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의 훈계 (고전 4:14-21)

        오늘 본문은 분파와 분쟁을 일삼고 있던 고린도 교인들에 대한 준엄한 경고입니다. 14절에 보면,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같이 권한다고 말씀하는데, 여기 권하다는 헬라어로 noutheteo이고, 영어 성경은 warn 혹은 admonish로 번역하였습니다.

바울이 왜 고린도 교인들에게 경고를 했어야 합니까? 18절 이하에 보면, 고린도 교인들이 매우 교만해 졌다고 말씀합니다. 지난 주에 상고한 6절에도 보면, 그들이 서로 대적하고 교만하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7절에서 세 가지 통렬한 질책을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19절에서도 바울은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의 말을 알아 볼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그들의 경건이 능력을 알아보겠다고 경고합니다. 그리고 21절에서는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고 경고합니다.  

그런데 16절에 가면, 바울이 조금 부드러운 단어를 사용합니다. 우리 성경에는 똑같이 권하다로 되어 있지만, 헬라어로는 parakaleo입니다. 성령님을 보혜사라고 할 때에, 그 보혜사가 헬라어로 parakleitos 입니다. 상담자, 위로자, 도우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16절의 권하다는 영어 성경에 보면, exhort, urge, beseech로 번역하였습니다. 아비의 간절한 마음으로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바로 앞 15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다고 말씀합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세우고, 고린도 교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였기 때문에, 바울은 자신이 그들의 영적인 아버지라고 자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는 바울의 명령은 아비의 간곡한 훈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무엇을 본 받으라는 것인가? 4장의 문맥에서는 겸손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의 교만과 대비되는 바울의 겸손입니다. 바울은 4절로 13절까지, 바울 자신과 그 일행이 얼마나 비천한 처지에 낮아졌는지를 말씀합니다.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모욕을 당하고 핍박을 당하고 비방을 당하여,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너희는 베부르고 부요하여 왕노릇하며 교만한 마음으로 분쟁을 일삼고 있으니, 얼마나 통탄할 일인가? 나를 보고 겸손을 본받으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17절에 보면,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너희에게 생각나게 할 것이다라고 말씀합니다. 디모데가 가서 다시 바울이 가르쳤던 것들, 그리고 그의 행사를 상기시킬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행사는 헬라어로 hodos, 영어로 way 라는 뜻입니다. NIV 성경은 my way of life in Christ Jesus 라고 번역하였습니다. 한마디로, 너희는 아비된 나의 삶을 본받으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바울이 나를 본받으라는 말씀은 좀 지나치지 않은가, 그렇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1 1절에서 비슷한 말씀을 하는데, 거기에 보면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말씀합니다. 헬라어 문장 구조를 따르는 영어 성경에 보면, follow my example이 먼저 나오고, 그 뒤에 as I follow the example of Christ가 나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모범을 눈으로 보지 못하고, 성경을 통하여 읽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같이 예수님의 모습을 실제로 보여주는 모델이 있으면, 주님의 형상을 본받는 일에 큰 도움을 얻게 됩니다. 일례로, 체조를 배운다고 합시다. 체조의 각 동작에 대해서 말로 자세히 설명해 주는 것보다, 숙련된 조교가 나와서 한 번 보여주는 것이 훨씬 빠릅니다. 그래서 ‘백문이 불여일견’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3 17절에서,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우리를 본 받아 사는 사람들을 유심히 보라, 눈 여겨 보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자기만 본받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본받아 사는 사람들을 주목하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우리란 누구일까요? 아마도 디모데나 에바브로디도 같은 사람들을 가리킬 것입니다. 결국 우리들이란 바울처럼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는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15절과 16절은 Father’s Day 설교 본문으로 많이 사용됩니다. 아비들아, 자녀들이 본받을 수 있는 아비가 되라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 청년부 목적이 이끄는 성경공부 시간에 어떤 청년이 자기는 아버지를 영적으로 본받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 아버지는 참 훌륭한 아버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과거에 교회를 묵묵히 섬기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알고 보면, 개중에는 목회자 자녀들도 있지만, 장로님 권사님 자녀들도 있습니다. 부모님들이 교회를 잘 섬기는 모습을 본받은 분들입니다.

사실 자녀들에게 나를 본받으라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말 안해도 닮기 때문입니다. 좋은 것도 닮고 나쁜 것도 닮습니다. 아버지가 난폭하고 알코올 중독자이면, 자녀들도 그렇게 될 확률이 그렇지 않은 가정에서 자란 경우보다 더 높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말은 안 듣지만, 부모를 그대로 따라하는 일은 시키지 않아도 잘 한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2장에 보면, 아브라함은 애굽에서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고 다니다가 봉변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거짓말을 한 이유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아내를 탐내어 취하기 위하여, 자기를 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보다도, 눈에 보이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였던 것입니다.

애굽 왕 바로가 사라를 취하여 갔었습니다. 바로는 아브라함을 사라의 오라비로 대우해서 많은 하사품까지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을 때에, 하나님이 초자연적으로 개입하셔서 사라를 구출해 주셨으나, 아브라함은 애굽 왕 바로에게 봉변과 망신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20장에 가면, 아브라함이 똑같은 거짓말을 되풀이 하고 있습니다. 시간과 장소만 바뀌었습니다. 애굽 왕 바로 대신 그랄 왕 아비멜렉입니다. 20여년이 지난 후에 아브라함은 과거의 부끄러운 행동을 다시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아버지와 똑같은 거짓말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26장에 보면 이삭이 그랄에 등장합니다. 그리고 7절에 “그곳 사람들이 그 아내를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나의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곳 백성들이 리브가로 인하여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나의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부끄러운 행동을 똑같이 판박이로 반복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보고 부전자전이라고 하지요. 죄에는 유전성이 있습니다. 조상의 안좋은 점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자녀들이 이어받는 것입니다.

Cat’s in the Craddle 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1974billboard chart 1위에 오른 적이 있고, 1975년 통산 38위를 기록한 곡입니다. 그런데 저명한 기독교 가정 상담학자인 James Dobson은 이 노래가 ‘one of the most poignant songs ever written about parenting’ 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래서 미국 목사님들의 설교에도 자주 인용되는 가사입니다.


Cat’s in the Craddle


My child arrived just the other day
He came to the world in the usual way
But there were planes to catch, and bills to pay
He learned to walk while I was away
And he was talking 'fore I knew it, and as he grew
He'd say, I'm gonna be like you, dad
You know I'm gonna be like you

And the cat's in the cradle and the silver spoon
Little boy blue and the man in the moon
When you coming home, dad?
I don't know when
But we'll get together then
You know we'll have a good time then

My son turned ten just the other day
He said, thanks for the ball, dad, come on let's play
Can you teach me to throw, I said, not today
I got a lot to do, he said, that's okay
And he walked away, but his smile never dimmed
Said, I'm gonna be like him, yeah
You know I'm gonna be like him

And the cat's in the cradle and the silver spoon
Little boy blue and the man in the moon
When you coming home, dad?
I don't know when
But we'll get together then
You know we'll have a good time then

Well, he came from college just the other day
So much like a man I just had to say
Son, I'm proud of you
Can you sit for a while?
He shook his head, and he said with a smile
What I'd really like, dad, is to borrow the car keys
See you later
Can I have them please?

And the cat's in the cradle and the silver spoon
Little boy blue and the man in the moon
When you coming home, dad?
I don't know when
But we'll get together then
You know we'll have a good time then

I've long since retired and my son's moved away
I called him up just the other day
I said, I'd like to see you if you don't mind
He said, I'd love to, dad, if I could find the time
You see, my new job's a hassle, and the kid's got the flu
But it's sure nice talking to you, dad
It's been sure nice talking to you
And as I hung up the phone, it occurred to me
He'd grown up just like me
My boy was just like me

And the cat's in the cradle and the silver spoon
Little boy blue and the man in the moon
When you coming home, dad?
I don't know when
But we'll get together then
You know we'll have a good time then

 

The song is told in the first-person by a father who is too busy with work to spend time with his son. Each time the son asks him to join in childhood activities, the father issues vague promises of spending time together in the future. While disappointed, the son accepts his excuses and yearns to "be like you, Dad." The first verse tells of his absence at his son's birth and walking, as "there were planes to catch and bills to pay"; the second verse relates the father buying the son a baseball as a birthday present but likewise declining to play catch.

The final two verses reverse the roles. In the third verse, the son returns home from college and his father finally has some time to spend with him. Instead, the son just wants to go out and asks the father for the car keys. The fourth verse advances the story quite some time, when the father is long retired and his son has started his own family some distance away. The father makes a phone call to his son and invites him for a visit, but the son has his own issues with his job and his children are sick with the flu. He tells his father he will visit him if he "can find the time" and says "it's been sure nice talking to you" before he says goodbye. The final two lines of the song reflect the father's observation of what has happened:

And as I hung up the phone it occurred to me, he'd grown up just like me.
My boy was just like me.

While most of the song is fairly literal, the first half of the song's chorus contains a number of phrases probably intended as metaphors. The phrase "Cat's in the Cradle" is probably a reference to the (scientifically unproven) belief that cats sneaking into the cradle would suffocate babies, causing sudden infant death syndrome;[6] so the cat being able to sneak into the cradle would be a sign of an inattentive parent. The silver spoon is a symbol of inherited wealth; the father is away earning money for his son, instead of being with his son. With the phrase "Little Boy Blue and the man on the moon", there is the literal meaning of the title of a nursery rhyme and a physical feature on the moon; but blue is also the color of sadness ("being blue"), with the boy being sad because he misses his father, and a "man on the moon" can symbolize an unreachable person (the boy's absentee father). (from Wikipedia)

 

 우리는 자녀에게 본이 되는 아버지가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본이 되어야 합니다. 전에 어떤 가정을 심방했는데, 남편이 아내에게 신앙의 본이 되기 위해서 기도하고 노력한다고 해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배우자 간에도 본이 되어야 합니다. 목사로서 교인들에게 본이 되어야 하고, 직분자들도 서로에게 그리고 교인들에게 본이 되어야 합니다. 나아가서 교회는 세상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다는 20절 말씀의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자녀들을 spoil 시키는 아버지가 아니라, 자녀를 훈육 (discipline)하는 아버지였습니다. Warren Wiersbe 목사님은 이렇게 강해하였습니다: Paul had been patient with their disobedience, but now he warned them that the time had come for discipline. A faithful parent must discipline his children. It is not enough to teach them and be an example before them; he must also punish them when they rebel and refuse to obey. This section prepared the way for the next two chapters that deal with discipline in the local church.

Discipline은 기독교 가정에 꼭 있어야 하는 것이고, 교회에도 꼭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discipline은 칼빈이 말한 참된 교회의 증표 세 가지 가운데 들어가 있습니다. 세례 문답집에도 보면, ‘참 교회의 증표가 무엇입니까?’ 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정답은 하나님 말씀의 전파, 올바른 성례의 집행, 그리고 권징의 충실한 시행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교회에는 말씀과 성례, 그리고 권징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세가지가 없으면, 참된 교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 교회는 권징을 잃어 버렸습니다. 권징의 뜻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세례 문답을 할 때에, 권징이 무슨 뜻인가요?, 하고 물어보는 청년도 있습니다. 그럴 때에 권징이란 영어로 discipline이다, 하면 곧 알아 듣습니다.

교회의 권징의 목적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바로 잡고, 교회의 순결을 유지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습니다. 권징의 종류에는 경고도 있고, 수찬 정지도 있습니다. 성찬을 받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하면 excommunication, 출교를 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권징이 이제는 교회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허울 좋은 사랑이라는 말만 남게 되었는데, 사실 사랑의 매라는 말과 같이, 사랑에는 징계가 포함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도 그 사랑하시는 자녀를 징계하십니다. 히브리서 12 5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 곧 아들과 같이 대우하시는 자는 징계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잘못을 했는데도 징계가 임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참아들이 아니요 사생자라는 것입니다. 나는 잘못을 해도 하나님이 징계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나에게 특별한 관용을 베푸신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라고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내가 버린 자식은 아닌가,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에 보면, 그냥 내버려 두는 형벌이 나옵니다. 24절은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으로 서로 욕되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26절도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다”고 말씀합니다. 내어 버린다는 것은 자식 취급을 안한다는 것입니다.

자식들이 머리가 커지면 부모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면서도 돈이 필요할 때는 연락을 하는 것처럼,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간섭을 부담스러워 하면서도 도움이 필요하면 기도합니다. 그러나 내가 좀 탈선할 때에는 조용히 눈감아 주시는 하나님을 바랍니다. 그러다가 징계를 받게 되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지 않는가 보다, 나를 버리셨는가 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실은 그 반대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버린 자식은 무슨 짓을 해도 상관치 않으시며 내어 버려 두신다는 것입니다.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은 저주이며, 징계는 오히려 축복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줄을 완전히 끊어 버리는 형벌, 유기의 형벌, 이것이 가장 무서운 형벌입니다. 징계는 아직도 하나님이 사랑의 줄로 나를 끌고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반대로 내가 하나님의 품을 떠나서, 죄의 사슬로 내 몸을 감고 있는데도, 하나님이 아무런 징계를 안주시면 버린 자식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사랑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이며,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수단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징계에 대해서도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사생자들에게는 아무리 죄를 지어도 징계를 내리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를 성화 시키시기 위하여, 나를 고치시기 위하여, 나를 아버지의 사랑으로 다루어 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고백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죽어 마땅한 죄인을 심판하지 않으시고 용서하시며, discipline을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닮아가게 하시니 무한 감사드립니다, 라고 믿음으로 고백하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