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 찌게를 준비해 주신 여전도회에 감사드립니다.

장년: 함대옥, 박성숙, 박정원, 이방섭, 송미경, 최태순, 우정희, 김영희, 이기호, 김은지, 김용광, 유정현, 김유민, 주원열 (14명)

청년: 장영아, 한민식, 최지원, 왕재원, 정호웅, 하우석, 최혜원, 장선영, 김규리, 나예진, 장경수, 연희정, 최재우, 오영근, 신진실, 조은비, 서지원, 이윤호, 박선혜, 정노아 (2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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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를 부르심 ( 1:16-20)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마태복음 10 1절에 보면,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부르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 20절에도 부르셨다는 단어가 나옵니다. 우리도 부르심 받은 사람들입니다. 교회는 헬라어로 ecclesia 인데,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공동체라는 뜻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예수님이 부르신 안드레에 대하여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안드레는 본래 세례 요한의 제자였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 보면, 안드레는 세례 요한의 제자였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였습니다: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 1:36). 그러니까 안드레는 세례 요한의 제자였다가, 세례 요한으로부터 예수님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안드레에게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부르셨고, 안드레는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좇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7-18). 우리가 안드레라면, 그렇게 즉시로 순종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안드레라면, 이렇게 말할 것 같습니다.

당장은 안됩니다, 시간을 주십시오, 생각해 보겠습니다, 기도해 보겠습니다, 노력해 보겠습니다, 이 때까지 하던 고기 잡이는 어떻하나요, 배와 그물을 어떻하나요, 아버지는 어떻하나요, 내가 고용한 삯군들은 어떻하나요… 또 얼마나 많은 질문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얼마나 오랫동안 따라 다녀야 합니까, 나를 끌고 어디로 가실 것입니까, 주님을 따르면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그러나 안드레는 일절 묻지 않았습니다. 참된 신자라면 주님이 제자로, 사역자로 부르실 때에 즉시 온전히 기쁨으로 순종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서 안드레는 성경에 나오는 첫 제자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안드레는 성경에 나오는 첫 전도자입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안드레가 예수님을 만나고 가장 처음 한 일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1 41 42절에 보면,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가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니,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게바를 번역하면 베드로라).

안드레는 예수님을 만나고 제일 먼저 자기 형제 베드로를 전도하였습니다. 안드레가 전도한 베드로는 큰 인물이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 41절에 보면, 베드로는 하루에 삼천명을 회개시키고 세례를 주었습니다. 성경에서 열 두 제자 가운데도 베드로가 단연 돋보입니다. 반면에 안드레는 성경에서 그 존재가 미미합니다. 그러나 베드로를 전도한 사람이 안드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Edward Kimball 이라는 주일학교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오후에 자기 반에 출석하였던 학생을 전도하기 위하여 찾아갔습니다. 그 학생은 19살 남자로 보스톤의 신발 가게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Kimball 선생님은 결코 담대한 전도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떨리는 마음으로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인가, 걱정하면서 가게로 갔습니다. 더구나 그 학생은 성경에 대해서 전혀 모를 뿐만 아니라, 글씨도 읽지 못하는 친구였습니다.

Kimball 선생님은 나중에 그 일을 회고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에게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일하던 Holtons shoe store로 향하였습니다. 거의 다 갔을 때에, 이렇게 일하는 시간에 가도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를 당황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다른 종업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망설임도 있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가게를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나는 가게로 다시 돌아가서 마음을 굳게 먹고 문을 열었습니다. 그는 창고에서 신발들을 포장해서 선반에 올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더듬거리며 말을 했습니다.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와 그의 사랑에 대해서 어설프게 설명을 하였습니다. 그게 전부였습니다. 참 빈약한 호소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자신의 마음을 그리스도께 드렸습니다.

여러분 이 구두 가게 종업원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바로 D. L. Moody 입니다. 무디가 전도한 사람, 무디의 사역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은 그 숫자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는 무디의 영혼을 사랑하고 전도한 주일학교 선생님이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전도하는 사람이 지금은 우유부단한 시몬이지만, 장차 베드로와 같이 교회의 초석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르치는 주일학교 학생이 미래의 무디 목사가 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을 주님께 인도하는 것은 결코 사소하고 보잘 것 없는 일이 아닙니다. 그 자체로 천하보다 귀한 한 생명을 주님께 인도하는 일입니다. 나아가서 우리가 상상치 못하는 놀라운 일들이 하나님의 손길 가운데 그 생명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안드레가 주님께 데리고 온 사람은 베드로 외에 또 있었습니다. 바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던 아이였습니다. 우리는 요한복음 6장에 나오는 오병이어의 기사를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병자들을 고쳐주는 것을 보고 많은 무리가 따랐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육체적인 필요에도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그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공급하시려는 생각이 있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 중에서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일까”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6 6절에 보면, 주님께서 빌립을 시험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진짜 대책이 없어서 물으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미 작정하신 바가 있으셨습니다.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빌립의 믿음을 시험하시기 위하여 시험 문제를 내신 것입니다. 

빌립의 답변에는 믿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계산만 있었습니다. 각 사람이 조금씩만 먹어도 엄청난 돈이 들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아주 정확하게 이백 데나리온이라는 수치까지 나왔습니다. 빌립의 대답은 매우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그동안 주님을 따라다니면서 수 많은 기적을 실제로 보고서도, 그가 여전히 믿음으로 살고 있지 않고 자신의 계산 속에 살고 있는 것을 드러내 주었습니다. 주님은 이미 무리들을 먹이실 능력과 계획과 사랑을 갖고 계셨으나, 빌립은 자신의 머리 속에서 나온 계산으로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어서 빌립과 대조되는 제자가 나옵니다. 안드레라는 인물입니다. 안드레는 어떤 소년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주님께 나왔습니다. 그것으로 어떻게 이 많은 무리를 먹일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있었지만, 자신이 구한 것을 가지고 주님께 나온 것입니다. 그것이 그 상황에서는 최선이었습니다. 제가 구할 수 있는 것은 이것 뿐이었습니다, 하고 나온 것입니다. 당면한 문제에 대해서 뾰족한 해답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최선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 때에 주님은 빌립의 계산을 받아들이신 것이 아니라, 안드레가 가지고 온 것을 가지고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빌립과 같은 사람입니까, 아니면 안드레와 같은 사람입니까? 여러분은 계산을 하십니까, 아니면 주님 앞에 가지고 나오십니까? 빌립은 자신의 지혜와 계산으로 해결책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안드레는 대책 없이 주님 앞으로 가지고 나왔습니다. 주님은 안드레의 믿음을 축복하셨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안드레는 Greece 에서 X자 십자가 (X-shaped cross) 에 달려 순교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X자 십자가를 안드레 십자가라고 부릅니다. Murillo 라는 화가가 그린 The Martydom of St. Andrew 라는 작품에 보면, 안드레가 X자 십자가에 양 팔과 양 발을 쫙 벌리고 달려 있습니다. 그 왼쪽에 어떤 청년이 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슬퍼하는 모습이 있는데, 사람들은 그것이 안드레의 손에 이끌리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왔던 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소년에게 안드레는 평생 잊지 못할 예수님의 제자였을 것입니다.

안드레는 성경에 몇 번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항상 누군가를 주님께 데리고 온 사람으로 나옵니다. 안드레는 자기 형제 베드로를 주님께 인도하였습니다. 오병이어를 가지고 온 아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2 22절에 보면, 헬라 사람 몇 명을 주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안드레는 항상 누군가를 예수님께 데리고 오고, 자신은 뒤에서 흐믓해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날 그처럼 눈에 안 띄게 주님을 섬기는 것 만으로 기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자신이 드러나지 않아도 마냥 행복한 제자가 얼마나 될까요? 오늘날 교회에 필요한 사람은 바로 그러한 안드레입니다.

여러분도 한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는 전도자 안드레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계산적인 빌립이 아니라,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오는 안드레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