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계와 용서 (고후 2:5-11)

        구약에 보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율법이 있습니다. 이것은 재판의 원리입니다. 상대방에게 손해를 입힌 만큼 보상을 하라는 공의의 원리입니다. 예수님은 반면에 악한 자가 오른 뺨을 치거든, 왼 편도 돌려 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개인간에 복수를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 두 가지 상반되는 원리는 적용을 바로 해야 합니다. 재판에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justice의 원리를 적용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무조건 용서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어떤 사람이 교회에 해를 끼쳤을 때에는, 징계 후에 용서하라는 지침을 말씀합니다. 그런데 징계 후에 무조건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확실한 회개의 증거가 있을 때에 용서 (해벌)하라는 것이 교회 권징 (discipline)의 원칙입니다. 예수님도 누가복음 173절에서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rebuke), 회개하거든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도 고린도후서 마지막 부분에서, “전에 죄 지은 사람과 그 남은 모든 사람에게 미리 말하노니, 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아니 하리라고 경고하였습니다 (고후 13:2). 그러므로 교회를 어지럽히고 해친 사람에 대한 용서는 무조건적인 용서가 아니라, 진정한 회개를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511절로 13절에서, 교회 안에 음행, 탐욕, 우상 숭배, 중상, 술 취함, 약탈하는 자가 있으면, 그런 사람과는 사귀지도 말고 교회에서 내어 쫓으라고 말씀했습니다. 출교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교회를 근심하게 한 자를 용서하고 사랑을 보여주라고 말씀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어느 장단에 맞추어야 할지, 당황하였을지도 모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슈가 되는 사람은 어떤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에 대해서 바울과 고린도 교인들은 서로 익히 알고 있으므로, 그 사람의 이름이나 행위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습니다. 단지 바울을 근심하게 하였고, 그 결과로 교회 전체를 근심하게 하였던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주석들을 보면, 바울의 사도성을 공격하였던 인물이라고 나옵니다. 사탄이 교회를 공격할 때에, 일차적 목표는 항상 메신저입니다. 메신저를 무너뜨리면, 교회를 무력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에게 흠집을 내면,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불신받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그 사람을 벌하였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에게서 벌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6). 그러므로 바울은 이제 그 사람을 용서하고 위로하라고 말씀합니다. 그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배려함이었습니다 (7). 그리고 그에게 사랑을 나타내라고 명합니다 (8). 너희가 내 말에 순종하는지, 용서를 통하여 증거를 보이라고 말씀합니다 (9). 그리고 그 사람에게 분노나 resentment가 생기면, 사탄은 그 틈을 타고 들어와서 교회를 공격한다고 말씀합니다 (11, 4:26-27).

        바울은 그 사람의 진정한 회개를 인정하고 용서하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누구든지 교회에 대하여 범한 죄에 대해서 벌을 받고 회개하면, 용서와 위로와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Life Application Bible Commentary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God is the ultimate judge and ultimate punisher of every person’s deeds (James 4:12). On this earth, however, the church has the responsibility to discipline members who are straying from the truth of the gospel or the righteous life that God demands. In this situation, the discipline had promoted genuine repentance. Thus, the Corinthians were to restore the man who was being disciplined, showing him genuine Christian love.

        Charles Swindoll 목사님도 이렇게 설명합니다: True repentance calls for immediate and full forgiveness. I am not talking about hasty forgiveness based on cheap repentance in the form of a flippant “Hey, I’m sorry!” I am talking about true repentance. The body of Christ has no probation period for genuinely repentant sinners. True repentance – heartfelt, not a shallow imitation – calls for restoration and celebration.

        바울은 교회에 대하여 죄를 지은 사람을 징계한 후에, 그 사람이 진정으로 회개하고 뉘우치면, 용서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성경은 하나님도 진정으로 회개하면, 용서하신다고 말씀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 (요일 1:9),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 (32:5).

        그러면 하나님은 회개한 자를 용서만 하시고 징계는 안하십니까?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용서하실 뿐 아니라, 징계도 하십니다. 대표적으로, 하나님은 다윗을 용서하시고 징계하셨습니다.

사무엘하 12장에 보면,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 나단이 다윗에게 왔습니다. 나단은 다윗에게 어떤 부자를 고발합니다. 한 성에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살았는데, 부자에게는 양과 소가 심히 많고 가난한 자에게는 암 양 새끼 한 마리 밖에 없었습니다. 그 가난한 사람은 그 암양 새끼를 심히 사랑해서, 같이 먹고 마시고 자면서 딸처럼 길렀습니다. 부자 집에 손님이 왔는데, 이 부자는 자기 집에 있는 많은 소와 양은 아까 와서 잡지 아니하고, 하필이면 가난한 사람의 하나 밖에 없는 암 양 새끼를 빼앗아 갔습니다. 여기까지 듣던 다윗 왕은 소리쳤습니다.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삼상 12:5).

이 때에 나단이 비수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당신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기를 내가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채워 주었느냐? 부족하면 더 줄 것인데, 네가 우리아의 하나 밖에 없는 아내를 빼앗고, 우리아를 암몬 사람의 칼로 죽였으니, 칼이 네 집에서 영영히 떠나지 아니할 것이며, 네 처들이 네가 보는 앞에서 백주에 강간을 당하리라” (삼하 12:7-12 요약). 그런 놈은 반드시 죽여야 된다는 다윗의 정죄는 곧 자신을 향한 정죄였던 것입니다. 나단 선지자는 당신이 바로 그 사형수입니다. 다윗에게 사형을 선고하였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즉시로 회개하였고, 하나님은 즉시로 용서하셨습니다. 13절에 보면,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대답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할 것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의 위대함은 나단 선지자 앞에서 고개를 뚝 떨어뜨리고 죄를 자백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때에 다윗의 참회하는 심경은 시편 51편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시편 51편의 제목을 보면,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저에게 온 때에”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시편에는 다윗의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정이 구구절절이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1). 저는 제가 저지른 죄를 잘 알고 있습니다 (3). 주님이 어떠한 판단을 내리시고 어떠한 벌을 주시더라도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순전하시고 의로우시기 때문입니다 (4). 하나님 저를 버리지 마옵소서,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11). 내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 죄를 씻어 주시고 깨끗게 하옵소서 (2). 나는 태어날 때부터 죄에 물든 인간이오니 (5),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주시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여 주소서 (10). 다시 한 번 구원의 감격을 회복시켜 주시고 (12),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로운 제사와 온전한 번제를 드리게 하옵소서 (19). 그처럼 구구절절이 참회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진실한 회개를 받으시고,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용서를 선언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할 것입니다.” 다윗 스스로 판결한 대로, 그의 죄는 죽어 마땅한 죄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사형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의 회개를 받으시고, 사형을 집행하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다윗은 나중에 늙어 죽었습니다. 그러나 간음죄와 살인죄에 대한 형벌로서 죽음을 당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매튜 헨리의 주석처럼, 다윗의 간음죄와 살인죄는 영원한 형벌을 받기에 합당한 것이었지만. 하나님은 다윗을 용서하셨기 때문에,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고, 하나님과 교제가 영원히 끊어지는 형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지만 ( 6:23), 다윗은 죄를 용서 받았으므로 영원한 죽음에 처하여 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14절을 보면, 하나님이 다윗을 용서하시면서도 징계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But) 이 일로 인하여 여호와의 원수로 크게 훼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의 낳은 아이가 정녕 죽으리니다.” 말하자면, 다윗의 죄 때문에 하나님이 불신자들로부터 조롱을 받으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윗 때문에 하나님이 훼방 거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시라는 명예를 지키시기 위하여, 네 아들을 죽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10절로 11절에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선포하신 징계의 내용들 나오는데, 그것들은 다윗의 생에 속에서 그대로 다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은 즉,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여호와께서 또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네 집에 재화를 일으키고, 내가 네 처들을 가져 네 눈 앞에서 다른 사람에게 주리니, 그 사람이 네 처들로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그 모든 징계는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사무엘하 13장에서는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이복 형제 암논을 죽입니다. 그리고 사무엘하 18장에 가면, 압살롬도 요압의 칼에 맞아 죽습니다. 다윗이 우리야를 죽이려고 사용하였던 요압 사령관이 다윗의 아들을 죽인 것입니다. 또한 사무엘하 16 22절에 보면, 압살롬이 지붕 위에 장막을 치고 온 예루살렘 주민들이 보는 가운데 아버지 다윗의 후궁들을 욕보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죄를 용서하시면, 죄에 대한 징계도 거두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용서하시고도 징계하십니다. 스펄쳔 목사님은 그 점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부터 죄를 제거하시는 것이다.

내가 과거에 지은 죄는 용서 받으면 없어지지만, 내 속에 있는 죄성은 여전히 없어지지 않고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그 죄성까지도 정화시키시는 것이기 때문에, 징계를 통하여 우리의 죄 짓는 버릇을 고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과거에 지은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보다 훨씬 더 크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고난의 용광로와 불 같은 징계를 통하여 성화시키신다는 것입니다.

사무엘하 7 14절로 15절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 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히브리서 12 6절로 8절도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어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아들이 아니니라.

이어지는 히브리서 12 10절은 징계의 중요한 목적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하나님이 아버지의 사랑으로 주시는 징계는 죄성을 태워서 깨끗게 하며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에 참예케 하십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도 그의 유익을 위하여 징계를 내리셨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다윗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이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윗을 거룩한 성군으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얼마나 거룩하시고 죄를 미워하시는 분이신지를 철저히 깨닫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James Boice 목사님은 다윗을 징계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게 적용하였습니다: God will break your life into little pieces, until you learn what kind of God you are dealing with, and until you come to appreciate the One who has called you to be His own. 하나님은 그 자녀들에게 징계를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가르쳐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십니다.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사생자들에게는 아무리 죄를 지어도 징계를 내리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성화시키시기 위하여, 고치시기 위하여, 나를 아버지의 사랑으로 다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죽어 마땅한 죄인을 심판하지 않으시고 용서하시며, discipline을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닮아가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징계에도 감사하며 순종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죄의 결과를 뒤에 남기는 인생이 아니라, 의와 평강의 열매를 남기는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