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기도하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순서를 담당하신 2목장에 감사드립니다. 

장년: 함대옥, 우정희, 노난실, 최태순, 이기호, 주원열 (6명)

청년: 이하경, 정고은, 전재현, 최재우, 장경수, 최혜원, 하우석, 정노아, 김양하, 황준영, 오영근, 한민식, 신진실, 나예진, 김규리, 정호웅, 서지원 (17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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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심 ( 1:16-20)

여러분 미국에서 가장 흔한 남자 이름이 무엇입니까? John이지요. 그러면 두번째로 많이 사용되는 남자 이름은 무엇일까요? John 다음으로 많은 이름은 James 입니다. 한국 성경에 요한과 야고보입니다.

오늘 본문 19절과 20절에 보면, 예수께서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부르시니, 그들이 아비 세베대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라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복음서에서 딱 한 번의 예외를 빼놓고는 ( 9:38), 항상 같이 나옵니다. 같은 형제라도 베드로와 안드레는 같이 등장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형제이면서 동시에 늘 같이 행동한 단짝이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두 사람에게 같은 별명을 지어 주셨습니다. 마가복음 3 17절에 보면, 열 두 제자의 명단이 나오는 가운데,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뢰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보시기에도 이 두 사람은 불 같은 성격을 똑 같이 공유한 형제였습니다. 그래서 천둥 벼락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두 사람에게 같이 주셨던 것입니다.

오늘은 야고보와 요한이 함께 등장하는 사건을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마가복음 10 35절로 40절에 나오는 청탁 사건입니다. 하루는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나아와 “우리의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라고 말합니다 (35). 예수님이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시자, 그들은 이렇게 청하였습니다: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37). 그들이 오해한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에서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영광의 날이 오면 자신들을 우의정과 좌의정에 임명하여 달라는 청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잘 몰라서 엉뚱한 세상 부귀 영화를 구하고 있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고난의 잔과 십자가의 세례를 말씀하신 것이지요. 야고보와 요한은 우의정과 좌의정만 될 수 있다면, 무엇인들 못하겠는가, 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고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할 수 있나이다” 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과연 나의 고난과 세례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39).

예수님은 영광을 구하는 그들에게 십자가 없는 영광은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No Cross, No Crown). 그들은 영광의 crown을 구했지만, 예수님은 고난의 십자가를 제시하셨습니다. 그들은 power를 원했지만,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종이 되어 섬겨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44-45). 그들은 높은 자리를 구하였지만, 주님은 그들에게 순교자의 무덤을 보여 주셨습니다. 과연 약 14년 후에 야고보는 열 두 제자 중에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과연 야고보는 순교를 통하여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에 동참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 가지입니다. 교회에 처음 나와서 신앙 생활을 시작할 때에, 주님을 위해 죽을 수 있다고 말한다면 좀 이상한 일입니다. 처음 예수를 믿고 교회를 나오는 이유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어려움을 당하고 마음이 착찹해서 무언가 붙잡으려고 나옵니다. 예수 믿으면 잘 먹고 잘 산다는 기복 신앙 혹은 번영 신학적인 설교를 듣고, 세상적인 복을 받기 위해서 교회에 나옵니다. 병 낫기 위하여, 자식이 시험에 합격하기 원하는 마음으로 교회에 나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에는 교회에서 사탕 준다고 교회 나오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우리가 중고등학교 때에는 예쁜 여학생 보러 교회에 나오는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40 50살이 되어서도, 사탕 먹으려고 혹은 예쁜 여학생 보려고 교회를 오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내가 위로 받기 위해서, 내가 복을 받기 위해서, 내가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서, 신앙 생활을 하겠습니까? 물론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하였지만, 복음을 듣고 점점 변해서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장해 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종국에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참된 제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야고보도 처음에는 세상의 부귀 영화를 구하는 자였지만, 종국에는 주님과 같이 cross를 통해서 하늘의 영광을 취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처럼 여러분도 하나님을 믿는 동기가 바뀌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동시에 등장하는 사건들 가운데 또 하나는 누가복음 9장 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51절과 52절에 보면,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 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저희가 가서 예수를 위하여 예비하려고 사마리아 인의 한 촌에 들어갔더니” 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데, 사마리아를 지나가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들에게 적대적이었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지키는 유월절에 대해서도 적대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일행이 자기 촌에서 머물 수 있도록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에 야고보와 요한이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 9:54). 예수님은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다른 촌으로 가셨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이 사마리아 마을에 하늘로 불을 내려서 다 태워 죽여 버리자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 우뢰의 아들 요한이 요한복음과 요한일서에서 얼마나 사랑에 대하여 많이 말씀합니까? 요한도 변한 것입니다. 먼저 요한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하여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인들은 원수가 아니라 이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이 유명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입니다.

또한 요한은 주님의 사랑을 통하여 변화되어 갔습니다. 요한은 요한복음과 요한일서에서 사랑을 많이 말씀합니다. 그래서 요한에게는 ‘사랑의 사도’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저런 놈들은 다 불살라 버리자고 하던 요한이 어떻게 사랑의 사도가 될 수 있었을까요? 요한복음에 보면, “주님의 사랑하시는 제자”라는 표현이 여러 번 나옵니다. 요한이 자신을 가리켜 한 말입니다. 요한은 주님이 자신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요한은 주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사랑의 사도로 변화되어 갔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13 23절에는 예수님의 사랑하시는 제자가 주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요한은 가슴에 품어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받고, 사랑의 사도로 변화되어 갔던 것입니다. 요한은 요한일서 4 19절에서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요한은 주님의 사랑을 받으며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갔던 것입니다.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비결은 주님의 사랑을 먼저 깨닫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고 경험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사마리아인은 누구입니까? 그는 원수가 아니라, 네 이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요한과 같은 분노의 사람도 주님의 사랑을 많이 받고 사랑의 사도로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자녀들에게 너는 왜 그렇게 말을 안 듣냐고 야단치는 우리들이지만, 나는 과연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잘 듣고 순종하고 계신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신 그 사랑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5:10).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죽으신 그 사랑으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는 주님의 제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