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건축자 (고전 3:10-23)

       

오늘 본문 바로 앞의 9절에 보면,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9절 앞에서는 고린도 교회를 밭으로 비유했습니다. 바울은 심은 자요, 아볼로는 물을 준 자이나, 자라게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나는 바울에게 속하였다, 혹은 나는 아볼로에게 속하였다고 파당을 지어 다투는 것이 얼마나 어린 아이 같은 행동인가, 라고 말씀했습니다.


오늘 본문 10절부터는 고린도 교회를 집으로 비유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집의 터를 닦는 자로 비유하고, 아볼로와 같은 후임 목회자들을 그 터 위에 집을 세우는 자로 비유합니다. 바울 자신이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기초를 잘 놓았으니, 후임 사역자들도 좋은 재료로 집을 지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12절에 보면, 좋은 재료 세 가지와 나쁜 재료 세 가지가 나옵니다. 금이나 은이나 보석 같이 좋은 재료로 집을 지으면, 주님이 오셔서 불로 심판하실 때에, 그 세운 공력 (work)이 그대로 있을 것이므로, 건축자가 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반대로, 나무나 풀이나 짚같이 허접한 재료로 집을 지으면, 불 시험 가운데 다 불에 타버리고 날라가 버릴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지혜롭지 못한 건축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워진 교회를 위해 일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끄러운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Warren Wiersbe 목사님과 Life Application Bible Commentary는 좋은 재료와 나쁜 재료를 바울이 지금까지 계속 대조한 하나님의 지혜와 세상의 지혜로 봅니다 (고전 1:17-2:16). Paul was dividing the materials into two basic classes – the valuable building materials, which were imperishable, and the worthless building materials, which probably symbolize worldly wisdom. Paul was particularly speaking to church leaders or ministers who were responsible to build their churches with the truth of Christ as opposed to teachings based on the values and desires of the world. (LABC).


You cannot manage a local church the same way you run a business. The operation is totally different. There is a wisdom that works for the world, but it will not work for the church. The world depends on promotion, prestige, and the influence of money and important people. The church depends on prayer, the power of the Spirit, humility, sacrifice, and service. The church that imitates the world may seem to succeed in time, but it will turn to ashes in eternity. (Wiersbe)


God has a specific plan for each local church. Each pastor and church leader must seek the mind of God for His wisdom. First Corinthians 3:19 warns that man’s wisdom will only trap him (a quotation from Job 5:13); and 1 Corinthians 3:20 warns that man’s wisdom only leads to vanity and futility (a quotation from Ps. 94:11). Though the church must be identified with the needs of the world, it must not imitate the wisdom of the world. (Wiersbe).   


이어서 16절과 17절은 고린도 교회를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비유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구약의 성전은 오늘날 교회당 혹은 예배당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한국 교회에서는 예배당을 건축할 때에, 성전 건축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예배당을 성전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예배당은 성전이 아닙니다. 예배당을 성전이라고 부르는 것은 성경적으로 틀린 말입니다. 신약 성경은 교회당이 아니라, 교회를 성전에 비유합니다. 교회 건물이 성전이 아니라, 교회가 성전인 것입니다. 교회는 신약 성경에 헬라어로 ecclesia인데, 부름 받은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성도들의 공동체입니다. 신약에서 교회를 구약의 성전에 비유하는데, 성전으로서의 교회란, 성도들이 모여서 세우는 영적인 성전, 눈에 안 보이는 spiritual house인 것입니다. 신약이 교회에 비유하는 성전은 우리 눈에 보이는 교회 건물이 아닙니다.


에베소서 2 21절로 22절은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으로 지어져 간다고 말씀합니다. 진행형입니다. 교회는 지금 하나님의 성전으로 지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를 섬기고, 교회를 위하여 드리고, 교회에 헌신하는 그 모든 것이 바로 성전을 세우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구약의 성전은 교회의 모형이었습니다. 눈에 안 보이는 영적인 실체를 보여주는 가시적인 모형이었습니다. 구약의 성전은 참 형상의 그림자였습니다. 영적인 실체를 예시한 물질적인 모형이었습니다. 그 실체란 다름 아닌 신약의 교회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실제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 19절에서,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던 유대인들이 질문하였습니다. “이 성전은 (헤롯이) 46년동안 지었는데, 네가 어떻게 3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요한은 예수님이 성전 된 자신의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해설해 줍니다. 곧 삼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옛 성전과 그 모든 제사 제도는 그 의미를 상실하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탄생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 물질적인 성전은, 신약 시대에 교회로서 그 영적인 실체를 드러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7절에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고 말씀합니다. 구약에서도 제의법상 부정한 몸으로 성전에 들어감으로 성전을 더럽히는 자는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15:31, 19:20). 하나님의 영적인 성전인 교회를 더럽히는 자도 하나님이 멸하신다고 (destroy) 말씀합니다. 그러면 당시 고린도 교회를 더럽히던 자란 누구인가? William BarclayLABCfalse teachingdissension으로 봅니다.


당시 대표적이 거짓 교사들이 가르치던 유대주의는 고린도 교회 뿐만 아니라, 헬라 전역의 교회에 깊숙이 침투한 이단이었습니다. 갈라디아서 1 9절에서 바울은 다른 복음을 가르치는 유대주의자들을 향하여 저주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저주를 받을지어다” (Let him be eternally condemned). 왜 바울은 그런 지독한 저주를 퍼부었을까요?


첫째는, 거짓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헛되게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대주의자들은 (Judizers)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를 믿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고, 할례를 비롯한 제의적인 율법들도 (ceremonial laws)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기 때문에, 주님의 십자가를 욕되게 하였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2 21절에서도 말씀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유대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고, 그리스도의 죽음을 헛된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저주를 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둘째로, 그들은 많은 사람의 영혼을 파멸로 이끌었습니다. “복음은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였습니다 ( 1:16). 그러므로 은혜의 복음을 변질시키는 행위는 하나님이 주님의 십자가로 열어 놓으신 구원의 길을 막고, 많은 사람을 멸망의 구렁텅이로 집어 넣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저주를 받아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바다에 던지움이 나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9:42).


다음으로 교회를 분쟁케 하고 분열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If men introduces dissension and division into the fellowship of the Church, they destroy the temple of God in a double sense. They make it impossible for the Spirit to operate. Immediately bitterness enters a church, love goes from it. The very badge of the Church is love for the brethren. He who destroys that love destroys the Church and thereby destroy the temple of God. They split up the Church. The Church’s greatest weakness is still its divisions. (Barclay).


테네시 주의 어느 작은 마을에 ‘왼발 침례교회’ (Left Foot Baptist Church) 라는 교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곁을 지나다니던 어떤 학생이 볼 때마다 우습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했습니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마침 그 동네 사람 하나가 함께 기다리게 되어서, 그 이상한 교회 이름의 사연을 물어보게 되었습니다. 과연 이상한 이름에는 사연이 있었습니다. 수 년 전에 그 마을 교회에서 세족식 순서를 놓고 논쟁이 붙었고, 그 결과 교회가 분열되었다는 것입니다. 곧 어느 쪽 발을 먼저 씻어야 하는가, 하는 논쟁을 벌이다가 급기야 갈라지게 된 것입니다.


왼 발을 먼저 씻어야 한다는 교인들이 갈라 나와서 나름대로 자기 정체성을 보존하기 위해서 ‘왼발 침례교회” 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것입니다. 세족식에서 왼 발이 먼저냐 오른 발이 먼저냐를 가지고 논쟁을 하는 것도 우스꽝스럽지만, 그 문제로 갈라진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신령한 집으로 지어져야 할 신자들이 그렇게 분열된다면 유감스럽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특히 공중 권세 잡은 자의 영토에서 영적인 전쟁을 하는 마당에, 이런 분열은 서로 아군끼리 싸우는 꼴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로드 아일랜드에도 지난 25년 동안 교회의 분열이 세 번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 교회가 네 교회가 되었습니다. 두 번의 분열은 담임 목사를 반대하는 사람들과 담임 목사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갈라진 것입니다. 한 번의 분열은 특정 청빙 후보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싫어하는 사람들이 갈라진 것입니다. 세 번 모두 목사 편과 반대 편으로 싸우다가 갈라진 것입니다. 10 2030년 지나 놓고 생각해 보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들이었습니까? 여러분은 부디 성전을 세우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옳다고 고집을 피우면서 성전을 파괴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죄를 범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베드로전서 2 5절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신령한 집 (성전)에서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라고 말씀합니다. 구약 시대에는 제사장을 통하지 않고는 개인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의 중보자였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는 예수님이 대제사장으로 오셔서 그 모든 구약의 제사장 제도를 완성하셨다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제는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제사장의 중계 없이 직접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에,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지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 27:51). 히브리서 10 20절은 그 찢어진 휘장이 십자가에서 찢기신 예수님의 육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육체가 찢겨질 때에,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으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새롭고 산 길이 열린 것입니다.


히브리서 4 16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받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대제사장만 일년에 한 번 접근할 수 있었던 은혜의 보좌 (시은좌)에 이제는 예수의 피를 가진 사람은 누구나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 제사장의 특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위대한 특권을 모든 크리스챤이 다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베드로전서 2 5절은 성도들을 거룩한 제사장이라 하였고, 이어지는 9절은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종교 개혁자들은 카톨릭의 사제 제도를 폐지하고, 성경대로 만인 사제설을 주장하였던 것입니다.


로마서 1516절에서 바울은 자신을 복음의 제사장이라고 부릅니다. “나로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 직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방인 개종자를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로 말씀합니다.


베드로전서 2 9절 말씀에도 보면, 어두움에서 빛으로 불러내신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케 하는 것이,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소유된 백성의 의무라고 말씀합니다. 제사장들이 받은 특명은, 하나님의 덕을 선전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3 15절에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라고 말씀합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디모데후서 4장에서 자신의 마지막 순교를 바라보면서 이같이 말씀합니다. “관제와 같이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관제라는 것은 제단 위에 올려진 제물에 마지막으로 붓는 포도주였습니다. 희생 제사의 마지막 순서였습니다. 마지막까지 순교의 제단에 자신을 바칠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 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네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사도 바울과 같이, 자신을 마지막까지 다 부어드리는 귀한 헌신이 거룩한 제사장 된 여러분의 삶 속에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하나님의 성전된 교회를 세우는 귀한 일꾼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끝까지 헌신한 자들에게는 의의 면류관, 썩지 아니하는 면류관을 주님이 주신다고 하셨는데, 여러분은 계시록 4 10절에 나오는 24 장로들과 같이, 그 면류관조차도 다시 다시 보좌 앞에 바치며 헌신하는 귀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