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는 낮아짐으로부터


스스로 높아지고자 하는 교만은 마귀의 원죄입니다. 이사야 14 13절과 14절에 마귀의 말이 나옵니다: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마귀는 하나님이 만드신 중력의 법칙과 정반대로 하늘로 오르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겠다고 공언합니다. 마귀가 타락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은 이유도 교만이었습니다


잠언 6 16절로 19절에 보면,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의 목록이 나옵니다: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육칠 가지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라.” 여기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 제1번이 무엇입니까? 교만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교만하여 진다면, 우리도 마귀처럼 타락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낮아질 때에,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낮아질 때에, 주님처럼 평화를 나누어주는 사신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평화란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화평입니다. 그 하나님과 인간의 화평은 어떻게 성취되었읍니까? 이사야 선지는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린다”고 말씀합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평화는 주님의 낮아지심을 통해서 주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실 때에 비천한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하늘의 영광과 존귀의 관 대신에 가시로 된 면류관을 쓰셨습니다. 왕들이 입었던 화려한 홍포 대신에 멸시의 홍포를 입으셨습니다. 왕권을 상징하는 홀 대신에 조롱의 갈대를 손에 드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죄인의 화평을 위하여 피흘리고 죽는 제물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부끄러운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낮아지셨는데, 우리가 낮아지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9장에서 자신이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었고, 약한 자들을 얻고자 약한 자와 같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먼 훗날 오실 메시야를 예언하면서, “그 이름은 평강의 왕이라”고 하였습니다 ( 9:6). 예수님은 평화의 왕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에, 천사들이 이렇게 찬양하였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 2:14).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 깊은 바닷 속같은 평화가 이 성탄에 여러분에게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낮아짐을 통하여 주님의 평화가 이웃에게 전파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