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과 방언 (고전 14:1-5)

 

고린도전서 1426절에 보면, 고린도 교회가 모여서 예배드릴 때에, 찬송과 말씀이 있었고, 계시 (예언)과 방언 그리고 방언의 통역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다른 사람이 알아 듣지 못하는 방언은 예배에 도움이 안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방언을 통역할 사람이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라고 28절에서 말씀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예배 시간에 무질서하게 방언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순서와 질서를 지켜서 예언과 방언을 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위하여 하라고 26절에서 말씀합니다.

 

바울은 성령의 은사를 사용할 때에, 사랑의 방법으로 해야 한다고 13장에서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141절에서 사랑을 구하라, NIV 성경에 보면, follow the way of love, 사랑의 방법을 따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3절로 5절에서는 은사는 교회에 덕을 세워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영어 성경에 보면, edify라는 단어로 번역하는데, to build up이라는 뜻입니다.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하면 bodybuilding이고, 교회를 하나님의 성전으로 말하면 edificatiom (oikodome = oikos + demo 건축)인 것입니다 (Wiersbe).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예언과 방언에 대해서 말씀하는 바는 이것입니다. 방언은 통역이 없으면 다른 사람들이 못 알아듣기 때문에, 교회에 덕을 세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알아듣는 말로 하는 예언은 3절 말씀처럼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기 때문에, 방언보다 더 우월한 은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언도 좋은 은사지만,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 1절에서 말씀하며, 5절에서는 너희가 다 방언하기를 원하지만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한다고 말씀합니다.

 

초대 교회에서 선지자는 교회의 공식 직분이었습니다 (고전 12:29, 2:20, 4:11). Before the Scriptures were complete, God’s inspired, authoritative message was communicated to the early church through the lips of recognized prophets. The Prophet was much needed in the first century because the New Testament was not yet complete. So the prophets, together with the apostles, formed the foundational ministries of the church of the first generation (Swindoll).

 

그러나 신약 성경을 보면, 선지자의 위치가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Carson 교수는 신약의 선지자들이 구약의 선지자들의 권위를 갖지 못했음을 설명한 Wayne Grudem의 책 내용을 소개합니다 (The Gift of Prophesy in 1 Corinthians).

 

먼저, 하나님의 계시를 전하는 구약 선지자들의 기능을 신약에서는 사도들이 담당하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선지자들의 글이 성경으로 기록되었지만, 신약에서는 사도들의 글이 성경으로 기록되었던 것입니다. 사실 신약에는 아가보 외에는 선지자들의 이름도 잘 나오지 않습니다. 아가보도 하나님의 큰 구속 사역을 예언한 것이 아니라, 기근이 있을 것이라든가, 혹은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잡힐 것이라는 등의 비교적 중요치 않은 예언을 하였습니다 (21:10).

 

또한 고린도전서 1429절에 보면, 예언은 다른 사람들의 분별 (evaluation, judgment)을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37절과 38절에서 바울은 선지자들에게 내 명령을 준수하라고 명합니다. 신약의 선지자들은 구약 선지자들이 가졌던 신적인 권위를 갖지 못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서는 예언이 방언보다도 인기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방언보다 예언을 사모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오늘날도 누구나 예언을 하는가,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물론 오순절 계통의 은사주의적인 신학에서는 오늘날도 예언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이 누구에게나 직통 계시를 통하여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장로교의 입장은 예언의 은사가 사도 시대 이후로 중단되었다는 중단론 (cessationism)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조직 신학 교수였던 Richard Gaffin은 은사 중단론을 설명하는 article에서 중단론이라는 단어가 오해를 불러 일으킨다고 말합니다 (What about Prophesy and Tongues Today?). 곧 중단론이라는 단어는 마치 오늘날에는 성령께서 역동적으로 역사하지 않으신다는 견해로 비친다는 것입니다. 은사 중단론은 성령의 역사가 중단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예언과 방언 등의 일부 은사가 중단되었다는 주장이라는 것입니다.

 

Gaffin교수는 사람들이 자기에게 “You’re putting the Holy Spirit in a box” 라고 비판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자신은 바람이 부는 것처럼 자유자재로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부인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the Holy Spirit himself puts his activity “in a box” 라고 말합니다. 곧 오늘 날에는 예언이나 방언을 통하여 새로운 계시를 주시지 않으시며, 오직 성경 계시를 통하여만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Gaffin 교수는 에베소서 220절의 교회는 사도와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워졌다는 말씀을 중요시합니다. 건물의 기초는 한 번만 놓는 것처럼, 사도들과 선지자들도 교회의 기초를 놓는 시기, 곧 그들의 증언이 성경으로 기록되는 시기에만 필요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의 계승자 디모데는 사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많은 은사주의자들도 오늘 날 사도는 더 이상 없다고 동의하므로, 그들도 중단론자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선지자들도 사도들과 함께 계시를 통하여 기초를 놓은 사람들이므로, 기초가 완성된 다음에는 더 이상 필요없는 직분이고, 오늘날 예언은 더 이상 없다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Gaffin은 바울이 통역된 방언의 계시적 기능을 인정하였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통역된 방언은 예언과 같은 계시이므로, 방언 역시 성경의 완성과 함께 중단되었다고 주장합니다. 만약 예언과 방언을 통한 계시가 지금도 계속된다면, 정경의 문을 다시 열고 성경을 계속 늘려 나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비중단론자들의 딜렘마라고 말합니다.

 

대표적인 은사 중단론자 중의 한 사람인 John MacArthur 목사님도 이렇게 설명합니다: 선지자의 직무에는 계시적인 측면과 비계시적인 측면이 있는데, 예언 은사의 계시적 측면은 성경의 완성과 함께 사도 시대에 끝났다. 반면에 선지자의 사역 가운데 교리적이고 실제적인 권면을 하는 비계시적인 측면은 복음 전파자와 목사와 교사에게 계승되었다.

 

그러나 같은 칼빈주의 신학자이면서도 John Piper 목사님은 자기가 방언을 못 하지만 방언의 능력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으며, 특별히 예언의 은사를 사모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파이퍼 목사님은 예언 은사의 남용과 오용으로 인한 위험을 인정하지만, 그보다 더 큰 위험은 비은사주의 교회들이 빠지는 메마른 영성의 위험이라고 말합니다.

 

미국에서 예언 사역을 하는 IHOP (International House of Prayer) 때문에 논란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2011 3월에 IHOP의 대표인 마이클 비클 (Mike Bickle)이 한국에 가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그 인터뷰한 기자가 말하기를, 너무나 뜻 밖의 대답이 많았다고 했습니다. 전혀 뜻 밖에 건전한 대답이 많았다는 뜻입니다.

 

일례로, 기자가 “예언을 하십니까?” 라고 묻습니다. 마이클 비클이 대답하기를,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고린도전서 14장에 나온 대로 사람들을 격려하는 것이 예언이라고 한다면, 나는 예언을 한다. 성경을 기초로 격려하는 말을 한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 대답은 기본적으로 맞는 말입니다. 고린도전서 14 3절은 말씀합니다: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여 안위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덕을 세우며 권면하여 안위하는 것이 예언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에 근거해서 신약 시대에 교회에서 하는 예언은 이런 것들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이 보살피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십시오, 회개하고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십시오, 끝까지 인내하십시오, 소망의 줄을 굳게 잡고 승리하십시오, 하나님이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성경을 기초로 덕을 세우고 권면하며 안위하는 예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설교가 예언입니다. 복음 증거가 예언입니다. 권면하고 안위하여 덕을 세우는 권면이 예언입니다. 마이클 비클도 성경을 기초로 격려하는 말을 하는 것이 예언이라고 옳게 말하였습니다.

 

또 기자가 마이클 비클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음성을 매일 듣는가?” 마이클 비클이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일생에서 하나님이 한 두 번 정도 직접 들을 수 있게 아주 명백하게 말씀하실 수 있다. 그러나 매번 이리 가라, 혹은 저리 가라고 명확하게 들리게 말해 주시지는 않는다. 내 경우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명백하게 들은 것은 ‘기도의 집을 하라’는 말씀 뿐이었다. 우리는 하나님 음성을 감동으로 듣는다. 직통 계시로 듣는 것은 아니지만, 이 역시 하나님의 음성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을 통해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이 크리스챤들이다. 이리 가라, 저리 가라는 특별한 음성을 듣는 것은 극히 예외적이다. 우리는 예외적인 것을 상시적인 것으로 구하며 살 수 없다.

 

마이클 비클의 이 말도 기본적으로 맞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매일 이리 가라, 저리 가라고 음성으로 들려주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령 충만한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주십니다. 목사가 축도할 때에, 성령의 감화 감동과 충만하심과 교통하심을 구하지 않습니까? 성령님은 감화 감동을 통하여 갈 길을 인도하십니다.

 

마이클 비클의 인터뷰 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내용은 이것입니다: “지난 주에 천 명이 참석하는 스태프 미팅을 가졌다. 나는 강하게 말했다. IHOP에서 일어나는 외적인 현상의 80%가 가짜일 가능성이 크다. 예언하고 넘어뜨리고 하는 것들 말이다. 그 중에서 물론 진짜도 있다. 20%. 크게 잡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진짜 성령이 임하시는 현상을 보고 배워 쇼를 하는 경우도 많다. 예언도 마찬 가지이다. 때로는 맞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아니다. 조금은 맞지만 대부분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여기서 마이클 비클 스스로 IHOP에서 하는 예언은 크게 잡아도 20% 정도 밖에 맞지 않는다고 시인하였습니다. 여기서의 예언은 성경적인 예언이 아니라, 점쟁이식 예언일 것입니다. 80% 이상이 틀리니까, 십중팔구는 틀린다는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너희가 내일 일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방언으로 예언한 하나님의 큰 일이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한 마디로 복음입니다. 신약시대의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된 하나님의 구원, 곧 복음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선지자들이 장차 일어날 하나님의 큰 심판과 구원을 예언하였습니다. 신약 시대에는 성령을 받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 이루신 큰 구원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을 구원하신다는 복음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신약 시대의 예언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은 우리가 덕이 되는 말을 해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에베소서 429절은 말씀합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예언과 방언은 말의 은사입니다.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보다 권면하고 안위하는 예언으로 덕을 세우라는 말씀은 우리 언어 생활 전체에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말을 통하여 덕을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분입니다. 성령은 성경 기자들을 감동하셔서 말씀을 기록하도록 하셨습니다. 곧 말씀은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시는 계시의 통로이며, 인간과 교통하시는 수단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인간에게도 자신을 표현하는 말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말씀하시며, 인간은 하나님께 말로 하는 찬송과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교통합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끼리도 말을 통하여 서로 의사 소통을 합니다. 말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크고 멋진 선물입니다.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계시하시고 커뮤니케이션 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멋진 능력을 인간에게도 나누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말은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이기 때문에 그만큼 타락할 위험도 큽니다.

 

에베소서 429절에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더러운이란 헬라어는 영어로 corrupt, ‘부패한이라는 뜻입니다. 곧 더러운 말이란 타락한 말을 뜻합니다. 죄악에 오염된 말입니다. 죄에 물든 말입니다. 남을 흉보는 험담이나 원망/불평하는 말, 교만한 말, 이간시키고 분쟁을 일으키는 말, 중상모략 등을 가리킵니다.

 

에베소서 429절은 그러한 타락한 말에 반대되는 것으로, 덕을 세우는 말, 유익한 말, 선한 말, 은혜를 끼치는 말을 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말로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습니다. 야고보서 3장은 인간의 혀를 큰 배의 작은 키에 비유합니다. 키는 지극히 작지만 배의 진로를 바꾸어 버립니다. 말 한 마디가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20세기 초 유럽의 어떤 작은 시골의 카톨릭 성당에서 주일 미사 중에, 신부를 돕던 altar boy가 실수로 성찬 잔을 떨어뜨려서 포도주를 바닥에 쏟았습니다. 신부는 순간 소년의 뺨을 치며, 어서 물러가고 다시는 제단 앞으로 나오지 말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이 소년은 그 뒤로 교회를 떠나 무신론자가 되었습니다. 장성하여 공산주의자가 되었고, 유명한 유고슬라비아의 티토가 되었습니다.

 

비숫한 시기에 미국의 일리노이 주의 어떤 카톨릭 성당에서 미사를 돕던 한 소년도 역시 성찬에 사용하는 포도주 그릇을 떨어뜨렸는데, 그의 신부는 이해와 동정 어린 사랑스런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조용히 속삭였습니다. "네가 앞으로 신부가 되겠구나." 이 소년은 자라서 유명한 대주교 Fulton Sheen이 되었다고 합니다.

 

잠언 15 1절은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이어서 4절에도 보면, “온량한 혀는 생명 나무라도, 패려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악한 험담이나 파괴적인 말은 입 밖에 내지 말고, 서로에게 은혜가 되는 축복과 위로, 칭찬과 격려의 말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웃에게 은혜를 끼치는 선한 말을 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회에 덕을 세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