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성철입니다.

이 시간에는 저의 신앙 그래프에 대해 짧게 이야기 나누어보려고 합니다. 저는 78년 3월 11일에 태어났습니다. 어머님은 이상하게도 시커먼 군인인 저희 아버님이 맘에 들어서 결혼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 이상한 사건 덕에 제가 존재하게 된거죠. 어릴 때 집안이 넉넉하지 못하여서 어머니께서 항상 이렇게 기도했다고 해요.

하나님이 성철이의 선생님이 되어 달라고…

아버지가 군인인 관계로 전학을 많이 다녔는데 초등학교 때 10번 정도 전학하였고 고등학교는 공주의 기숙사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1
초등학교 때 장애인 시설에 방문하여 봉사를 한적이 기억에 납니다.
그때 놀이터에 있는 놀이기구를 타다가 그만 손가락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프지가 않더라고요. 부러진 손을 어머니에게 보여드렸고 군의관의 진료 후 손가락 기부스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1달이 지나서 기부스를 풀었는데 상처가 전혀 치유되지 않고 그대로인것있죠. 그때 깨달은 것이 있어요.
손가락이 치유되는 일에도 기도의 간구와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시고 실제적인 분이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초등학교 2
제가 어릴 때 모범생이었어요. 모범생이라는 것이 딴 것이 아니라 시키는 것 잘 하는 아이였다는 말이죠. 교회의 성경공부 중에 교사님이 성경봉독을 시켰어요. 그 이후로 지금 이 신앙그래프의 마지막인 지금까지 성경을 매일 읽고 있습니다. 아침에 5장 저녁에 5장 읽는 성경말씀이 저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과학고 불합격
별 고민없이 신앙생활을 하던 중에 처음으로 신앙생활에 어려움이 있었던 때가 과학고등학교입학시험에서 불합격했던 때입니다.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때 눈앞이 깜깜했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의 실망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그런데 나중에 뒤돌아봤을 때 그때의 불합격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는 사건이었어요. 과학고등학교에 불합격하고 공주에 있는 기숙사 고등학교에 입학하였는데 워낙 격리된 장소에 학교가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속세와 멀어져서 자연인이 되더라고요.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대학생활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대학 1,2,3학년은 과외로 얼룩진 시기였어요. 심할 때는 방학 중에 6탕을 뛴 적이 있습니다. 어머님께서 월 30만원 적금을 들어라고 하셔서 1000만원을 모은 적도 있습니다. 그돈은 집안에서 땅을 살 때 보태는데 사용하였습니다. 그때는 부모님이 유학 나올 때 돌려준다고 했는데…
고등학교 때까지 고민이나 어려움 없이 따라가는 식의 신앙생활을 해서 신앙 그래프가 항상 증가함수였는데 대학생 시기에 신앙이 성장하지 못하고 하향곡선을 그렸습니다. 군복무를 카투사로 했는데 그때도 생활에 많은 자유가 보장되어서 그런지 신앙이 성장하지 못했고요.

유학준비
유학 준비하면서 나름대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저 자신을 되짚어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저의 현실과 주변의 기대의 차이로 내면적으로나 외면적으로 많은 갈등이 있었습니다. 유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부모님이 이것저것 많이 간섭하신 것에 불만이 있었어요. 그러다가 제가 매우 중요한 것을 빼먹은 사건이 생겼고 그때 아버지께서 저를 많이 혼내셨어요. 그때 처음으로 부모님과 대판 싸웠습니다. 저의 자존감과 신앙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시기였어요. 이 일이 있기 전에는 부모님은 제가 에녹과 같은 순탄한 삶을 살기로 기도하였어요. 그런데 이 일 이후에는 바뀌었습니다. 고난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을 만나는 삶이 되도록 부모님께서 기도하시더라고요. 저는 이때 교회를 사랑의 교회로 옮겼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저희 집이 재건축을 하게 되면서 친척 목사님 댁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의 가족의 삶을 보고 함께 살면서 저 자신을 많이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맏이로서의 기대와 제 실제와의 괴리에서 갈등하는 저를 많이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많았던 관계로 교회에서 초고속 승진을 하고 간사가 된 이후 유학을 오게 되었습니다.

유학
유학 후에는 신앙 그래프가 물결을 치고 있습니다. 처음으로 진정한 의미에서 혼자 살게 된 것이죠. 이전에도 군복무 때나 고등학교 때 가족과 떨어져서 살았지만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정에 책임지는 삶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유학와서 황금시대 사람들과 교제하고 이번 방학때 어바나에 참석하면서 저의 신앙을 많이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서는 신앙적인 기준이 매우 높았고 신앙이 없으셨던 아버지와 함께 사셨기에 열심으로 애써서 신앙을 쌓아가는 삶을 사셨어요. 저도 그러한 신앙생활을 그대로 물려받았고요.
어바나에서 어떤 목사님의 간증을 듣게 되었어요. 꿈에서 어떤 흉악한 사람이 칼을 들고 자기를 찌르려고 했다고 합니다. 목사님은,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목사님을 연단하시고 강하게 만드셔서 그 사람과 대적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꿈에서 그 흉악한 사람과 싸우는 분은 자기가 아니라 예수님이셨습니다. 자기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시는 것이죠. 그 간증을 듣고 자유하는 신앙에 대한 많은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기도로 하나님과 소통하고 신앙의 진리 안에서 자유하는 삶을 갈망하게 되었습니다. 이 곳 프로비던스는 하나님이 저의 신앙을 위해 예비하신 장소인 것 같습니다. 혼자 지내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글도 많이 써봅니다. 이 곳에서의 생활이 저의 신앙이 성장하는 광야에서의 훈련이 될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철이 형을 많이 사랑하셔서 30년 간의 삶을 통해 형을 거듭난 사람으로 만드시는 것 같습니다. 형을 통해 우리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삶이 더욱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또 우리 주변의 많은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친구들이 하나님을 영접하는 사건이 형의 믿음을 통해 이루어지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