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돈 / 고신대 신학대학원 교의학 교수의 글입니다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가 10년 후에는 교회를 해체하여 절반 이상의 교인들이 그 교회를 떠나 약한 교회를 돕게 하겠다는 소견을 발표했다. 한국교회의 영적인 가뭄을 해갈할 반가운 빗소리를 듣는 듯하다. 그동안 대형화 일변도로 치달았던 한국교회의 광란 질주에 제동을 거는 신선한 충격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일단 큰 후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 이런 이 목사의 선언이 단순히 개혁적인 제스처를 표방하는 선동적인 구호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단계에까지 이르기 위해서는 좀 더 치밀하고 지혜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이 목사는 이런 소신을 발표하기 전에 교회의 장로들과 교인들을 설득하는 작업을 해야 했다. 아무리 순수한 의도에서 나온 참신한 발상이라고 할지라도 목사는 그것을 독단적으로 밀고 나갈 수는 없다. 그럴수록 더 신중하게 일을 진행해 가야 한다. 교인들이 왜 그런 조치가 꼭 필요한지를 충분히 납득할 수 있도록 그 당위성을 명백하게 밝혀 주어야 한다.

이 목사가 이런 준비 과정을 생략하고 먼저 저지르고 보자는 식으로 접근한 것이 못내 아쉽게 느껴진다. 하지만 앞으로 이 목사가 자신의 선한 의도와 참신한 프로젝트를 장로들과 교인들에게 잘 설득시켜 적극적인 호응과 자발적인 동참을 이끌어내는 리더십을 발휘하리라고 믿는다. 그리하여 진정으로 한국교회에 대형 교회 해체의 서곡을 울려 주기 바란다. 

앞으로 이 목사가 그의 소신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교인들에게 교회가 대형화해서는 안 되는 분명한 신학적인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교회가 수적으로 일정한 규모 이상이 되면 교회의 본질을 구현하기 불가능하다는 점, 즉 교인들이 성령 안의 친밀한 교제와 섬김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을 구체적으로 체험하고 구현할 수 없다는 사실을 교인들에게 일깨워 주어야 한다. 수천수만 명이 모이는 교회에서 대부분 교인은 담임목사조차 모르는 이름 없는 군중이니 어찌 진정한 목회가 가능하겠으며, 성령 안에서 교인들 상호 간의 친밀한 교제와 섬김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성화와 영적인 성숙이 진행될 수 있겠는가?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치명적인 병폐, 즉 교인들에게 참된 구원의 증거인 성화의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 문제는 대형화의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대형 교회가 제자도의 삶을 회피하고 무리 속에 안일하게 묻혀 사는 익명의 크리스천들, 그렇게 교회 생활을 오래 해도 도무지 변화되지 않는 미성숙한 교인들을 양산해 온 주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목사는 대형 교회가 성경적으로 부흥하고 성공한 교회의 모델이 아니라 오히려 정상적인 목양과 영적 성숙이 불가능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구현하기에 심대한 제약을 안고 있는 아주 비정상적인 교회의 형태라는 점을 교회론적으로 밝혀 주어야 한다. 그동안 한국교회가 온통 대형화를 추구해 온 것은 목사들에게 기본적인 교회론조차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않다는 분명한 반증이기도 하다.

또한 교회가 대형화하면, 그 구조가 안고 있는 생래적인 속성상, 이 세대의 가치관과 날카롭게 대립하는 종말의 영인 성령보다 세상 신이 더 활보하기 좋은 영적 토양을 조성하게 된다. 대형 교회는 겨자씨처럼 미미하게 보이는 존재들을 통해 은밀하게 진행되는 하나님나라의 원리보다 물량주의와 성장제일주의에 매몰된 세속주의 가치관에 의해 작동되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세속화 물결이 교회로 은밀히 밀려들어 오게 하는 구조적으로 허술한 구멍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리하여 교회가 성령의 능력으로 산출되는 영적인 감화력을 세상에 흘려보내기보다 거대한 건물과 재정과 수적인 위력으로 세상을 압도하려는 패권주의적인 오만함의 구린내를 풍겨 세상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또한 대형 교회는 영적으로 교묘하게 위장된 목사와 장로들의 허영심, 즉 종교적인 야망과 권력에 대한 욕망을 부추기며, 대형 교회를 이루는 것이 목회 성공의 척도라는 세속적 가치관으로 한국교회를 오염시켜, 수많은 목사가 그 허욕의 길을 따르도록 강력한 영감을 불어넣었다. 

이 목사는 대형 교회가 안고 있는 이런 심각한 문제 때문에 대형 교회를 해체해야 한다는 분명한 논리적인 근거를 교회론 관점에서 제시함으로 교인들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단순히 대형 교회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교인들을 떠나게 하기보다 오히려 더 많은 교인을 끄는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그리하여 고차원적 '경건의 꼼수'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물론 이 목사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교인들은 이 목사의 그런 '내려놓음', '욕심을 비움'에 더 매료되어 그를 떠나기가 무척 어려울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목사의 선언은 그가 사심이 없고 참신한 목사로 더 추앙받게 하며 사람들을 더욱 끄는 홍보용 멘트로 둔갑할 것이다. 그는 하나의 명예를 버림으로 훨씬 더 큰 명예를 얻게 되는 셈이다. 참 지혜로운 선택이다. 진정한 명예와 영광을 추구하는 것이 잘못됐다고 볼 수는 없다. 목사는 참으로 존경받을 만한 목사가 되기를 힘써야 한다. 이제는 목사가 큰 교회를 이루었다고 해서 존경받는 시대는 끝났다. 이 시대의 한국교회가 요청하는 목사는 바로 이 목사가 추구하는 목자상, 즉 진실함과 개혁 의지를 겸비한 목사이다. 그런 점에서 이 목사는 지혜롭고 바람직한 선택을 한 것이다. 

진정에서 우러나온 그의 결연한 의지가 결국 그의 참신함을 더 돋보이게 하여 자신이 대형 교회를 이룰 정도로 실력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을 과감하게 내려놓을 정도로 개혁적이라는 칭송과 영광을 받는 것으로 그치는 것을 이 목사 자신이 결코 원치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교인들을 계몽하는 일에 힘써야 할 것이다. 대형 교회는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상을 이루기가 불가능한 교회라는 점을 주지시켜야 한다. 그래서 대형 교회를 해체하는 것이 정당한 것을 포기하는 고귀한 희생으로 존경받아야 할 일이 아니라 부당한 것을 거부하는 당연한 일,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이 시대의 긴급한 과제로 인식되게 해야 한다.

이렇게 교인들의 의식이 깨이지 않는 한 대형 교회의 해체는 불가능하다. 교인들이 좋은 목사 밑에서 신앙생활 하고 싶은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특정한 목사에게 떼거리로 몰려 대형 교회를 이루는 데 일조하는 교인들을 보면 과연 그들이 올바른 의식이 있는 크리스천인지 매우 의심스럽다. 왜 그들은 담임목사조차 알지 못하는 군중 속에 이름 없는 무리로 취급받는 자기비하를 자처하는 것일까? 그것은 대형 교회에서 누릴 수 있는 많은 유익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훌륭한 목사가 시무하는 대형 교회에 속했다는 알량한 자존감으로 자신 안에 도사리고 있는 허영심을 달래려는 심리 때문인지도 모른다. 

앞으로 대형 교회로 말미암은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의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이제 대형 교회를 세우는 것이 성공한 목회의 기준이며 그 야망을 실현한 목사가 이상적인 목사로 대우받는 희한한 교계의 풍토를 쇄신해야 한다. 대형 교회 목사들이 오히려 건강하지 못한 변칙적인 목회를 하는 이들로 취급받아 목에 힘을 주지 못하고 몸을 바짝 낮출 수밖에 없는 새로운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어차피 대형 교회가 존재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면 그 장점은 최대한 살리고 그 폐해는 최소한으로 줄이는 방책을 강구해야 한다. 대형 교회는 그 인적, 물적 자원을 잘 활용하여 작은 교회들이 할 수 없는 일들을 겸허히 수행함으로 복음 사역에 조력해야 한다.

교인들이 대형 교회를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작은 교회에서는 신앙생활 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설교는 들어주기 힘들고 목사는 인격적으로 문제가 많아 교인들에게 상처를 주기 일쑤며, 물리적인 규모는 작지만 큰 교회보다 더 수적 성장에 목을 매고 교인들을 닦달하기에 그런 교회에서 도저히 버티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작은 교회가 이렇게 교인들이 모일 수 없는 이유로 가득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람들이 모일 수밖에 없는 이유로 가득한 데도 잘 알려지지 않은 작고 건강한 교회가 많이 등장할 때 교인들의 인식은 바뀔 것이다. 교인들이 대형 교회에 묻히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작은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는 것을 오히려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형 교회를 등진 교인들이 마음 놓고 선택할 수 있는 대안적 공동체, 즉 교회의 본질을 구현해 가기에 알맞은 규모(100~500명?)의 건강한 교회들이 이 땅 곳곳에 점증하는 날이 속히 도래하는 것이다. 주여, 이런 목사들과 교회들이 구름떼처럼 일어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