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Presidents Day 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마음에 거하시는 resident가 되실 뿐 아니라, 우리를 다스리시는 president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장년: 함대옥, 김영희, 노난실, 우정희, 이기호, 주원열 (6명)

청년: 최재우, 서지원, 최지원, 이하경, 전재현, 하우석, 정고은, 이윤호, 김규리, 나예진, 신진실, 조은비, 정노아, 한민식, 장경수, 왕재원, 박선혜, 황준영, 최혜원, 정연오, 정호웅 (2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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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베드로를 부르심 ( 1:16-20) The calling of Simon Peter

          요한복음 1 42절에 보면, 예수님이 베드로를 처음 보셨을 때에 다음과 같이 의미 심장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너의 현재 이름은 시몬인데, 앞으로는 베드로라고 불리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실제로 복음서를 읽어 보면, 시몬이라고 부릴 때도 있고, 베드로라고 불릴 때도 있고, 시몬 베드로라고 불릴 때도 있습니다.  

          베드로는 우리가 아는 대로 반석 (Rock)이란 뜻입니다. Greek으로는 Petros 이고, 영어로는 Peter 인데, 아람어로는 게바 (Cephas) 입니다. 시몬이라는 이름은 타고난 인간 시몬을 가리킵니다. 시몬은 본래 성급하고 경솔하며 견고하지 못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지키지 못할 맹세를 함부로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시작할 때에는 돌진하지만, 마무리를 맺지 못하고 물러서는 사람이었습니다. 시작도 제일 먼저 하지만, 포기도 제일 먼저 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너는 시몬이라고 하실 때에, 그 시몬은 그런 타고난 인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처음 만난 시몬은 성급하고 충동적이고 열심이 앞서는 친구였습니다. 그는 흔들리지 않는 반석처럼 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에게 그의 성품과 정반대가 되는 별명을 지어 주셨습니다. 복음서를 읽어보면, 그는 시몬과 베드로 사이를 오갔습니다. 어떨 때에는 베드로처럼 행동했지만, 어떨 때에는 시몬처럼 행동하였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날에 성령이 강림하시고, 성령 충만을 받은 베드로는 그 자리에서 위대한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 다음부터 사도행전에는 시몬이라는 이름이 더 이상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직 반석과 같은 베드로가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제자로 부르시는 장면은 누가복음 5장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5:4). 그러자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 ( 5:5).

그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고기가 너무 많이 잡혀서 그물이 찢어지고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공포에 질려서 간합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그처럼 베드로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였을 때에 주님은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 5:10). 그 시로 베드로는 그물은 버려 두고 주님을 따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21장에는 이와 매우 유사한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 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예수님은 무덤을 찾아온 막달라 마리아에게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지시대로 갈릴리로 가서 주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베드로가 물고기를 잡으러 간다고 하자, 함께 있던 제자들이 모두 따라 나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밤새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밤새 허탕치고 실망하고 지쳤을 때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물으십니다: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제자들은 “없나이다” 주님은 빈 그물을 손에 들고 있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제자들은 그렇게 말하는 분이 주님인 줄은 아직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기가 잡혔을 때에, 요한이 직감적으로 주님을 알아보았던 것입니다: “주시라. It is the Lord ( 21:7). 베드로는 “주님 이시다”는 요한의 소리를 듣고, 물에 첨벙 뛰어들어서 주님을 향하여 헤엄쳐 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베드로를 처음 부르실 때와 동일한 체험을 다시 주심으로써, 베드로에게 뜨거운 믿음을 회복시켜 주셨던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자신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에게 세 번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리고 베드로가 장차 당할 고난을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네가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주님의 이 말씀에 대하여 요한이 보충 설명을 합니다: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베드로는 순교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그처럼 베드로의 순교를 말씀하신 후에, 또 다시 베드로에게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21:19). 예수님은 베드로를 처음 부르실 때에도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1:17). 부활하신 예수님은 베드로를 다시 부르셨습니다: Follow Me.”그것도 베드로에게 순교할 것을 말씀하신 직후에, “나를 따르라”고 명하셨습니다.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2 9절ㄷ에 보면,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에, 지금 crown을 쓰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영어로 간단히 말하면, No Cross, No Crown’ 이 됩니다. 십자가가 없으면, 영광과 존귀의 관도 없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모세는 하늘의 영원한 영광을 얻기 위해서, 애굽의 왕자 지위를 거절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이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좋아했으며, 주님을 위해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모세는 이 세상에서 잠시 누리는 헛된 영광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영광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 11:24-26).

로마서 8 17절로 18절은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으려면 그와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이 모든 말씀에는 공통된 패턴이 있습니다: No Cross, No Crown. 이것은 성경 전체가 증거하는 진리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지는 자에게 Crown을 주십니다. 우리와 주님의 관계는 연합의 관계이기 때문에, 주님이 지신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 주님이 취하신 영광도 취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 시간 여러분에게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명하시면 무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왜 하필이면 나입니까, 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 시키세요, 할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주님의 제자는 참으로 영광입니다, 많고 많은 사람들 가운데 특별히 나를 택하셔서 주님의 피 묻은 십자가를 지는 영광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렇게 대답하고 순종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주님의 뒤를 따라서, 십자가 후에 영광을 취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