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미명에 기도하신 주님의 모범을 따라 기도한 새벽이었습니다. 순서를 담당해 주신 4목장에 감사드립니다.

장년: 함대옥, 노난실, 이경의, 현인호, 우정희, 최태순, 전영숙, 이기호, 김혜원, 현경희, 주원열 (11명)

청년: 이윤호, 정고은, 이하경, 하우석, 왕재원, 최혜원, 정연오, 서지원, 황준영, 정호웅, 오영근, 김이삭, 한민식, 최지원, 장경수, 김규리, 나예진, 정노아, 최재우, 신진실, 이의환 (2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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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미명에 ( 1:35-39) Very Early in the Morning

          저명한 저술가였던 Aiden Wilson Tozer목사님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열심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범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과오는 하나님의 일에 너무 바빠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게을리 하는 일이다.

이어서 토저 목사님은 그처럼 바쁘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교제를 등한히 한 사람들은 결국 하나님의 일에 대한 의욕을 잃어버리고 시험에 들 가능성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교회 일을 하다가 burn out 되는 사람, 의욕을 잃어버리는 사람, 시험에 드는 사람, 왜 그렇게 되는가?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재충전을 받지 못하고, 기도 가운데 얻는 마음의 기쁨과 안식을 얻지 못하고, 하나님이 하늘로부터 내리시는 능력과 새 힘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예수님이 바쁘고 힘든 사역 가운데에서도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셨다는 35절 말씀을 함께 상고하고자 합니다.

마가복음 1장을 읽어보면, 예수님이 얼마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사역을 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21절에 보면,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습니다. 오늘 날로 말하면, 주일 예배에 설교를 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권세 있는 가르침에 놀랐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가르치는 도중에 돌발 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소리를 지르며 예배를 방해하였습니다: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오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24). 예수님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명하시고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더러운 귀신은 그 사람으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왔습니다 (25). 사람들은 귀신도 순종케 하시는 예수님의 권세에 또 한번 놀랐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6).

회당에서 나오신 예수님은 곧바로 베드로의 집에 가셨습니다.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녀의 손을 잡아 일으키셨습니다. 열병을 치유 받은 베드로의 장모는 즉시로 예수님과 제자들을 수종 드는 봉사를 시작하였습니다.

그처럼 가르치시며, 귀신을 내어 쫓으시고, 병자를 고치시며, 예수님은 아마도 많이 피곤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입니까? 예수님이 귀신을 내어 쫓으시며 병을 고치신다는 소문이 나자, 그 동네의 모든 병자들과 귀신 들린 자들이 베드로의 집으로 다 모여 들었습니다. 그 때는 저물어 해가 질 때였다고 하는데 (32), 온 동네가 문 앞에 모였다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33). 예수님은 또 다시 각색 병든 사람을 일일이 고치시며, 그 모든 귀신을 다 내어 쫓으셨습니다. 그쯤 되면 예수님은 얼마나 피곤하고 지치셨을까요? 아침부터 밤까지 혼신의 힘을 다하여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 부은 사역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안식일은 그처럼 대단히 바쁘고 피곤한 하루였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38절과 39절에 보면, 그 다음 날에도 가까운 마을로 가셔서 전도하셨고, 그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온 갈릴리로 다니시며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귀신들을 내어 쫓으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실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이었습니다.

그런데 35절에 보면, 그 와중에도 예수님은 새벽에 홀로 일어나셔서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기 전에,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주님은 먼저 하나님을 만나셨습니다. 아버지와 교제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 39절에 보면, 예수께서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셨다고 하였습니다. 산에 가서 기도하시는 것이 예수님이 항상 하시는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바쁘신 가운데도 아버지와 독대하는 시간을 날마다 가지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힘든 사역을 하시면서도 시험에 들지 않으셨고, 잠자고 있는 제자들에게도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 26:41).

종교개혁가 루터는 바쁠수록 더 기도하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너무 바빠서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루터는 반대로 평소에는 한 시간씩 기도하였지만, 바빠질 때에는 오히려 기도의 시간을 두 배로 늘렸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바쁘고 힘든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기도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밀합니다. 힘들어 죽겠는데, 기도까지 하라는 말이냐? 그러나 왜 마틴 루터가 바쁜 가운데도 기도했겠습니까? 왜 예수님이 살인적인 스케줄 가운데에도 새벽 미명에 일어나셔서 기도하셨겠습니까? 기도는 무거운 짐이 아니라, 짐을 더는 안식이었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힘든 일이 아니라, 기쁨을 주는 즐거운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찬송가 가사에도 있지요? 내 기도하는 그 시간 그 때가 가장 즐겁다. 바쁠수록 기도하며 쉼을 얻고, 피곤할수록 기도하며 새 힘을 얻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사람과 사귀는 일은 즐거운 일 아닙니까?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힘들다면, 그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과 교제하며 시간을 같이 하는 것이 분명 즐겁고 기쁠 것입니다. 거기서 분명 새 힘을 얻을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사람들이 대화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얼굴만 보면 이것 내놓으라, 저것 내놓으라고 하는 관계는 분명 사랑하는 관계가 아닐 것입니다. 왜 이것 밖에 안 해주냐고 원망하는 관계도 분명 사랑하는 관계가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에 무어라고 기도하셨을까요? 왜 나의 삶은 이렇게 힘듭니까? 왜 나에게 먹을 것 입을 것을 더 주시지 않습니까? 그렇게 기도하셨을까요? 여러분은 하나님께 어떠한 기도를 드리십니까? 여러분도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이름을 높여 드립니다, 하나님 제가 무엇을 해드릴까요, 하나님 저를 드립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주님을 섬기고 싶습니다, 그런 기도하지 않을까요?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기도 가운데 그러한 교제를 하셨을 것입니다. 그처럼 기도 가운데 교제하셨기 때문에, 그 모든 사역을 능히 감당하셨고,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까지도 감당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특별히 바쁜 하루의 삶을 시작하시기 전에, 새벽 미명에, 아직 어두울 때에, 기도의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새벽은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입니다. 새벽 기도는 하루의 첫 시간을 드리는 것입니다.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시편 5 3절에서 다윗은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아침에 기도한다는 것은 하루의 첫 시간을 드리는 헌신입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어제 99세를 일기로 소천하셨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아침 기도는 하루를 여는 열쇠이고, 저녁의 기도는 하루를 닫는 자물쇠”라고 말했습니다.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기도로 하루를 마무리하게 될 때에, 우리는 하루를 하나님의 축복으로 시작하여 은혜로 마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는 계속하여야 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구약의 성막과 성전의 구조를 보면, 지성소로 들어가는 휘장 앞에는 분향단이 있었습니다. 분향단에는 언제나 향이 타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향은 너희가 대대로 끊지 못한다”고 하나님이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 30:8). 그 향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제사장의 임무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성도들의 기도를 향으로 표현합니다. 다윗은 시편 141 2절에서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다”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5 8절에도 보면,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고 하였습니다. 사무엘은 기도하기를 쉬는 것은 죄라고 하였고, 사도 바울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평생에 기도가 끊이지 말아야 함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아침 저녁으로 향을 사른 것처럼, 기도의 향불을 끊임없이 올려드리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습관을 따라 기도하셨습니다 ( 22:39). 미국의 저명한 실용주의 철학자 William James는 습관이 운명을 좌우한다고 했습니다. 습관은 반복을 통해서 자리 잡는 것입니다. 새벽 미명에 기도하신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새벽 기도의 습관을 키워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쁨이 충만할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운명이 바뀌는 귀한 사순절 기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