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분 스피치: 최윤영
정리: 김기오
안녕하세요, 먼저 제 이름은 최윤영이구요, 어떻게 오자마자 여기서 5분 스피치를 맡게 됐는지... 제대로 준비를 못했어요. 그냥 제 소개랑 자라온 과정을 간단하게 말씀드릴께요.
저는 그냥 너무 평범하게 자라 왔어요. (모두들 웃음) 그리고 보링하진 않았어요. (다시 모두 웃음) 그래도 여기 계신 분들하고 다르다면, 하나님을 접한지 얼마 안 됐어요. 가족이 부모님 두 분이 다 원래 종교가 없으셨고,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가본적도 없었고, 다른 종교를 가지지도 않았었어요.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는 불교이시긴 했는데, 저희 부모님은 종교가 없으셨어요. 그래서 종교인의 생활이 어떤지 전혀 모르고 자라왔고, 어렸을 때부터 그냥 순탄하게 부모님한테 반항한 적도 없고 일탈한 적도 없고, 너무나 순탄하게 살아왔고, 공부도 그냥 잘한다는 소리 듣고 자라왔고, 그냥 계속 그렇게 자라왔어요. (희신: 평범했대매...)
참고로 저희 집은 부모님 계시고, 딸 셋인데, 전 둘째예요. (안나: 둘째가 젤 성격이 좋다는데...) 저희 아버님은 독자로 자라셔서, 저희 집은 아들이 필요했었어요. 제가 딸 셋 중에 둘짼데, 첫째는 아빠가 기대를 많이 하신 자식이라서, 언니한테는 항상 엄하셨어요. 저는 둘째도 딸로 태어나서 제가 태어났을 때는 아빠가 실망을 하셨대요. 그래서 제가 태어났을 때는 또 딸이라고 병원에도 안오셨다고 그러셨어요. 그래서 그 이후에, 저에 대한 미안한 감정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세 딸 중에서 저를 제일 편애하세요. 그래서 아빠한테 사랑을 많이 받았지만, 사춘기를 겪으면서 아빠와 사이가 별로 안좋았어요. 딸이고 사춘기고 하다 보니까 늘 엄마와만 가까웠지, 아빠랑은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할지를 몰랐어요. 그래서 온 가족이 엄마한테만 매달려 있었어요. 아빠는 외로우셨고, 항상 늘 바쁘셨고, 워낙 출세욕 같은 욕심이 많으셔서 아빠는 늘 집에 안계셨어요. 그래서 더더욱 아빠와는 관계가 멀 수 밖에 없었어요.
그러다가, 저희가 다 대학가고 자라서 제가 대학교 2학년쯤 됐었을 때, 아빠가 많이 편찮으셨는데, 그게 저희 가족에게는 그게 큰 첫번째 위기였던 것 같아요. 지금은 아주 오래전 얘기긴 한데, 그 당시는 대학생인 저였지만,제가 너무 많이 어렸기 때문에 그게 위기인지도 몰랐어요. 아빠가 병원에 계시고, 엄마도 항상 병원에 계셔야 되는 그런 상황이어서 그 아빠가 쓰러지신 걸 계기로 해서 저희 가족이 모이게 됐어요. 그리고 대화할 기회가 많이 생겼고, 일단 절실하니까, 아빠가 아프신 게 빨리 나으셔야 하니까, 절실한 마음에 가족이 일단 모이게 되고, 대화를 많이 하게 됐는데, 그때 저희를 전도해 주신 분이 계셨어요. 저희 이웃분이신데 교회를 나가라고 그러시더라구요. 그때는 잘 몰랐는데, 그렇게 해서 아빠 아프신 걸 계기로 해서 교회를 나가게 되고, 기도를 하게 됐어요.
대학교때 예수님을 처음 알게 된 건 아니예요. 저는 고등학교때 제가 미션스쿨을 들어갔었기 때문에, 교회를 나가본 건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였어요. 그때는 기도를 한다든지 회개를 한다든지 하는 것들은 몰랐어요. 학교에서 늘 찬송을 듣고, 늘 성경을 보고 기도를 하고 주기도문을 외우고, 사도신경을 외우고, 이런 것 밖에 없었어요. 그때 복음을 처음 접하긴 했는데, 어떻게 기도를 하고 하는 걸 전혀 몰랐어요. 그냥 단지 찬송이 좋고, 학교에서 학생들을 위해 기도를 해주고 그런 게 좋았어요. 그렇게 지내 오다가 제가 절실하게 정말 주님을 만난것은 대학교 2학년때, 아빠가 아프실 때부터였는데, 하지만 지금 생각을 해 보면, 그 당시도 아빠가 아프셨을 때, 그때 기도드린 건 그냥 절실한 마음에 아빠를 낫게 해 주세요, 그렇게 기도를 드린 것 뿐이어요. 다른 감사의 기도, 회개하는 것도 전혀 모르고, 그냥 아빠와, 우리 가족을 위해서 기도드리기만 했는데, 그래도 그걸 들어주셨던 것 같아요. 많이 은혜를 입었고, 세월이 지나면서 지금은 너무나 아빠가 많이 회복되셨고, 그걸 계기로 해서 가족들도 대화도 없고 항상 아빠는 특히 외톨이셨는데, 아빠가 아프신 걸 계기로 해서 아빠와 많이 대화하게 됐고, 아빠랑 사이가 좋아졌어요. 그래서 너무 감사드리고...
그렇게 쭉 지내오다가 이게 또, 아빠가 많이 나으시고,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신앙생활이 나태해 졌어요. 졸업하고 나서 취직을 하게 되니까 바빠지고, 또 세상 일에 바빠지다 보니까 교회에도 안가고, 기도도 안드리고,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일만 계속 하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사람들만 만나고, 그렇게 생활했었어요.
그때 저는 졸업하자 마자 바로 선생님이 돼서, 6년 정도 교사 생활을 했는데, 처음에는 그게 천직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학생들 가르치고, 애들하고 있는 게 천직이라고 생각해서 너무 좋았는데, 제가 그걸 착각을 했던 것 같더라구요. 애들을 가르친다는 게 단순히 학원 강사처럼 생각을 했나 봐요. 아이들한테 학문을 가르치고, 내 말을 애들이 듣는 것, 내가 하는 말을 아이들이 따라하는 것을 보고 희열을 느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이건 아니라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학교는 학원이랑 다르게 아이들에게 어떤 지식을 전달하는 개념 보다는 학생들을 인도하고 좋은 길로 인도하는 게 더 중요한 역할이었어요. 그걸 모르고 선생님이란 직업을 덥썩 시작했었어요. 그때 일하던 학교는 좀 어려운 환경의 애들이 많은 학교였어요. 그래서 지식을 전달하는 것보다, 애들을 좋은 방향으로 선도하는 역할이었는데, 제가 너무 많이 모자랐어요. 학교다니면서 교회도 안가고, 제가 너무 모자란데, 그 애들을 제가 이끌려니까, 너무 부족한 것을 느꼈어요. 스스로 "너는 정말 애들을 가르칠 그릇이 못된다"는 고민을 했었는데, 그런 고민을 주변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털어놨을 때, 그분들은 너무나도 세속적으로 "네가 걱정할 필요 없다", "애들한테 너무 얽매이지 말고 그냥 네 할일만 해라", "애들은 알아서 잘 큰다" 그러시더라구요. 그래도 저는 제 스스로가 만족이 잘 안됐어요.
특히 저희 반에 제가 그만두기 1년 전 쯤에 제가 아끼던 학생이 하나 있었어요. 그 학생은 상당히 환경이 안 좋아서, 부모님이 안계셔서 다른 분 밑에서 자랐는데, 그 분이 무속인이셨어요. 그래도 그분이 그 학생을 키워준 것이 감사했죠. 하지만 워낙에 환경이 안좋고, 무속인이시다 보니까 아이를 어떻게 교육을 시켜야 하는지도 모르시고, 학교도 안보내려 했었어요. 그래서 그 학생을 1년동안 제가 학교로 오게 만들고, 밖에서 나쁜 일을 할 때 데리고 오고, 가출을 할 때 데리고 오고, 1년동안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도 제가 걔를 사랑하고 예뻐했기 때문에 걔를 인도를 하고싶었어요. 근데 그게 제 욕심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학생에게 단순한 열정에, 단순히 감정적으로, 책임감에 불타서, "내가 얘를 이끌어야지, 학교로 데리고 와서 공부도 잘 가르치고, 얘를 내가 성공을 시켜야지" 라는 제 욕심만으로 다가갔었어요. 그래서 너무 힘들었는데, 결국은 그렇게 못하고 제가 중도에 포기를 했어요.
당시 성숙하지 못한 맘에 학생에게 배신감도 느꼈고 제 자신에게 한계도 느껴서 더 이상 감당할 용기가 안 났기 때문에, 결국 학교 학생부 담당자에게로 책임전가를 해버렸어요. 그 이후로 저는 교사생활의 큰 슬럼프를 겪게 되었고 결국 쉬고 싶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에 학교를 쉬고 퇴직했어요. 아마 이때가 아빠 아프신 이후 2번째로 큰 위기였던것 같아요.
아빠 건강과 가족에 대한 기도는 많이 했지만 정작 제 자신이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가까와 질 기회는 없었는데, 그런데 하나님께서 저를 잠깐 쉬게 하시고 저를 부르시더라구요. " 윤영아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때 조금씩 조금씩 하나님과 가까와질 수 있어고, 제가 알지 못했던 달란트인 요리를 할 수 있게 해 주셨고, 결국 하나님께서 저를 맨하탄을 거쳐 프로비던스까지 보내주셨어요. 그 은혜에 너무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