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결한 교회 (고전 5:1-13)

       

교회의 분파들이 서로 대적하는 문제에 대해서 4장까지 말씀한 바울은 5장에서는 교회의 순결을 지키기 위한 권징에 대해 말씀합니다. 교회를 더럽히는 구체적인 죄를 지적하고, 구체적인 권징의 판결을 내립니다. 1절을 보면, 구체적인 죄란 음행이며, 더 구체적으로 근친 상간이었습니다. 곧 아비의 아내, stepmother와 음행을 (sexual immorality)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 일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1).


그러나 고린도 교회는 그러한 극악무도한 죄에 대해서 통한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2). 여기 통한히 여기다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penthein) 죽은 자에 대해서 슬퍼하는 것을 (mourn) 의미합니다. 그런 일이 교회에서 일어난 것에 대해서 애통해 하며, 교회의 순결을 회복하기 위하여 그런 일을 행한 자를 교회로부터 물리쳐야 할 터인데, 고린도 교회는 오히려 교만하여 (2) 자랑하였습니다 (6).


자랑하였다는 것은 자신들의 관용을 자랑하였다는 뜻입니다: Instead of mourning, the people at Corinth were puffed up. They were boasting of the fact that their church was so “open-minded” that even fornicators could be members in good standing! (Wiersbe). 고린도 교회는 죄와 타협하고 있었습니다. 악과 타협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죄를 허용함으로써 교회를 더럽히고 있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요, 성령의 전입니다. 그래서 세상과 구별되어야 하고, 죄에 물들어서는 안 되며, 정결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과 똑같을 때에, 혹은 세상보다 더 더러울 때에, 교회는 빛을 잃고 소금의 맛을 잃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육신이 되면, 성령은 떠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강력한 대처를 명하였습니다: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라’ (2);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라” (5);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7); “그런 자와는 사귀지도 말고, 함께 먹지도 말라” (11);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쫓으라” (13).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함께 모여서, 예수의 능력으로 그처럼 치리하라고 말씀합니다 (4).한마디로 출교 (excommunication)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5절은 excommunication사단에게 내어주는것으로 표현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곳이지만, 세상은 사탄이 왕노릇하는 곳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하였다 (요일 5:19); 이 세상 임금 ( 12:31, 16:11); “이방인들의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 26:18);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 1:18). 디모데전서 1 20절도 믿음을 버린 후메네오와 알렉산더를 사단에게 내어준 것은 저희로 징계를 받아 훼방하지 말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5절은 사단에게 내어 줌으로써 그 사람이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주님 오실 때에, 그 사람의 영혼이 구원을 받게 하는 것이 출교라는 권징의 (discipline) 목적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출교로써 그 사람의 육신을 멸한다는 구절은 난해 구절입니다.

        

먼저 문자적인 해석이 있습니다. 곧 육신을 병들게 하든지, 혹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죽여 버린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 30절에 보면, 성찬을 범하는 자들은 이미 약한 자, 병든 자, 잠자는 (죽은) 자가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욥기에도 보면, 하나님이 사단에게 욥의 몸을 질병으로 치도록 허락하십니다. 그런 맥락에서 그 사람의 몸을 사단의 손에 내어주라고 말씀했다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God could permit Satan to attack the offender’s body so that the sinning believer would repent and return to the Lord (Wiersbe). 

        

다음으로 바울이 sarx (flesh, 육체, 육신)이라는 단어를 쓸 때에는 ‘so that the sinful nature may be destroyed’ 라는 NIV 번역처럼 sinful nature를 가리키므로, 죄성의 파괴를 의미하였다고 보는 해석이 있습니다: Paul was saying that the exclusion from the fellowship would help the man to face his sinful, selfish nature (flesh), repent and return to the church. Paul wanted this sinner to experience the crucifixion of his sinful nature (Life Application Bible Commentary).

        

제 생각에는 Ironside 목사님의 해석, 곧 육체의 죄악된 행실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출교시킨다는 해석이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Somebody might say, “The way to help him is to keep him in the circle, let him sit down with you at the Communion table; do not be hard on him, try to win him back, throw your arms of love about him and sympathize with him.” But the unrepentant man will be more hardened in his iniquity, if you do that. Put him outside in Devil’s domain, let him know that he has forfeited all title to a place with the people of God – that he has been put back into the world where Satan rules.  

        

That is what he means when he says, “Deliver such an one onto Satan for the destruction of the flesh.” What has caused all this trouble? The activity of the flesh. Very well, put him out in that sphere where he will find out that “it is an evil and a bitter thing to forsake the Lord his God.” When he finds himself abhorred by men and women who love Christ, he may break before God. If, in spite of his sin, he has really been born again, he will break. If he has been a false professor, he will plunge deeper and deeper into evil things.

        

만약 그런 사람을 계속 포용한다면, 계속 형제 자매의 fellowship을 허용한다면, 그는 죄악된 행실에서 돌아서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교회는 순결을 잃고 죄악된 세상과 다를 것이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죄인을 쫓아내서 교회의 순결을 지키며, 그 사람도 회개하고 돌아오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1절은 성도의 교제를 하지 말아야 하는 대상으로 그러한 음행 외에 몇 가지를 더 듭니다. 교인 중에 이런 사람과는 사귀지 말라. 탐람하다는 것은 탐욕스럽다는 뜻입니다. 우상 숭배하는 사람, 그리고 후욕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중상하는 것입니다. 술 취하거나 토색한다는 것은 사기친다는 뜻입니다. 그런 사람들과는 사귀지도 말고, 함께 먹지도 말라고 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상종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물들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녀들에게도 좋은 친구 사귀라고 하지요? 술 담배 마약하는 친구와 가까이 하지 말라, 폭력 집단 (gang)에 가입하지 말라, 될 수 있으면 믿는 친구들과 사귀라고 말합니다. 누구와 친교권을 형성하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믿음 생활은 많이 달라집니다. 서로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6절은 누룩의 비유를 듭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한 두 사람 교회를 더럽히는 사람이 나타날 때에 바로 다스리지 못하면, 온 교회에 그 악영향이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을 제하여 버리라고 명하는 것입니다. 누룩은 암세포와 같습니다. 누룩이 퍼지면 걷잡을 수 없습니다. 퍼지기 전에 제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살리는 길입니다.

        

7절과 8절은 유월절과 무교절을 말씀합니다.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을 죽음의 천사가 넘어간 유월절에는 누룩이 없는 무교병을 먹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8절은 우리가 유월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짐실함의 무교병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고 말씀합니다. 유월절은 곧바로 칠일 간의 무교절로 이어졌습니다. 칠 일동안 누룩이 없는 떡을 먹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유월절 하루 전에, 집안의 모든 누룩을 제하여 버렸던 것입니다.

        

Vernon McGee 목사님은 이렇게 강해하였습니다: In the Old Testament, after the Feast of the Passover there followed immediately the Feast of Unleavened Bread. Paul says that Christ, the true Passover Lamb, has now been sacrificed for us. This should be followed by lives that are free from leaven. Instead, this Corinthian congregation was allowing leaven – that is, evil – to come right into their church. These were the very ones who were talking about the death of Christ and crucifixion of Christ, and yet they permitted leaven to enter into the church.


유월절은 어린 양의 피가 꼭 있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반면에 무교절은 누룩을 만드시 제거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어린 양의 피를 집에 바르는 일도 중요하였고, 동시에 집에서 누룩을 제거하는 일도 중요하였습니다. 오늘날 구원론의 용어를 빌리자면, 칭의도 중요하고 성화도 중요하였던 것입니다. 유월절은 곧바로 무교절로 이어졌습니다. 예수의 피로 의롭다 함을 입는 칭의는 곧바로 죄악된 삶을 청산하는 성화의 과정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한 집에 어린 양의 피와 누룩이 동시에 있어서는 안되었습니다. 주님의 피와 죄는 동거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가장들은 집안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져서 누룩을 제거하였습니다. 우리들도 자신을 늘 성찰하여야 합니다. 청산해야 할 것은 없는지, 하나님 대신 앉아있는 우상은 없는지, 얽매이지 쉬운 죄와 신앙 생활에 방해가 되는 무거운 짐은 없는지, 살펴야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16 6절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들의 누룩이란 그들의 교훈을 가리킨다고 마태복음 16 12절은 말씀합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진다는 말씀처럼 누룩은 영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잘못된 교훈의 악영향을 주의하라고 경고하신 것입니다. 바리새인의 누룩이란 그들의 외식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외식이란 위선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회칠한 무덤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겉은 흰색으로 깨끗하게 회를 발랐는데, 속은 더럽다는 것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경건의 능력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의롭게 여기는 자기 의와 형식적인 행위의 의로 교만하여지면, 바리새인의 누룩에 물드는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은 제사장 계층이면서도 매우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집전하는 제사장들이면서도 아이러니하게 내세와 부활과 초자연을 부인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날도 초자연적인 역사를 부인하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이나 자유주의적인 교단이 예식 (Ritual)에 집착하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초자연을 믿지 않으면서도 엄숙하고 장엄한 예식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현대판 사두개인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국과 부활을 믿지 못하고, 이성으로 이해가 안되면 아무 것도 믿지 못하겠다는 태도가 바로 사두개인의 누룩인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마가복음 8 15절에서 헤롯의 누룩도 조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헤롯의 누룩이란, 세상적인 부귀 영화와 권력을 추구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거듭났다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세속주의에 물들어서 여전히 헤롯의 누룩을 키우고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칠 일동안 누룩 없는 떡을 먹으라고 하신 것은 애굽의 모든 죄악된 삶과 풍습과 문화를 청산하라는 의미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룩의 비유에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천국의 누룩은 좋은 의미의 누룩입니다. 내가 가난한 심령으로 살면, 주변에 천국의 영향을 끼칩니다. 내가 죄에 대하여 애통하는 삶을 살면, 주변에 회개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내가 온유한 자가 되면, 주변의 교만하고 강퍅한 심령들이 깨어집니다. 내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될 때에, 내가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될 때에, 내가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될 때에, 내가 화평케 하는 자가 될 때에, 세상은 변합니다. 그런 사람이 바로 천국의 누룩입니다. 죄악된 세상을 변화시키는 그런 누룩을 통하여 천국은 이 땅에서 계속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누룩이십니까? 사람은 누구나 주변에 영향력을 끼칩니다. 여러분은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천국의 누룩이십니까, 아니면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이십니까? 부디 여러분은 가정과 교회와 학교와 직장에 천국의 영향력을 미치는 누룩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