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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스피치: 노사라
정리: 김기오

제 소개를 하면, 이름은 노사라예요. 부모님께서 사라는 성경에 있는 "만국의 어머니"인 그 사라라는 이름을 지어주셨어요. 그래서, 저는 그렇게 성경에 나오는 이름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전도사님께서 처음 저희 교회 오셨을 때 하신 아브라함 이야기를 통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어요. 아브라함에게 떠나라 하셨을 때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났던 아브라함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번 학기에 많은 고민이 시작됐는데, 어느날 "아브라함을 같이 따라간 부인 사라가 있었을 텐데, 좋은 남편을 얻은 것도 정말 축복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군말을 했건 어떻게 했건 그 결정을 같이 따랐던 사라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감사하게 여기게 되었어요.

이름 때문인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어려서부터 떠나는 삶의 연속이었어요. 그래서 여기저기 이사를 다녔고, 국민학교도 한 다섯군데 다녔고, 중학교도 네군데 다니고 어린 나이에 서울에서 대전 갔다가 대전 갔다가 독일 미국 이렇게 왔다갔다 하고, 떠나고, 한곳에서 사람들에게 익숙해지려고 하면 또 새로운데 가고 해서 가끔은 제가 2년정도 한 곳에 있으면 이렇게 불안한 거예요. "엄마 혹시 이사갈 계획 짜고 있는 건 아니지?" 이러고 되게 불안해 하고 그랬어요.  그렇게 계속 돌아다니던 중에, 로드아일랜드에 오게 된 건 저에게 정말 가장 큰 축복이었어요. 개인화된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도 이곳이었고, 저희 부모님께서 하나님을 만나게 된 보스톤 이 근처셨거든요.

부모님 얘기를 하면, 부모님도 마찬가지로 유학을 오셔서 그때 처음 신앙생활 하시고, 교회에서 만나셨어요. 그래서 두 분은 거의 새로 시작하는 관계였지만 믿음 가운데서 가정을 꾸리셔서 제가 모태신앙으로 태어나게 됐어요. 그래서 아주 어린 나이서부터 많은 훈련을 시키셨던 것을 이제와서 감사하게 생각해요. 제가 큐티 세미나 준비를 하면서 큐티에 대해 생각을 했는데, 어렸을 때 어떻게 했었는지 기억이 안나는 거예요.  그래서 어제 엄마한테 전화해서
"난 어떻게 큐티를 했었지?"
하고 여쭤봤어요. 그랬더니 저도 까먹었었는데 엄마가 하시는 말씀이
"너는 한글을 큐티하면서 배웠어."
이 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이걸 말씀을 그대로 받아적고, '하나님 닮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한 마디 정도 ... 제가 기억이 나는게 노트를 이렇게 다 보관하고 계시더라구요. 네모네모 칸 하나씩 글자쓰는 거 그때부터 ...  한글을 깨우친 게 그런 계기였는지 저는 잊었었는데 "그렇게 훈련을 많이 시키셨구나, 참 감사하다" 하고 느꼈어요.

어린 나이에 부모님께서 열심히 교회 생활 하시다 보니까 부모님의 후광을 받고 있다고 할까, 교회에서는 굉장히 모범 어린이었어요. 그런데 알고 보면 몹쓸 어린이였어요. 수련회가서 "소리지르세요" 하면 제일 크게 소리 질러야 되고... 그래서 저는 하루 지나면 목소리 다 쉬었고, 뮤지컬 한다고 하면 꼭 주인공 해야 되고 성경 퀴즈하면 꼭 일등해야 되고 이런 되게 못된 아이였어요. 그런데 남들이 보면 '참 열심인 아이구나', 저도 보면 스스로 난 괜찮은 아이라고 (웃음)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스운데, 그렇게 신앙생활을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하면서 계속, 다른 5분 스피치 할 때 계속 나왔던 얘기지만, 보링하게 그렇게 커가다가 자연스레 학생부가 되니까 회장도 하고 계속 계속 교회의 일부가 돼서 생활을 했던 것 같아요.

근데 역시나 위기가 찾아오는데, 저에게 위기는 다행히 말씀 자체에 대한 건 위기가 아니었어요. 제가 이렇게 단순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이렇다' 하면 '아 그런가보다' 하고 항상 믿어왔던 것 같아요. 제가 공부할 때도 물리 이런 건 너무 어려웠고, '왜?' 이런 건 정말 어려웠고, 역사같이 '그렇대' 그러면 '아..' 이렇게 외우는 건 잘했거든요. 나름대로 착학 큰 딸이었고, 말 잘들으려고 노력했고 교회에서는 열심인 아이였는데, 남자가... 제 인생에 들어오면서... (모두들 열광적 반응) 굉장히 큰 위기가 왔어요. 나름대로 순수했던 저에게, 먼저 여성의 눈을 뜬 한 남자가 너무 적극적으로 들이대면서 어린 고등학교 나이의 호기심에 교회 친구랑 이렇게 만나게 됐어요. 참 지금 생각해 보면... 나중에 커서 제 동생이 얘기하는데 그 당시 언니가 문방구 나간다고 하면 자긴 너무 마음이 힘들었대요. 문방구 갔다온다는 사람이 한시간 반동안 안돌아오고, 와서는 요만한 펜 하나 사들고 오면 동생은 "동네 문방구 다 닫았어?" 그러고... 자기는 너무 마음이 힘들었다고 그래요.

엄 마나 아빠가 금요일 구역예배를 가시면 그 애도 교회 친구여서 그 부모님도 또 금요예배 가시니까 그 시간에 맨날 서너 시간동안 전화를 했던 거예요. 그러면 엄마가 구역예배 도중에 또 전화를 하세요. 원래는 안하시는데... 얘가 전화하는 거 아니까, 그래서 막 관리아저씨한테 전화해서 전화 끊으라고 그러고, 윗집 아줌마 내려와서 전화 끊으라고 그러고, (모두 웃음) 정말 그렇게 난리를 치면서 그렇게 했었는데 또 그 때 달인이 된게 전화벨 울리기 전에 받는 거 있잖아요. (*) 그렇게 남자가 들어오면서 약간의 방황이 시작이 됐어요. 그때 , 지금와서 깨닫는게, 그때 친했던 친구들 중에 남자 세명이랑 여자 세명이 있었는데 얌전하게 지냈던 애들은 다 시집갔던 거예요. 그때 내가 얌전하게 지냈으면 내가 이러고 있지 않는 건데 올해 재욱오빠랑 같은 날 또 친구 하나가 가더라구요 시집을... 시간은 달라요 다행히... 그때 그 남자친구는 아직도 교회친구로 잘 지내고 있으니까 가서 "야 너땜에 내가 시집을 못간다" 이렇게 한탄하고 그랬죠.

대학교 와서도 마찬가지로 이렇게 일이 생겼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되게 잠이 많아서요, 어려서부터 막내동생이 가족들 중에 큰언니를 소개를 하면, "언니는 일생을 잠으로 보낸다" 이러고, 심지어 엄마까지도 "너는 가끔 깬다" 이렇게 말씀하실 정도였어요. 대학가서 인간이 되면서, 밤새고 이럴 수 밖에 없게 되니까, 학업을 해야 되니까, 자연스럽게 교회에 토요일에 나와라 이런 게 너무 싫은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제 나이 또래와 교제는 안하고, 주일날 가서 나름대로 예배는 드리고, 썬데이 스쿨은 하고 했지만, 교제가 끊기고 공급이 없으니까 사람이 신앙적으로 자라지 않더라구요. 그렇게 되면서 사람들이 내 얼굴만 보면 "야 토요일날 빨리 나와" 라고 얘기할 것 같아서 예배 끝나자 마자 도망가고 그랬어요. 사람들 피해 다니고, 그렇게 하니까 점점 엄마 아빠의 딸이라는 것도 부담스러워지고, 알고 있던 사람들도 부담스러워지고, 자연스럽게 신앙이 자라지 않았던, 어쩌면 훨씬 더 내려갔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당시도 마찬가지로 이 남자 때문에, 믿지 않는 친구였어서 제가 기도할 때마다 하며는 "얘는 아니야" 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것 같아서 기도를 할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하면서 제 신앙도 같이 성장도 아니고 멈춰있는 것도 아니고 계속 내려갔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근데 참 웃긴 게 이제는 "내가 그때 참 신앙적으로 슬럼프였구나"라고 아는데 그 당시는 제가 몰랐어요. 교회는 나가는데 신앙적으로 민감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내가 할 건 다 하고 있고 습관적으로 하는 거 다 하고 있고, 아침 성경도 다 읽고 하는데 뭐가 나쁜가"라고 생각하고, 엄마가 그런 생활에 대해 뭐라고 하시면 기분 나빠하고, 사람들이
"너 교회 안나와?"
이러면
"나 일요일날 나가는데 무슨 소리냐?"
이렇게 황당해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하나님께서 리즈디로 불러주시면서, 참된 개인화된 하나님을 보여주시고, "교제 를 하고 싶었다, 너를 정말 기다렸다"라고 하시는 것을 여기 첫 예배할 때 느꼈어요. 이제는 누구의 딸이나 누구의 친구, 어떤 사람, 이런 나를 따라다니던 타이틀에서 벗어나서 이제는 주님의 딸 사라로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됐어요. 이 교회에서 제가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고, 제 2의 성장기처럼, 오랜 기간동안 갖고 있던 어린아이 같던  믿음을 새로 다시 성장시킬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됐던 것 같았고... (종이 넘기는 소리)

그리고 점점 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저의 그 목적을 찾게 됐어요. 석사 공부를 하면서, 하나님을 만나니까 저절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더라구요. 내가 나를 지은 사람한테 물어보니까, 그 지은 분이 "넌 이런 목적 때문에 지어졌어"라고 답을 점점점점 알게 하시는 것 같아요. 엄마아빠가 "우리 가정예배 드려야 돼" 라고 하시면서 가져오셨던 책들 중에 하나가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이라는 책이었는데, 이 책이 여기 와서 기억이 났는데, 저희가 나눴던 내용이 하나도 기억이 안나는 거예요. 근데 그 내용이 궁금해 진 거예요.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은 정말 어떤 식으로 살아야 하는가 그걸 어려서 그렇게 공부했는데 몰랐던 거예요. 그래서 그 책을 새로 보면서, 아 이렇게 기도하는 거구나, 아  이렇게 성경 읽는 거구나 라는 걸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새로 새로 보면서 복음에 대해서 다시 공부하고, 새로 기도하는 건 뭔지 성경 읽는 건 뭔지 다시 찾는 그런 계기가 됐어요.

여기 와서 제가 받았던 이런 소망이나 비전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면서 저에게 가르침이란 것이 제게 큰 인생의 소명인 걸 알게 하셨어요. 엄마가 그러시는데, 어렸을 때도, 동네 아이들을 모아놓구선 제가, 한글을 먼저 깨우쳤던 똑똑한 아이들이 있었는데도, 한글도 못깨우쳤던 내가,
"너네가 출석 써"
이러면서 선생님의 dignity를 잃지 않고 가르쳤다는 거예요. 그래서 엄마의 말씀을 듣고 신기하다고 생각했었어요. 근데 제가 대학교 가서 처음 디자인을 시작하면서, 디자인이 아닌가, 하고 고민했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때 막 고민하다가, 그때 내가 딴 걸 했다면 뭘 잘했을까, 생각했어요. 그때 내가 선생님 했으면 참 잘했을 텐데 라고 생각을 하는데, 주위에서 이렇게 "그래 너는 병아리 반이다" 이러면서 부추기니까 막 후회를 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막 고민을 하다가 그때 제가 생각했던 게, 디자인을 내가 시작하게 된 것도 우연하게 된 게 아니라 뜻이 있었을 텐데, 디자인이라는 이걸 도구로 사용해서 교육을 해야 겠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여기 와서 논문을 그런쪽으로 쓰게 되고, 회사를 알아보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만나야할 사람들을 만나게 하시고, 또 그 사람들을 통해서 내 꿈이었던 "learning toys"라는 이야기를 듣게 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온전히 나를 인도하시는 구나 확신을 갖을 수 있었어요.

함께 카이스트에서 공부했던 또래 친구가 논문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나도 그런것 받고 싶다, 왜 나는 어린이, 교육 이런것에 관심이 있어서 그들과 다른 길을 걸어가야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었죠. 하지만 차차 하나님께서 나를 나답게 특별하고 아름답게 만드시고, 창조한 목적이 무엇인지를 창조주 하나님께 물어보고 알아가는 것이 내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다가오는 2007년 한해동안, 하나님께서 또 어떤 길을 보여주시고 인도하실지 기대가 되요.



정리자 주: (*) 다른 가족들한테 들키기 전에 전화받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