으로 이 두 장소 (지옥과 천국) 외에는 아무 곳도 인정하지 않는다.

성경에 보면, 지옥은 어둠이 가득한 곳입니다. 마태복음 25 30절에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반면에 천국은 빛이 가득한 곳입니다. 계시록 21 23절에 보면,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고 했습니다. 계시록 22 5절에도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고 했습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빛이 비취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변화산에 올라 가셔서 주님의 빛난 영광을 보여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너무나 황홀하여서 여기에 초막을 짓고 살자고 하였습니다. 우리도 천국에 올라가면 이 세상에 다시 돌아오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곧 산에서 내려와서 귀신들린 자와 씨름하게 됩니다. 변화산 상의 영광이 영화로운 천국의 모습이라면, 귀신들린 자와 씨름하는 제자들의 모습은 이 세상에서 영적인 전쟁을 치루는 현실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힘겨운 사역을 감당해야 하는 제자들에게 천국의 빛나는 영광을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낙담하고 절망하지 않도록 최후의 승리와 영광을 미리 보여 주셨습니다. 여러 분도 장차 유업으로 받을 천국의 영광을 바라보는 가운데, 슬픔과 고난이 많은 이 세상을 이기며, 부끄러움이 없는 깨끗한 삶, 의로운 삶을 이루어 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