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를 데려오라



창세기 24장은 아브라함이 자신이 떠나온 고향인 메소보다미아로 종을 보내서, 자기 아들 이삭의 아내를 데리고 오는 내용입니다. 구약을 해석하는 방법론 가운데 모형론 -Typology- 라는 것이 있습니다. 구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창세기 22장에는 독생자를 제물로 희생시키는 아브라함의 모습과 묵묵히 순종하는 이삭의 모습 속에서, 독생자를 속죄의 제물로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의 모습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24장도 그처럼 기독론적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곧 종에게 이삭의 신부를 데리고 오라고 하는 아브라함의 명령은, 그리스도의 신부를 데리고 오라는 하나님이 명령으로 우리에게 적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와 같다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인 것입니다그래서 고린도후서 11 2절에 보면,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자신의 직업을 중매쟁이에 비유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므로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라고 중매하는 것입니다.


전도를 중매로 볼 때에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신부를 데리고 오는 일은 영광스럽고도 막중한 임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주인 아들의 신부를 데리고 오는 일은 경사스럽고 기쁜 일이었습니다. 또 그런 임무를 부여 받은 종에게는 영예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인 집의 앞 날을 좌우하는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했습니다. 더구나 이삭은 약속의 자식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21:12).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이삭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이삭의 결혼이 중요하였던 것은, 결혼은 일륜지 대사이기 때문 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다는 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의 신부를 데려오는 일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는, 종을 떠나보내기 전에 자기의 환도뼈 밑에 손을 넣게 하고 엄숙히 맹세를 시키는 모습에서 잘 드러납니다.


이러한 모든 사실들은 하나님이 그 종들에게 그리스도의 신부를 데리고 오라고 명하실 때에도 마찬 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이루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신부를 데려오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천국의 기업을 상속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결혼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근본적인 신분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천국 백성이 되는 영예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천국의 모든 보화와 영광과 기업을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신부를 중매하는 일은 영광스럽고 기쁜 임무일 뿐 아니라, 한 사람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 짓는 막중한 임무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종에게 만일 여자가 너를 좇아 오고자 아니하면, 너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으십니다. 결과는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가라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좇아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종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것입니다. 종의 책임은 가서 권하는 것입니다에스겔서에 보면, 파수군의 임무가 나옵니다. 파수군의 임무는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는 것입니다. 바로 전하면 책임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듣고도 돌이키지 않는 것은 파수군의 책임이 아닙니다. 그러나 전하지 않는 것은 파수군의 책임입니다. 중매쟁이의 임무는 가서 신랑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거두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를 모으는 기관입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많은 신부를 데리고 왔는지, 그 숫자에 대하여 책임을 물으시지 않습니다. 얼마나 부지런히 중매쟁이로 뛰었는가를 물으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