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40일 특별 새벽 기도회 첫 날, 새벽 이슬 같은 청년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사회/기도/특송 순서를 담당하신 3목장께 감사드립니다. 

장년: 이경의, 함대옥, 우정희, 노난실, 송미경, 이기호, 김혜원, 김은지, 주원열 (9명)

청년: 김규리, 나예진, 신진실, 장유리, Sally, 김소명, 이윤호, 이하경, 정고은, 전재현, 하우석, 한민식, 최지원, 왕재원, 장경수, 최혜원, 서지원, 정노아, 정호웅, 김지윤, 최재우, 장영아 (2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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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세례 ( 1:1-11)  

오늘부터 상고하고자 하는 마가복음의 핵심 구절은 10 45절입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오히려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그리고 마가복음의 핵심 주제는 “종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래서 Donald Grey Barnhouse 목사님은 자신의 마가복음 강해집의 제목을 The Servant Gospel이라고 붙였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사건이 나옵니다. 4절에 보면,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였다”고 말씀합니다. 광야라는 곳은 기성 종교인들이 활동했던 예루살렘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장소입니다. 당시의 예루살렘 성전은 부패의 상징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은 예루살렘의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그와 대조적으로 광야는 가난과 시험의 장소, 기득권이 없는 곳, 시련과 고난의 장소였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그러한 광야에서 오히려 많은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모세를 40년 동안 훈련시키시고 만나신 곳도 광야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동안 훈련시키신 곳도 광야였습니다. 예수님이 40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신 곳도 광야였습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이 사역한 곳도 광야였습니다. 화려한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이 제사장들의 탐욕으로 하늘 문이 닫혔던 곳이라면, 광야는 선지자의 땅이요, 영성이 살아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험한 광야까지 온 유다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들이 다 나아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고 5절은 말씀합니다. 세례 요한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 하였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철저히 자기를 낮춘 사람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서 이렇게 증거하였습니다: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 ( 1:7-8).

무대를 비추는 조명등은 자기 자신을 비추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은 어두움 속에 숨어 있습니다. 그래야 주인공이 밝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이름이나 지위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람은 예수님에 대해서 말하면서도 사실을 자기를 나타냅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을 드러내는 만큼 예수님을 가리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철저히 예수님을 비추는 조명등이 되었습니다. 예수님만 밝히 비추어 드리는 증거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세례 요한은 자신과 예수님을 물로 세례를 주는 자와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자로 비교하였습니다. 성령 세례는 신학적으로 많은 논란이 있는 주제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가장 잘 해석해 줄 수 있는 성경은 에스겔서 36 25절로 27절 말씀입니다: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세례 요한은 죄를 씻는 물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나아와 죄를 자복하고 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이미 지은 죄를 정결케 하는 예식이었습니다. 성령 세례를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에스겔서 말씀을 보면, 물로 정결케 한 다음에 성령을 주시는데, 그 성령이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시며,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를 자발적으로 행하는 힘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물세례는 과거의 죄를 회개하는 표시였습니다. 그러나 죄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지는 못하였습니다.

  죄의 유혹을 이기고 하나님의 법도를 지킬 수 있는 능력은 성령님이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변화시켜 주실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성령님은 부패한 우리 마음을 변화시키십니다. 물세례는 내면의 변화를 일으키지 못합니다. 우리의 인격이 변하고, 그 열매로 삶이 변하는 것은,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임하실 때에 일어납니다. 그처럼 새롭게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가 이번 사순절에 여러분에게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세례 요한은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죄를 회개하실 것도 없으셨고, 세례 요한으로부터 회개의 세례를 받으실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이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님이 죄인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죄가 없으신 분으로서 죄인의 자리에 서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세례만 받으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세례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서에서 두 번에 걸쳐서 십자가를 세례라고 부르셨습니다. 마가복음 10 38절에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고 하셨고, 누가복음 12 50절에서는 “나의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죄인으로 달리신 것입니다. 죄인의 자리에서 형벌을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에도 죄인이 되신 것이고, 십자가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도 죄인이 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3 14절에 보면,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게 세례 주기를 주저하였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나에게 세례를 받습니까?” 그때 예수님이 답하셨습니다: “이제 허락하라.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 3:15). 예수님은 자신이 죄인의 자리에서 세례를 받으시는 것을 의를 이루는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고린도후서 5 21절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를 주시기 위하여 죄인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3 25절로 26절은 말씀합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움을 나타내심이니,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움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간단히 말하면, 예수님이 죄인이 되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도 빛을 발하게 되었고, 예수를 믿는 자들도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신 것은 그처럼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함이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세례 사건의 교훈을 두가지로 간단히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는, 낮추심과 높이심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겸손히 낮추시고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을 때에, 하나님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영화롭게 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주리시고 들짐승과 같이 거하실 때에도, 하나님은 천사들로 수종들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스스로 낮추심의 클라이막스는 십자가의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고,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며,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게 하셨습니다 ( 2:9-11).

  예수님은 스스로를 낮추셨지만,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스스로 낮추심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스스로를 낮출 때에,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높여 주실 것입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야고보서 4 10절은 말씀합니다.

  두번째, 예수님은 세례를 통하여 죄인이 되셨지만, 죄인은 세례를 통하여 예수님과 연합하게 됩니다. 로마서 6장은 우리가 주님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의미는, 우리의 옛 사람과 죄의 몸을 주님의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을 의미합니다. 죄인으로서의 나는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한다는 것은 그의 죽으심에 연합되는 것에 그치지 아니합니다. 신자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연합합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나의 죄를 위한 십자가였다는 것을 믿고 고백하고 세례 받는 그 순간에, 죄악된 옛 사람은 죽고 의인으로 부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 안에 새 생활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함으로, 신자는 영적으로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가 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을 뿐만 아니라, 십자가의 세례를 감당하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 53:5).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이루시기 위하여, 또한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어 주시기 위하여 고난 당하신 주님, 죄인의 자리에서 고난 당하신 주님과 믿음으로 연합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