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는 눈, 이에는 이 ( 21:23-25)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보복의 원리는 구약 율법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읍니다. 오늘 본문 24절에는,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찌니라고 하였습니다. 레위기 24 19절도, “사람이 만일 그 이웃을 상하였으면 그 행한대로 그에게 행할 것이니, 파상은 파상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을찌라고 하였습니다. 신명기 19 21절도, “네 눈이 긍휼히 보지 말라.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니라고 하였습니다.

가끔 뉴스에 보면, 이스라엘 군대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원칙에 따라 팔레스타인 측에 보복 공격을 가했다는 기사가 나옵니다. 그리고 눈에는 눈이라는 법칙은 라틴어로 Lex Talionis 라고 불리는데, 복수를 뜻하는 talion이라는 어근이 들어가 있고, 한국말로는 일반적으로 동태복수(同態復讐法) 으로 번역됩니다. 그래서 눈에는 눈하면 얼핏 듣기에 철저히 복수하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사실은 보복을 제한하기 위한 법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고대 부족 사회에서는 특별히 피비린내 나는 복수극이 많이 벌어졌습니다. 이쪽 부족 사람 하나가 저쪽 부족 사람 하나에게 상해를 가하면, 온 부족 전체가 달려가서 보복을 하였던 것입니다. 일례로 창세기 34장에 보면, 야곱의 딸 디나가 히위 족속 추장 하몰의 아들 세겜에게 강간을 당하자, 그 오라비 시므온과 레위가 계략을 쓴 다음 부지 중에 성을 엄습하여, 하몰과 세겜 뿐 아니라 그 성의 모든 남자를 다 죽였다고 하였읍니다.

이러한 당시 보복의 관행에 대하여,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규례는, 자기가 상해를 당한 만큼만 보상을 받으라는 배상의 원리였습니다. 복수를 하라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복수를 제한하기 위한 법이었습니다. 이 법은 무자비한 법이라기 보다는 공의의 법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이 법은 재판의 원리였습니다. ‘눈에는 눈규정이 나오는 앞뒤 문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분쟁이 일어날 경우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를 규정한 내용들입니다. ‘눈에는 눈이라는 규정은 분쟁을 해결해야 하는 법정의 재판관에게 주는 원칙이었습니다. 실제로 신명기 19 18절에는 재판장이 이러한 원리를 시행하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요약하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이 보복의 법은, 무제한의 보복을 금하는 한편, 정당한 배상을 위한 공의의 원리요 심판의 원리였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 공의의 심판의 원리를 개인적 보복의 원리로 사용한다면, 잘못 적용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산상수훈과 그 밖의 여러 가르침에서 말씀하신 것이 그것입니다. 개인간에는 끝없이 사랑하고 끝없이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끝없는 사랑과 용서의 원리를 사회나 국가에 적용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살인을 일곱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해 준다거나, 첫째 딸을 강간하면 둘째 딸까지 내어준다거나, 차를 훔쳐가면 집도 팔아서 보태준다든지 하게 되면, 그 사회나 국가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저명한 기독교 윤리학자인 라인홀드 니이버의 Love and Justice 라는 책이 있습니다. 실은 한 권의 책이 아니라, 같은 주제의 여러 article들을 모아놓은 것입니다. 그 책의 주제를 간단히 요약하면, 사회적인 관계에 love를 적용시키는 것은 impossible possibility 라는 것입니다. 가능과 불가능은 서로 반대말인데, impossible possibility 라는 역설적인 표현을 썼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상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아까 이스라엘 군대가 눈에는 눈이라는 원리에 따라 팔레스틴에 보복을 감행했다는 뉴스를 우리가 종종 접한다고 하였는데, 만약 이스라엘 군대가 오른 뺨을 때리면 왼 뺨을 돌려대라는 원리로 나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랍권에 숨막히게 둘러쌓인 이스라엘이 생존할 수 있겠습니까? 라인홀드 니이버는 사랑이라는 이상을 일반 사회에서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결국 Justice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눈에는 눈이라는 원리와 오른 뺨을 때라면 왼 뺨을 돌려대라는 두 원리는 그 적용을 바로해야 하는 것입니다.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개인간에 적용해야 하는 원리입니다. ‘눈에는 눈이라는 공의의 원리는 사회적인 관계에 적용해야 하는 원리입니다. 결국 이 적용의 혼돈으로부터 많은 혼란이 야기되는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도 개인적 보복을 금하고 있읍니다. 레위기 19 18절에,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고 하였습니다. 분명히 원수를 갚지 말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공의는 어떻게 충족된다는 말입니까? 복수는 하나님이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32 `모세의 노래'에서 하나님은`보수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 32:35). 여기서 `보수'라고 번역된 `나캄'은 복수 혹은 보복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복수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하나님께 맡기라는 뜻이다. 시편 94편은 여호와여 보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보수하시는 하나님이여하면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그 자녀들이 직접 보복하고 복수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 대신 `복수는 내게 맡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일례로, 사울왕은 다윗을 질투하여 죽이려고 했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피하여 도망다니다가, 어느 날 엔게디 동굴에서 사울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왕의 몸에 손대지 않고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는 나와 (사울)왕 사이를 판단하사,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치지 않겠나이다” (삼상 24:12). 복수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다윗의 신앙을 잘 드러내는 말입니다. 개인적인 보복은 구약에서도 금하고 신약에서도 금합니다. 로마서 12 19절은 말씀합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반면에 신약에서도 공동체에서는 공의를 시행하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8 15절로 17절에서, 교회의 권면을 끝까지 거부하는 자는 더 이상 교회의 일원으로 여기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즘 새벽 기도회 시간에 디모데전서를 상고하고 있는데, 어제 읽은 디모데전서 1 20절에 보면, 바울이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를 사단에게 내어주었다고 말합니다. 그런 징계를 내린 목적은 저희로 더 이상 훼방하지 말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5 13절에도 음행하는 자를 교회에서 내어쫓으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채찍으로 내어쫓으셨습니다. 공동체에서는 공의가 시행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불의에 대해서도 사랑으로 용납하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개인적 보복을 하지 말라는 에수님의 말씀은 불행히도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공의의 심판까지도 하지 말라는 뜻으로 오해 되었습니다. 그러한 해석에 따르면, 폭군이나 악한, 흉악범도 무조건 다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상의 원조격으로 19세기 러시아의 문호인 톨스토이를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산상수훈을 읽는 가운데 큰 감명을 받고, 정부의 공권력과 경찰력, 군사력, 법원 제도 등이 모두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기구들은 악에 대항하는 기관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악의 세력과 싸우라고 가르칩니다. 에베소서 6 13절은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서기 위함이라하였고, 베드로전서 5 9절은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너희 대적 마귀를 대적하라고 하였습니다. 야고보서 4 7절도,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교회와 국가는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는 이 지상의 기관들입니다. 로마서 13 1절 이하에, 올바른 국가는 하나님의 사자로 악을 행하는 자를 벌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금하시는 바는, 공의의 심판이 아니라, 개인적 보복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개인적인 보복을 하지말라고 하시면서, 네 가지 실례를 들으셨습니다. 첫째로, 누군가 오른편 뺨을 때리면 왼편도 돌려대라고 말씀하십니다. 보통 오른 손으로 상대방의 뺨을 때리면, 맞는 사람은 왼편 뺨을 맞게 됩니다. 그런데 오른편 뺨을 때린다는 것은 손등으로 때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손등으로 때리는 것은 손바닥으로 때리는 것보다 두배로 모욕을 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한 심한 모욕을 받더라도 복수심을 품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재판정에서 속옷을 가져 가려는 사람에게 겉옷까지도 주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겉옷이란, 낮에는 외투로 입고 밤에는 담요로 덮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율법은 겉옷을 빼앗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22 26절에,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 보내라. 그 몸을 가릴 것이 이뿐이라. 이는 그 살에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한 자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와같이 율법에 보장되어 있는 권리도 누군가가 빼앗으려 한다면, 그냥 다 양보해 주라는 말씀입니다. 세째로, 누군가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십리를 가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로마의 군인들은 언제든지 길가는 유대인들의 노동력을 강제 징집할 수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길을 가다가도 로마 군인이 지명하면, 짐을 지고 그가 요구하는 곳까지 가야만 했던 것입니다. 성경에도 보면, 구레네 시몬이라하는 사람이 로마 병정의 명령을 따라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런 일을 당할 때에 얼마나 속이 상하겠읍니까? 예수님은 그럴 때에도 원망하지 말고 곱절을 가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네째로, 구하는 자에게 주고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6장의 병행구에 보니까,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지 말라고 되어 있습니다. 날강도 같은 사람이 나의 재산을 가져 갈 때에도 원하는대로 다 주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개인적으로 보복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이처럼 과격하게 명령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를 심하게 모욕할 때에도, 어떤 사람이 나의 권리를 빼앗아 갈 때에도, 어떤 사람이 권력을 갖고 억지로 강제할 때에도, 어떤 사람이 나의 돈을 빼앗아 갈 때에도, 절대로 개인적으로는 보복하지 말라는 명령인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십자가를 감당하시며 보여주신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의 뜰에서 침뱉으며, 얼굴을 주먹으로 치고 손바닥으로 때리는 모욕을 당하셨습니다. 로마 총독 빌라도의 법정에서는 자색 옷과 면류관을 씌우고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찌어다하며, 갈대로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는 조롱을 받으셨습니다. 또 십자가에 달리신 후에도,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여,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로 보고 믿게 할찌어다하는 희롱과 욕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예수님이 이러한 모욕과 희롱과 욕에 대하여 복수심에 불타서 이를 가셨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오히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 23:34) 라고 기도하셨다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않으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 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고,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다고 베드로전서 2 23절에서 증거합니다. 주님에게 개인적인 보복은 안중에도 없으셨습니다. 오히려 주님 자신이 멸시를 받고, 고난을 받으며, 채찍에 맞음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가 사하여지며, 죄인들이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게 되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입을 열지 아니 하셨고, 죄인들이 자기에게 거역하는 일을 참으신 것입니다. 주님은 그 모든 것을 다 참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십자가 상에서 온전히 이루신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성품인 사랑과 공의를 유효적절하게 잘 적용하며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죄에 대하여 십자가를 통하여 용서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베풀고, 아울러 주님의 교회를 위하여 이단과 죄악과 마귀의 세력을 대적하며, 나아가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이루어 드리는 주의 백성들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