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 (고후 10:1-6)

 

고린도후서 10장 오늘 본문부터 마지막 13장까지는 불순종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사랑장이라고 불리는 고린도전서 13장을 기록한 사도 바울이 어찌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라고 생각될 정도로 냉혹한 내용입니다. 그래서 어떤 주석가들은 고린도전서와 후서 중간에 디도를 통하여 보냈다고 하는 severe letter (혹독한 편지)의 내용을 여기 다시 부록처럼 붙였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고린도후서 10장에서 13장의 내용은 고린도 교회에서 바울의 사도적 권위에 순복하지 않았던 rebels (Wiersbe), 곧 반항 세력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그들은 유대주의 거짓 교사들에게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은 그 교사들을 고후 1113절로 15절에서, 거짓 사도, 궤휼의 역군, 사단의 일꾼 등으로 부릅니다. 그들은 알고 그랬는지 모르고 그랬는지, 사단의 도구로 교회에 분란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Vernon McGee 목사님은 그들을 고린도 교회의 minority로 분류합니다: The majority of the church respected the authority of Paul. Then was a minority who opposed Paul and rejected his authority. It would seem that in the first nine chapters he is addressing the majority. In chapters 10, 11, and 12 he is addressing the minority. It is like changing from daylight to darkness.

 

그처럼 고린도 교회의 소수의 순복치 않던 사람들 (critics)은 바울을 헐뜯었습니다. 복음의 메시지가 불신받도록 메신저를 공격하는 것이 사단의 전략이라고 MaGee 목사님은 설명합니다: They want to degrade the man who teaches the Word of God. The Devil is very clever in this matter. Right now the Devil does not seem to be attacking the Word of God. So what does the Devil do? He attacks the reputation of the man of God who is preaching the Word of God. This is the way he gets in. He tries to discredit the man. That is exactly what happened to Paul. That is the Devil’s method.

 

그러면 그들은 구체적으로 바울을 어떻게 깎아 내렸는가? 많이 있었겠지만, 오늘 본문에 두 가지가 나옵니다. 첫째는, 1절에 자신에 대한 비방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sarcastic한 표현대로, 바울은 대면하면 겸비하고, 떠나 있으면 담대하다는 것입니다. 같은 내용이 9절에도 나옵니다: “저희 말이 그 편지들은 중하고 힘이 있으나, 그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 하니.”

 

쉽게 말해서, 바울은 종이 호랑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보낸 편지를 읽어보면 호랑이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 만나보면 외모도 빈약하고 말도 잘 못 하는 별 볼 일 없는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편지에서는 자기가 대단한 사도나 되는 것처럼 준엄하게 꾸짖고 하는데, 실제 만나 보면 전혀 사도의 권위가 없는 약한 인간이다, 이렇게 헐뜯었습니다.

 

두번째 비난은 2절에 나오는 것처럼, 바울이 육체대로 행하는 자라는 것이었습니다. “육체대로 행한다” (walked according to the flesh) 라는 구절을 LABC“live by the standards of this world”로 번역하였고, BLT“act from human motives”로 번역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자기 야망과 탐심을 따라서 행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속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Charles Swindoll 목사님은 아마도 예루살렘 구제 헌금도 바울이 착복했다는 소문을 냈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Jerusalem Relief Fund = moneymaking scam).

        

이 육체 (flesh) 라는 단어가 3절과 4절에도 계속 나옵니다: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RSV 성경은 여기 나오는 flesh (육체)를 모두 world로 번역하였습니다: “Though we live in the world, we are not carrying on a worldly war, for the weapons of our warfare are not worldly.” 우리의 싸움은 세상 사람들의 분쟁과 차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LABC3절의 육체대로 싸우지 않는다는 구절을 “we don’t wage war with human plans and methods” 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인간적인 계략과 방법으로 싸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4절에서 말씀하는 육체에 속한 병기로 싸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수단, 세상적인 방법, 육체에 속한 무기 등은 다 같은 뜻인데, 무엇을 가리킬까요? 돈으로 이기려는 자세, 정치적 계략으로 이기려는 자세, 회유와 협박 그리고 타협으로 이기려는 자세, 술수와 속임수로 이기려는 자세, 등을 가리킵니다 (LABC).

 

그러한 방법으로는 마귀의 견고한 진을 파할 수 없습니다. 마귀가 만들어 놓은 견고한 진이란 무엇인가? 5절에 나오는 것처럼, 그것은 이론혹은 생각의 철벽입니다. LABCproud argumentrebellious ideas로 번역하였습니다. 교만한 생각과 불순종하는 마음의 벽이라는 뜻입니다. Warren Wiersbe 목사님은 그것을 ‘mental walls’ 라고 불렀습니다. 로마서 1216절 말씀처럼, 스스로 지혜있다고 생각하는 교만을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Charles Swindoll 목사님은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In Biblical days, cities constructed defense to protect them from enemy invasion. These included fortresses, elevated places with lookout towers, and lofty, sturdy walls to prevent invaders from gaining easy access. The image of strongly fortified city stands at the fore of Paul’s mind as he compares the spiritual battle with an earthly city siege.

 

The “fortress” is our mind. “Speculations” represent the walls built around that fortress. Thus, the presuppositions, biases, and preconceived notions can shield the mind from the invasion of the truth. Not until the Lord penetrated that thick wall of defense could Paul hope to attain a victory over the hearts and minds of the Corinthian Christians. They were kept captive under the influence of a handful of manipulative, deceptive false teachers doing everything they could to keep Paul outside the wall they had constructed.

 

하나님의 강력한 무기는 그 모든 교만한 생각들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한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에게 불복종하는 것은 곧 그리스도에게 불복종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신이기 때문입니다. 사신은 보내심을 받은 자입니다. 사신은 보낸 자의 권위를 갖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신된 바울의 권위에 불복종하는 것은 곧 그리스도의 권위에 불복종하는 것입니다.

 

지상의 교회는 전투하는 교회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처럼, 교회는 마귀의 견고한 진을 파하는 전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의 견고한 진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무너지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강력한 무기로만이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 하나님의 강력한 무기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말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해답을 에베소서 6장에서 얻습니다: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6:11). 이어지는 12절은 우리의 싸움이 인간들과 하는 싸움이 아니라, 악한 영들과의 싸움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6:13).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6장에서 전신갑주에 꼭 있어야 할 여섯 가지를 말씀합니다. 진리의 허리띠, 의의 흉배, 복음의 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그리고 성령의 검입니다.

 

먼저, 진리로 허리띠를 띠라고 말씀합니다. 진리로 마음의 허리띠를 질끈 동여매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마귀는 거짓의 아비로서 교활하게 진리를 왜곡하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교회를 파괴하기 위해서 거짓을 퍼뜨립니다. 거짓에 미혹되면 안됩니다. 허리띠를 띤다는 것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긴장한다는 뜻입니다. 거짓의 아비 마귀가 퍼뜨리는 거짓에 대해서, 진리로 무장하고, 영적인 전투를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의의 흉배입니다. 흉배는 가슴을 가리는 금속판이었습니다. 우리 몸에 심장이 급소인 것처럼, 영적인 전투에서는 마음이 급소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서 1장에 보면, 하나님은 가나안 땅으로 진군하는 여호수아에게 마음을 강하고 담대히 하라고 네 번이나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영적인 전투에서 마음을 강하게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의의 흉배를 붙이라는 말씀은 심장이 급소이기 때문에 금속으로 만든 흉배로 무장하는 것처럼,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마음을 지키기 위하여 의로 무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급소를 공격합니다. 과거의 죄로 성도의 마음을 찌르는 것입니다. 급소에 일격을 당할 때에 성도들은 힘없이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은 마귀가 과거의 죄를 상기시키는 것을 마귀의 참소 혹은 송사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그러한 마귀의 참소를 막는 의의 흉배란 무엇일까요? 예수의 의입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8:33-34)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예수님의 의를 덧입혀 주십니다. 우리는 그 의의 흉배로 마귀의 참소를 대적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복음의 신입니다. 평안의 복음을 발에 신는 신으로 비유하였습니다. 평화의 복음이 마귀를 짓밟는 무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3 15절은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메시야 예언이기 때문에 원시 복음이라고 불립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마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그런데 로마서 16 20절은 평강의 하나님이 사단을 너희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마귀의 머리를 짓밟고 승리하셨는데,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마귀의 머리를 발로 crush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그 해답이 요한 계시록 12 11절에 나옵니다: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마귀를 이기었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어린 양되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화목 제물이 되셔서 속죄의 피를 흘리심으로 승리하셨습니다. 반면에 성도들은 화목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증거함으로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죄인의 화목을 이루신 평화의 복음을 증거함으로 마귀를 머리를 짓밟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믿음의 방패입니다. 로마 군대의 방패는 문짝에서 기원하였으며, 몸 전체를 숨기도록 고안되었습니다. 비록 마귀의 불화살이 비같이 쏟아진다고 하더라도, 믿음의 방패는 그 모든 것을 막아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먼저 마귀는 하와에게 하나님의 인격에 대하여 의심을 갖도록 유혹하였습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라.” 마귀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서 의심을 일으키도록 공격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너희를 진정으로 위하시는 분이 아니라고 설득한 것입니다.

 

마귀는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도록 유혹하였습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부인합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마귀는 오늘 날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하나님의 능력과 성품에 대해서 의심의 불화살을 날립니다.

 

우리는 마귀의 불화살을 믿음의 방패로 막아야 합니다. 내 삶 속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때에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의 방패입니다. 믿음의 방패란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치 않고 믿는 그것이 믿음의 방패입니다.

 

다음으로 구원의 투구입니다.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들은 반드시 helmet을 씁니다. 팔다리나 몸에는 총상을 입어도 생존할 수가 있지만, 머리에 총을 맞으면 치명적이기 때문입니다. 사탄도 성도의 머리, 곧 생각을 주요 공격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귀가 그리스도의 군사를 패배시키기 위하여 무슨 생각을 불어넣는가? 마귀는 그리스도의 군사들에게 패배 의식 (defeatism)을 집어넣습니다.

 

우리가 마귀와 싸우는 영적인 전투에서 그러한 패배 의식을 무엇으로 막을 것인가? 오늘 본문은 구원의 투구로 머리를 보호하라고 말씀합니다. 구원의 확신으로 무장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으로 무장하라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 8절은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고 말씀합니다.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쓴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현재 눈에 보이지 않고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구원을 소망 가운데 확신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소망이 없어 보일 때에도, 구원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의 검으로 마귀를 물리치신 분은 다름 아닌 예수님이셨습니다.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시험에 대해서는 신명기 83절을 인용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면 정말 천사들이 와서 받혀주는지 보라는 시험에 대해서는 신명기 6 16절을 인용하셨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마귀에게 절하면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주겠다는 시험에 대해서는 신명기 6 13절을 인용하셨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성령 충만하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성령과 말씀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성령과 말씀은 마귀를 공격하는 검의 양날과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기도입니다. 사도 바울은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말씀했습니다. 바울은 그 모든 말씀 후에 마지막으로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기도가 없으면 아무리 훌륭한 전신갑주라도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냉장고도, 아무리 좋은 세탁기도, 아무리 좋은 텔레비젼도, 아무리 좋은 청소기도 전력이 없으면, 다시 말해서 power 가 없으면, 무용지물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그 모든 무장을 마친 후에 힘과 능력을 받기 위하여 기도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귀가 비록 강하고 악하고 교할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난 자입니다. 예수의 이름 앞에 두려워 떠는 자입니다. 주 안에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대적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공동체를 파괴하려는 마귀의 궤계를 물리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동지들과 함께 스크럼을 짜고, 마귀의 견고한 진을 파하는 능력의 종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